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묵은 사람을 대하며[문자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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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각 속에 어떤 글자가 보이시나요? 오랠 久(구)자가 언뜻 보이셨을 수도 있습니다.
고대 전각체는 오묘하여 원시적인 맛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이것은 음각으로 새겨진 久而敬之(구이경지)이고요. 논어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오랠 구 다음의 말이을 而(이)는 보통 and나 but의 의미로 쓰이곤 합니다. 그러니까 久(구)而(이)는 오래 되었어도…라고 해석하면 되겠지요?
다음 두 글자는 경지(敬之)인데요. 경은 공경할 敬(경)이며 정중하다는 의미도 포함합니다. 마지막 어조사 之(지)는 영어로 치면 it, 또는 that으로 보시면 됩니다. 이제 네 글자를 종합하여 풀어볼까요?
오래 되어도 공경하다….?
뭔가 다가올 듯 말 듯 하죠? 그러면 저의 경우 논어의 원전을 찾아봅니다.
공자님이 말씀하시는군요.
晏平仲 善與人交 久而敬之
(안평중 선여인교 구이경지)
안평중(안영)은 남과 잘 사귀었으니 오래 알게 된 사람에게도 공경했느니라.
안평중, 안영은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으로 알려졌는데 그 사람관계성도 참 훌륭했던 모양입니다. 공자님이 이렇게 칭찬하는 분이 많지 않습니다. 오래 된, 즉 사귄지 오래 된 이에게도 늘 공경하며 정중했다는 말씀이지요.
오늘 이 말씀이 문득 제 가슴으로 꽂혀들어와 이렇게 인장도 만들어보고 글도 써봅니다.
제가 새로 알게 된 어떤 분에게 사근사근친절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보면 제 딸은 나중에 이렇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아빠! 지난 인연에게도 그렇게 소중히 대해보세요.”
이 지구상에서 현생에 가장 오래 묵은 인연은 제 아내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언제나 고개 돌리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닥 소중함을 실감하지 못하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말 한마디를 건네도 친절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 자릴 빌어 반성해 봅니다.
그리고 이번 생만이 아니라 제 존재의 전 생애에 가장 오래 되었고 또한 깊고도 소중한 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내 창조의 근원인 우주대법이 틀림없을 것이며 그것을 의인화해서 보자면 사부님과의 관계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귀중한 인연줄마저도 세월이 흐르면서 희미해지는 경우가 있어 흠칫 놀라게 됩니다. 그 장구한 인연의 역사와 가치를 잊고 이 짧은 몇십년의 세속에 더 흠뻑 빠져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