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숙이라는 단어 속으로 들어가다[문자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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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하신가요?
이 말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엄숙이 뭔지 이해가 필요합니다.
엄(嚴)은 엄하다, 혹독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혹독한 게 아닙니다. 그런 건 폭군이나 깡패 아니겠어요? 엄하다는 것은 기준이나 목적지를 정해주고 그것을 벗어났을 때 혹독하게 질책을 가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면 엄한 사람은 왜 그렇게 엄한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요?
정해준 기준이나 목적지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것을 이탈했을 때의 아쉬움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겠지요.
우리 예전의 부모님들, 특히 아버지는 엄하신 경우가 많았습니다. 요즘처럼 무조건 내 자식 이뻐이뻐 하지 않았죠. 기준이나 표준에 어긋나면 엄하게 꾸짖었습니다. 자식이 잘하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신이 나서 칭찬하고 동네방네 자랑하는 게 아닙니다. 속으로 은근히 미소를 지을 뿐입니다. 그래서 자식들은 늘 질책에 정신 차리고 칭찬에 목마른 상태가 됩니다. 그러다 아주 잘했을 때 어쩌다 한번 이런 칭찬을 듣기도 합니다.
“잘 했다!”
이 짧은 한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그 칭찬이 평생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지요.
엄한 아버지가 사랑이 없어서 엄한 것이 아닙니다. 엄하면서도 그 속에는 따스한 자비가 살아 숨쉬고 있으니 그것을 표현한 단어가 嚴而慈(엄이자) 엄하면서도 자비롭게-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세상에는 엄하면서도 자비로운 존재가 또 있으니 바로 스승입니다.
스승된 분은 그 소중한 가르침을 제자의 골수에 새겨줘야 하기에 안일하면 혼을 냅니다. 잘 해내면 뭉긋이 미소를 짓고요. 사실 잘하면 스스로 그 상을 받을 것이기에 굳이 따로 칭찬을 퍼부어주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못해서 인생의 응보를 받게 되면 너무나 않타깝기에 부모나 스승은 자식이나 제자에게 그러지 말라고 엄한 것입니다. 그래서 엄한 것이 자비입니다.
엄숙에서 숙(肅)은 정중하다 엄숙하다 맑다 차다 등의 뜻이 있습니다. 정숙(靜肅)에도 들어가지요?
쉽게 말해서 지금 소중한 시간이니 한눈 팔거나 나대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 삶에서 어느 때가 엄숙할 때일까요?
제사 지낼 때일까요?
수능공부 할 때일까요?
맞선 볼 때입니까? 오디션? 면접?
수많은 대답이 있을 것 같은데 이것 하나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가장 큰 결실이 관여되어 있을 때 엄숙 해집니다. 또 그 반대편에 가장 허무한 나락이 기다리고 있어도 엄숙 해지겠지요.
그리고 타임라인이 걸려있을 때 엄숙 해집니다. 이 기회가 늘 있는 것이 아니라 단 한번이라면? 매우 엄숙해지는 게 당연할 겁니다.
또 한 막중한 책임이 걸려있다면 마땅히 엄숙한 일이 됩니다. 내가 하기에 따라 수많은 사람의 행 불행이 연결되어 있다면 어찌 한가롭고 방종할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 당신에게 엄숙한 말씀을 해주신다면 그분의 눈을 살며시 보십시요. 그 안에 뜨거운 자비가 빛을 발하고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