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비츠 샵 (Witz Shop) - 2화 : 설의 이야기

in #witzshop6 years ago

“설아!! 야 설 이 새끼야 정신차려” “저기 여기 사람이 -----------“
.
.
.
어지럽다. 손이 너무 심하게 떨려온다. 아 메스껍다.
곧 으깨질 것 같은 이 약한 심장이 미세하게 느껴진다. 안쓰럽다. 무섭다.
.
.
.
“누가 좀, 119에 신고 좀 해주세요 !!” “설아 나야 내 눈 좀 봐!! 눈 좀 떠줘 !!!“
.
.
.
삐용--- 삐용- 삐용--- 삐용-

아무래도 손가락 발가락 끝 마디가 없어진 듯 하다.
과연 나는 의식과 무의식, 생과 사 이 둘의 어느 지점 쯤에 와 있는 걸 까.

철컹--

몸이 허공에 붕 뜬다. 유체 이탈인가. 죽은 건가. 무섭다.
.
.
.
“야 똥설! 오늘 점심 뭐냐?”
“오늘이 월요일이지? 흑미밥, 대합미역국, 갈아 만든 연근전”
나는 진지하게 눈을 부릅뜨고, 급식메뉴를 읽어 내려간다.
“아니 갈아 만든 뭔데 ㅋㅋㅋㅋㅋ”
“참나물 파프리카무침, 배추김치, 유기농 요구르트… 아 먹을 게 요구르트 말고는 없는 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인정. 야야 우리 수업 끝나자마자 바로 뛰어야돼. 절대 잊지마 !!”
다빈이는 내 손을 툭툭 치며, 귀여운 작은 입술로 협박하듯이 말한다.
“당연하지 !! 히히”
.
.
.
“CPR 상황입니다!! E-cart 랑 D/C기 갖다 주시고, 코드 블루 띄어주세요 !!”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
“D/C기 부착하겠습니다. 띠띠----”
“스물여섯 스물일곱 스물여덟---“
“에피네프 들어갑니다”
“...서른”
“하드보드 적용하겠습니다.”
“하나”
“둘”
“셋”
.
.
.
이다빈
.
.
.
“설아!!!!!!”

엄마다. 엄마의 부은 눈에서 눈물이 계속 흘러내린다. 덕분에 내 손등은 축축하고 뜨겁다.

“설아!! 정신 들어??? 엄마 알아보겠어??? 다행이다..다행이야”

엄마의 품에서 점점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아.. 나 쓰러졌었지.

“어.. 엄마. 걱정 많이 했지.. 죄송해요”
“갑작스런 쇼크현상이래. 오늘 링거 다 맞고 푹 쉬면 괜찮을 거래. 아빠는 지금 오고 계시는 중이라니까 더 자”
“아.. 아 근데 몇시에요? 저 얼마나 누워있었어요?”
“지금 8시 40분이야. 아빠 9시 좀 넘어서 도착이시라니까 얼른 더 자.”
“네 엄마도 주무세요. 많이 놀라셨을 텐데..”

일어나서 정신도 차리기 무섭게, 다시 눈꺼풀이 무거워져 가라앉고 내 의식은 몸 속 깊은 곳으로 다시 빨려 들어갔다.
.
.
.
“ 헉 !!!“

지각이다. 미쳤어. 불과 10시간 전만해도 병원에 누워있었는데, 불쌍하게도 나는 오늘 아무일 없는 듯 알바를 나간다.
그래도 오늘 강의가 오후 수업이라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세수와 양치를 3분만에 끝내고 화장대 앞에 털썩 앉았다. 로션을 바르면서 나는 뜻밖에 감동을 받았다. 이 와중에 나는 아직도 남아있는 눈썹 타투에 감사하는 것이다. 덕분에 나는 준비를 20분만에 하고 제시간에 스타벅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8:40 AM

다급한 마음으로 나는 하얀색 와이셔츠 유니폼 단추를 능숙하게 채우고 검정색 앞치마를 두르고 새로 들어온 물품 정리를 시작했다. 물품 정리가 끝나면 저 커다란 하얀 쓰레기 봉지를 들고 나가 버린다.

10:00 AM

카페 안에 Way back home의 경쾌한 리듬이 울려 퍼진다.

♬ 아무리 힘껏 닫아도 다시 열린 서랍 같아. 하늘로 높이 날린 넌 자꾸 내게 되돌아와 ♬

베리류의 생긋한 향이 코 끝에서 맴돌고, 핑크빛 장미 꽃물은 하얀 머그컵에 담긴다.

“주문하신 유스베리 티 나왔습니다. 다음 손님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

그 손님이다. 나는 마이크를 살짝 내리면서 차를 기다리던 마스크를 쓴 여자 손님을 힐끔 확인했다. 그녀는 이 시각에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테이크 아웃으로 주문시킨다. 가끔은 한 덩치 큰 남자가 이 주문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 샷 추가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몸을 돌려 그룹패드에서 포터필터를 제거한 후, 필터 바스켓 안의 수분기를 닦아냈다. 위이잉 커터날이 회전하며 그라인딩된 커피파우더가 매끈한 은색 동그라미를 어느새 덮고 솟아 올라왔다. 검지 손가락에 닿는 부드러운 커피파우더는 어머니의 화단을 연상시킨다. 이제는 익숙한 탬핑을 통해 커피 파우더들이 밑에서 고루 퍼지게 한 후 그룹헤드에 장착시킨다. 어느새 생긋한 과일 향이 흔적없이 물러가고 카페는 그윽한 원두향으로 묻쳤다.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도대체 누굴까? 연예인인가 왜 매일 같이 마스크를 쓰는 거지’

피식-

‘응?’

나를 보고 웃는 그녀의 싸늘한 눈과 마주친 순간. 뭔가를 들킨듯한 약간의 치욕스러움이 울컥 올라왔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몸 속의 모든 피가 머리로 쏠리는 기분이 들었다. 주책맞게 내 얼굴은 또 화끈 거린다.

‘뭐야;;;;;;’

그녀가 내민 카드를 긁는 순간.. 한 단어가 뇌리에 스쳤다.

‘이다빈’
.
.
.
♬ 조용히 잠든 방을 열어 기억을 꺼내 들어 부서진 시간 위에서 선명히 너는 떠올라 ♬

‘왜 난 아직도 그 친구의 이름 석자에 힘든 걸까.’

카드를 쥔 손을 맥 없이 떨구었다. 진한 아메리카노 향 때문인지 어지럽다.

‘이제 와서 뭐를 어쩌자고.’

카드를 건네 받던 여자 손님의 차가운 손이 나를 깨운다.
나는 ‘이다빈’ 이름과 관련된 사건을 생각하기를 거부한다.

♬ 그만 그만 멈춘 시간 속 잠든 너를 찾아가 ♬

5:30 PM

짧은 교복 치마를 입은 여학생들이 무리를 지어 들어온다.

‘도대체 몇 명이야; 꽤 시끄럽겠군;;’

“주문하시겠어요?”

주변이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이다. 특히 이렇게 지금 내 앞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이 간지럽다는 듯 시끄럽게 생긴 사람 유형은 정말 싫다.

“네!! 아이스티…아.. 잉..?? 그때 그 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