✠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20

in #steemit11 months ago

1000004161.jpg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1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2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3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4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5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6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7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11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13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14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15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설명이 좀 필요합니다. 군대를 이룬 악마들을 돼지 속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한 예수님의 조치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돼지들도 악마가 자기들에게 들어오자 견디지 못하고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참을 수 없는 더러움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들이 호수에 빠져 죽었습니다. 농장의 주인은 예수님에게 자기 고장에서 떠나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마을에서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경제적인 손실이 너무 컸습니다. 손해배상 청구를 당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왜 예수님은 대규모로 돼지들을 키우는 농장주들에게 막대한 재산 피해를 끼쳤을까? 여기에는 예수님의 커다란 교훈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한 영혼은 우주보다 귀하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을 구하는 것은 아무리 큰 재정적 손해를 보더라도 그보다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돼지 농장의 재정적 손실이야 바람과 바다를 한 마디로 잠재우시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언제든 지 회복시켜 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그 돼지농장 주인의 어떤 부정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든 저렇든 예수님은 회복시켜줄 능력이 있기 때문에 악마가 그 성질대로 더러움을 찾아 돼지 속으로 들어가게 허락한 것은 불의가 아닙니다. 그 동네 사람들은 한 영혼이 악마들의 예속에서 벗어난 이 위대하고 감격스런 은총을 보지 못합니다. 아니면 가볍게 취급합니다. 그것은 경제적 손실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환영받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기는 하지만 너무 큰 희생을 원치 않습니다. 더구나 경제적 손해를 보면 더더욱 하느님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믿는 사람이 되고 그 믿음을 키우려면 돈 보다 귀한 한 영혼의 구원의 가치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잘 살자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애사오로 상징되는 버림받는 사람들의 특징은 이 세상의 쾌락과 안락 때문에 영원을 가볍게 취급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한 영혼은 우주보다 귀합니다." 한 영혼이 악마에서, 죄에서 해방되는 것보다 위대한 사건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영혼 구원" 이것이 내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이 좋으면 이것이 천국이지 하는 물타기 말에 속지 마십시오! 지금이 좋으면 천국의 시작이지 천국은 아닙니다. 천국의 가치를 흐리게 하는 얄팍한 물타기 말입니다. 지금이 괴로우면 이것이 지옥이지 하는 말도 믿지 마십시오! 지옥의 시작이 될 수 있지만 지옥이 그렇게 시시한 곳이 아닙니다. 이 또한 지옥의 실재를 가볍게 취급하게 만드는 약은 논리입니다. 지금은 악마가 많은 사람들을 속여 편한 신앙생활, 양심의 가책이 없는 신앙생활을 많이 제시합니다. 그러나 속지 마십시오! 희생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하느님 사랑은 영적 투쟁에서 시작됩니다. 안락한 신앙생활은 애초부터 하느님의 법칙에는 없습니다. 악마는 늘 달콤함으로 인간을 더럽힙니다. 예수님은 오늘 악마에 시달린 영혼을 구해주십니다.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이 말씀은 오늘 이 자리 이 순간에도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 선언이 계속 이어지게 하려면 거룩한 묵주기도를 바치십시오! 똑같이 악마가 도망갑니다. 성모님은 악마에게 가장 큰 수치를 주었기 때문이고 이것은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을 통해서 악마를 물리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교만을 겸손으로 치시고 불결은 순결로 치십니다. 우리가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해 바치는 희생은 그 어떤 것보다 값집니다. 바로 악마에게서 해방시켜주는 일입니다. 아멘!

2024년 1월 29일 연중4주간 월요일, 김연준 신부의 오늘의 복음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