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태생의 조카와 나누는 차와 향

동생 부부

가족의 만남에서 국적이 다르다면 어색할 때가 많다. 국제결혼 후 25년 만인 5년 전부터 만나기 시작한 동생네 가족과의 차 이야기다.

두 조카의 어린 시절을 보지 못하고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처음 만났기 때문에 일반적인 삼촌과 조카라는 관계의 친밀도와는 조금 달랐다. 동생네가 스위스에서 중국 항주로 이사를 오게 되어 2013년 중국 항주에서 작은 조카 은실이를 만났다. 그때 처음으로 딸 예슬이와 함께 방문했는데, 큰 조카는 방학이라 스위스에 있는 외할머니 집에 놀러 갔다.

1년 뒤에 동생이 작은 조카와 동생이 서울에 같이 왔고, 그때 사무실에서 차를 내었는데 차를 아주 잘 마셨다. 중국 학교에 다니면서 중국 차문화를 자연스레 접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고 이루향서원에 가서 정진단 원장으로부터 정식으로 격화훈향법으로 품향 경험을 하고 갔는데, 그때 향실에 들어가자마자 “이렇게 좋은 냄새 나는 것은 무엇인가요?”라고 했다. 서양 아이로선 좋은 향이 아니라 좋은 냄새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 1년 뒤에는 여고 3학년인 큰 조카가 와서 필자 사무실에서 차를 마신 후 안국동차관 향실에서 향을 맡고 마찬가지로 좋은 냄새 나는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농차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오늘, 조카 두 명과 동생 내외가 함께 찾아왔다. 이번에도 필자의 사무실에 먼저 와서 처음엔 박차를 한 잔씩 마신 후 농차를 나누어 마셨다. 오늘은 차를 넣고 격불을 하는데 “삼촌, 차향이 너무 좋아요.” 한다. 그동안 작은 아이는 운남성 대리에 있는 중국 친구들 집에서 보이차를 마시고 가는 곳마다 보이차를 마시면서 놀았다고 한다. 선물로 보이생차와 숙차를 각각 받았다는데 대익보이차 포장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보이 노차를 마시면서

이번에도 저녁을 먹고 이루향서원에 방문했다. 차실에서 정진단 원장이 처음에 낸 차가 무이암차인데 첫 잔을 마시면서 나온 말은 “삼촌, 차향이 아주 좋아요.”였다. 이런 향이 좋은 차향이라고 한국어를 잘 모르는 엄마에게 불어로 설명을 한다. 그다음으로 마신 차가 보이 노차인데, 첫 번째 차를 마시고 나온 큰 조카의 말은 이 차에서는 오래된 땅(대지)의 향기가 난다고 한다. 나로선 보이 노차를 마시고 듣는 말로는 처음 듣는 표현이다.

유럽에서 자란 아이가 중국 항주에서 6년을 살면서 주변의 친구들과 차를 마시고, 집에서는 5년 전에 필자가 선물로 가져간 보이차를 살 빠지는 데 도움 되는 것으로만 알고 마셔온 정도인데, 그런 표현을 사용할 만큼 보이차를 좋아하고 잘 마시는 모습에 대견스러웠다.

그렇게 재미난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들에서 좋은 향을 경험할 수 있게 품향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번에는 미리 약속하고 방문하여 숯을 사용한 향을 체험했지만, 오늘을 전기향로를 이용하여 품향하는 시간을 가졌다. 침향을 향칼로 자르고 전기를 올려 향을 맡는 모습이 너무나 흥미진진하여 한참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린 조카들은 일 년에 한두 번 삼촌을 만날 때마다 항상 간단하게라도 건강한 차를 마시고 품향하는 시간을 가진 경험이, 어느 나라를 다니든 차와 향을 만나고 분별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그들의 취향에 따라 구분되는 좋은 차 맛과 향기가 있겠지만, 차와 향의 본질적인 가치를 알게 하려는 삼촌의 노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이나마 자연스럽게 젖어 들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그런 시간을 한 번 더 가졌다.

인사동과 안국동을 통틀어서 차와 향을 즐기는 공간으로 가장 운치 있게 꾸며진 이루향서원에서 차와 향을 경험하고 나온 뒤 인사동 설록차에 갔다.

조카가 중국 국제학교에서 만난 한국 친구에게 줄 선물로 인사동 설록차에서 차 선물세트를 구입한 후 돌아와 사무실에 있는 차 우려 마시는 도구 두 종류를 각각 선물로 주었다. 분명히 다음에 만날 때는 차 이야기가 깊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