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포탈들] 숨겨진 인연들 열둘에 하나,
"마법사가 과연 올까요?"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우리는 그에게 검을 전달해 주면 그만입니다."
"그가 와야 전해주죠."
"아니요. 우리의 임무는 그의 검을 들고 전달하기로 한 공간에 제때에 머무는 겁니다. 그리고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그것으로 임무가 완료되는 것이지요."
"쩝, 그렇기는 합니다만. 애써 들고 왔는데 전달도 못 하면 마음이 꽤나 불편하더군요."
"어쩌겠어요. 그게 마스터의 천형인걸."
두 마스터는 검의 도시 톨레도에 임시 기념품 샵을 차렸다. 불경기로 이 도시에도 임대문의 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렸다. 하지만 아무 곳에나 가게를 차릴 수는 없다. 마법사가 지나가기로 되어 있는 동선 위, 예정된 그 공간에 샵을 열어야 하는 것이다.
"하필 이번에는 기념품 샵입니까? 고풍스런 성당이 더 제격인데."
"그야, 그의 검이 일상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죠. 마법사는 이제 이런 곳에 숨겨져 있는 검도 찾아낼 수 있을 만큼 성장했어야 합니다."
불평이 많은 수습 마스터와 은퇴를 앞두고 있는 노 마스터는 마법사에게 검을 전달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마법사의 검이 죄다 부러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마법사에게 부러지지 않는 검이 전달될 때가 되었다고 마스터 회의는 판단했다. 그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듣자 하니 마법사가 자꾸 다른 우주로 탈출하려고 한다던데, 고생이 보통이 아닌가 봅니다?"
"본인 탓도 있죠. 검을 죄다 부러뜨렸으니 얼마나 전투를 벌인 겁니까. 마법사라면 적당히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우주의 섭리임을 먼저 인식해야지요."
"하지만, 마법사는 열쇠 꾸러미를 빨리 소진하고 싶어 하는 것 같더군요. 욕심을 너무 많이 냈어요. 한 생에 한 두 개면 충분한데."
"마음이 약해 그렇습니다. 마법사는 천사가 아닌데 쯔쯧. 본인이 이번 생에 모두 끝내 보겠다고 열쇠를 한 다발 받아 들었다더군요."
"그게 상대가 요청하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건데, 명성이 자자했나 봅니다?"
"만만하기로 자자했죠. 특히 성장을 빌미로 열쇠를 맡기는 영혼들이 꽤나 있었다더군요. 마법사가 '성장스토리'에 약하거든요. 하지만 성장이 뭐 그리 쉽습니까? 한 번의 생에 다 되는 것도 아니고, 먼 시선으로, 수많은 생의 연속성 속에서 성장을 바라봐야 하는데, 음.. 조급한 마음이란."
"이해는 갑니다만, 안타까우니까요. 바로 요 옆에 젖과 꿀이 흐르는 길이 있는데 굳이 애써 돌아갈 이유는 없잖습니까?"
"차라리 그런 걸 보는 눈이 없어야 편안합니다. 보면 전해주고 싶고, 선택을 유도하고 싶어지죠. 심지어 고난을 대신 짊어지고 싶어지기도 해요. 그러나 우주의 섭리란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니, 어떤 선택을 하든 결국 얻을 것을 얻고 자라날 것이 자라나게 되어 있어요. 경험의 폭이 넓어지는 일이기도 하고."
"에이, 그러면 마법사가 필요 없잖아요. 할 일이 있어야죠."
"할 일이라... 그게 필요할까요? 마법사가 괜히 세상에서 사라진 게 아닌데."
마법사는 사라졌다. 세상이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리는 과학과 이성이 메우는 듯했다. 그러나 과학은 이성보다 먼저 마법의 자리를 발견했다. 그리고 속수무책이 되었다. 바라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달은 마법의 세상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다. 관측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현실은 소망하는 것을 만들어 내는 마법 같은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다시 마법사를 세상에 소환해 내려고 애쓰고 있으나 마법사는 이미 사라져 버렸다.
"과학자는 마법사가 될 수 없어요. 과학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숫자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마법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현실로 가져 오고 숫자로 변환시키죠.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러나 믿음은 어디서 나는 가요? 마법을 잃어버린 세상에 남은 것은 눈에 보이는 증거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서 들은 어떤 말, 가십, 유언비어뿐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데 사람들이 더 이상 마법사의 말을 들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듣는 건, 거짓 뉴스와 편협한 가짜 지식들 뿐이에요. 그것도 전해 들은 것뿐이죠." 수습 마스터가 한탄하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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