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끝, 겨울 시작
20세기 소년에 갈지 말지를 두고, 20세기의 여름을 시작부터 바라보며 긴 고민을 했다. 여름의 끝자락에 스팀 시티 사람들을 (드디어) 만나게 되었고, 늦깎이로 들어가 이들과 가을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돌아보니, 나는 20세기의 가을을 함께한 사람이구나 싶다.
어제는 20세기의 가을로 대변되는, 영화제 마지막 상영이 있는 날이었다. 우리는 그 끝을 기념해 쫑파티를 하기로 했다. 나는 짧은 한철 나를 계기로 20세기 소년을 다녀간 사람들에게 급하게 파티의 일정을 알렸다. 갑작스러운 연락에도 내 동생, 오랜 친구, 또 오래 알고 지낸 고향 동생이 20세기 소년을 방문해 그 끝을 함께해주었다.
다음 날 새벽에 나가야 하는 고향 동생은 먼저 자리를 일어섰고, 20세기 소년의 단골이었던 연출 감독님과 젠젠언니, 택슨오빠, 마법사님, 내 친구, 내 동생이 함께 술을 마시다 지하로 내려갔다.
2부 파티를 준비하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사람들을 기다리며 크리스마스 캐롤을 쳤다. 사람들이 모였고 택슨 오빠를 시작으로 우리는 차례로 노래를 불렀다. 노래 부를 순서가 된 내 친구는 피아노 앞에 앉은 나에게, 나의 오랜 곡을 부르고 싶다 말했다. 나는 그 곡을 거의 잊고 지내던 터라 무척 당황스러웠다. 틀릴 것 같은데, 그런 불안함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반주하는 동안은 틀릴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거의 친구의 노래를 듣지 못했다. 이 공간에서, 나의 가장 오랜 친구가 잊고 있던 내 곡을 부르는,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채로 그 곡을 연주하는 상황이 끝없이 당혹스럽기만 했다. 그래서 노래가 끝나고 이어지는 사람들의 놀란 모습과 반응에도 나는 모든 게 얼떨떨했다.
그 노래를 부른 후로 우리는 늘 그렇듯 서로가 좋아하는 노래를 하나씩 불렀고, Everything을 부르고, 사랑가를 불렀다. 나는 사랑가를 끝으로 연주를 마무리했다.
20세기 소년에서 조촐한 공연을 했던 날, 그날 나는 그간의 과거를 갈무리하고 노드와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결연한 다짐으로 무대에 섰다. 그런데, 겨울을 앞둔 나는 오히려 그 노드와 함께 내가 처음 만들었던, 잊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오래 사랑했던 그 곡을 다시 꺼내게 되었다.
어제의 파티를 끝으로 내 앨범 작업에 필요한 초기 투자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부로 당분간 사람 만나는 일을 줄이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겨울을 맞은 내게 주어진 숙제는 이것이었다. 내가 잃은 나의 본성을 다시 하나둘 찾아가는 것. 'I'면서 너무나 사람을 많이 만나던 것, 'F'면서 'T'인 체 하려 노력했던 것, 'P'면서 'J'로 살려고 애썼던 것.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와중에, 고등학생 때 썼던 곡을 꺼내게 된 일은 내게 새로운 생각을 하게 했다. 아무것도 모르기에 나로 살 수밖에 없던 시절, 그리고 그때 썼던 곡. 어쩌면 그게 내가 지금까지 쭉 지켜와야 했던 방향이 아닐까? 계획 없고, 엉망진창, 더러운 방과 질서 없는 하루들, 너무 많이 느껴 자주 울 수밖에 없었던, 넘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어디로든 뛰쳐나가야 했던, 우연히 문제집에서 본 시 한 편으로 내내 울다 그날 저녁 피아노 앞에 앉아 곡을 쓸 수밖에 없었던, 그 막막하고 캄캄한 마음.
그렇다면, 작업에 필요한 것은 비싼 키보드, 좋은 숙소가 아니라 그 마음을 되찾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기대하며 있는 힘껏 나를 지지해주는 것일 수도.
mbti가 저랑 완전 반대셨네요... ㅋㅋㅋ
저는 ENTJ나 ESTJ로 나오는데, N과 S는 바뀌지만 다른 건 다 반대...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