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 또는 과시(誇示)심에 대하여

in #art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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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한 생명이라면 자랑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자랑할 상대도 없고 자랑할 내가 따로 없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우린 정체적으로 보자면 우주의 한 덩어리 큰 생명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여전히 자랑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현재 자랑이라는 개념은 분명 존재하고 있지요? 그러니 그것은 왜 존재하게 되었을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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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덩어리 생명이 어떤 이유에선지 가장자리에 분체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전체는 그렇게 확장을 도모했을까요? 그건 잘 기억이 안나지만…어쨌든 지금 우리는 개체로서의 나를 느끼고 있습니다. 개체 자체도 그 안에 우주 특성이 있을 것인즉 전체의 부분임은 불변이지만 어쨌든 개체는 꿈결처럼 분리를 느끼게 됩니다. 분리의 꿈이라고도 표현하지요.

마치 엄마 뱃속에서 막 벗어난 아기처럼 이 개체는 약하고 물들기도 쉽습니다.

그래서 이 아기가 크게 잘못되지 않게 하려고 모든 분체에는 보상프로그램이 장착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주 특성, 즉 하늘의 이치에 합당한 무언가를 했을 때는 덕이 생성되고 그 덕의 결과로 복을 주는데 그 이전 과정에서도 주어지는 소소한 선물이 있으니 바로 도파민 등의 보상 홀몬입니다.

물론 앤돌핀도 있고 다이돌핀 등 여타 홀몬도 있지만 대표로 도파민이라 합시다.

이 도파민이 나오는 기제는 이렇습니다. 가령 제가 착한 일을 했습니다. 그 자체로도 원래 도파민이 나오는데 도파민이 분사되면 뿌듯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사람이 점점 그 뿌듯함이 좋아서 그걸 인위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하자 그 분사는 오히려 잘 나오지 않게 됩니다. 자꾸 이물질이 가로 막아 분출을 저애하는 것이지요. 그러자 도파민의 맛에 길들여진 사람은 다급해집니다.

‘내가 착한 일 한 거 맞잖아? 혹시 뭔가 잘못된 건 아니겠지?'

그는 이제 주변 사람에게 자기가 한 일을 늘어놔 봅니다. 그러자 주변인이 칭찬해줍니다.

“와! 당신 훌륭한데? 가치있는 일을 했네!”

그가 인정해 주자 자신의 뇌 속에서 막혔던 도파민이 분수처럼 뿜어지면서 다시 뿌듯해집니다.

‘아! 좋아! 이제 남에게 자주 확인해야겠네!’

그렇게 자랑질은 시작되었습니다. 이건 물론 제 사유 안에서의 일입니다.

자랑이란 잘 했지? 하고 자꾸 확인하는 짓을 뜻합니다. 사실 스스로 깨어있다면 무슨 확인이 필요합니까? 그대로 뿌듯하고 그대로 충만할 것인데 말이지요. 그래서 자랑이란 확신이 없다는 반증이고 둔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나마 남에게 자주 확인을 요구하며 자기 잘난 짓을 광고하다 보니 이제 남들도 지겨워집니다. 그도 자기 잘한 것을 자랑하고 싶은데, 자랑할 게 밀려 있는데 나만 자랑질하니 얄밉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더는 칭찬해주지도 않고 심지어 뒤에서 비난까지 합니다.

이제 자랑질은 기대하던 바와는 다르게 업력까지 만들어냅니다. 그것도 나와 남에게 입체적으로 업을 만드는 기염을 토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랑은 바보짓-이라는 말까지 생겼는데 정말이지 거시적으로 보면 상당한 바보짓이 맞습니다.

비슷한 말로 자랑은 과시(誇示)라고도 하는데 과(誇)는 자랑할 과이기도 하고 거칠 과입니다. 과시는 미세한 신의 마음과는 거리가 멀죠. 거친 도파민이나 구걸하고 있는 거친 방법입니다. 이 도파민이 나오는 기제를 심어준 쥐가 식음을 전폐하고 그 도파민 버튼만 눌러대더라는 끔찍한 연구 이야길 들은 바가 있습니다. 어느덧 사람도 그런 우매함에 빠질 수 있겠지요?

자랑질도 과시심도 중독입니다. 그것도 거친 데서 상당히 미세한 영역까지 실뿌리를 내리고 있는 중독이지요. 저 자신도 이 과시심을 발본색원하려고 이런 사유를 해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