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7/05(금)역사단편88-평양패수고(20) 백제와 낙랑8

in Avle 종교 철학 인문학6 days ago (edited)

풀이는 <DAUM, 네이버 사전, 위키등>
본문은 <독립기념관 제공>

오늘은 조금 복잡한 내용이다.

『後漢書』 郡國志(후한서 군국지)에 보인
玄菟·樂浪(현토,낙랑)의 記錄이 左(좌)와 같으니,

玄菟郡 六城 戶一千五百九十四 口四萬三千一百六十三
[현토군 6성 호1,594 구43,163]
高句麗(고구려)·西蓋馬(서개마)·上殷台(상은대)·
高顯故屬遼東 (고현,고속요동)·
候城故屬遼東 (후성,고속요동)·
遼陽故屬遼東(요양,고속요동)

樂浪郡 十八城 戶六萬一千四百九十二 口二十五萬七千五十
[낙랑군 18성, 호61492, 구257,050]
朝鮮(조선)·𧦦邯(염한)·浿水(패수)·含資(함자)·黏蟬(점선)·遂城(수성)·
增地(증지)·帶方(대방)·駟望(사망)·海冥(해명)·列口(열구)·長岑(장잠)·
屯有(둔유)·昭明(소명)·鏤方(누방)·提奚(제해)·渾彌(혼미)·樂都(낙도)
<출처: 평양패수고>

(해석하면)
『후한서後漢書』 군국지 에 보인 <현토,낙랑>의 기록이 아래와 같으니,
현토군 호1594 구43,163
6성: 고구려, 서개마, 상은대
고현(옛날에 요동소속) 후성(옛날에 요동소속) 요양(옛날에 요동소속)

[낙랑군 호61492 구257,050 성18곳 ]
조선, 염한, 패수, 한자, 점선, 수성, 증지, 대방, 사망, 해명, 열구,
장잠, 둔유, 소명, 누방, 제해, 혼미, 낙도

정리하면 아래표와 같다.

후한서낙랑.JPG

『三國志』에는 地理志가 없으므로 이는 闕(궐)하고,
『晋書』 地理志(진서 지리지)에는 玄菟郡(현토군)이 없고
樂浪과 帶方을 兩郡(양군)에 分記(분기)함이 左(좌)와 같으니,
<출처: 평양패수고>

闕(궐): 제외하다.

(해석하면)
『삼국지』에는 지리지가 없으므로 이는 제외하고,
『진서』지리지에는 玄菟郡(현토군)이 없고
<낙랑>과 <대방> 두郡(군)에 나누어 기록함이 다음과 같으니

平州樂浪郡 統縣六 戶三千七百(평주낙랑군 통현6 호3,700)
朝鮮(조선)·屯有(둔유)·渾彌(혼미)·遂成(수성)·鏤方(누방)·駟望(사망)·

帶方郡(대방군)
公孫度置 統縣七(공손도치 통현7) 戶四千九百(호4,900)
帶方(대방)·列口(열구)·南新(남신)·長岑(장잠)·提奚(제해)·含資(함자)·海冥(해명)
<출처: 평양패수고>

(해석하면)
평주낙랑군 현은 6곳이고 호(가구)3,700
朝鮮(조선)·屯有(둔유)·渾彌(혼미)·遂成(수성)·鏤方(누방)·駟望(사망)

대방군은 공손도가 다스린다. 현은 7 호(가구):4,900
朝鮮(조선)·屯有(둔유)·渾彌(혼미)·遂成(수성)·鏤方(누방)·駟望(사망)

여기까지의 군현을 정리하면,

낙랑군리스트.JPG

그리고 대방군은

대방군.JPG

우리는 한사군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나라 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킨후 그 땅에 세운 군현
한반도의 중부까지 차지했다.]라고!!

한사군.JPG
약간씩의 차이는 있겠지만,
조선의 유학자들과
식민지시대 일본인들이 만들어준 역사책에는
이렇게 나온다.

그리고 위에서 표로 정리해놓은 것처럼
낙랑에 대해서는 소속 현들이 상세하게 드러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한사군이라는 이름은 있는데
그 내용이 수상하다.

단재의 글을 읽어보자.

『史記』에 漢 武帝가 衛氏(위씨)를 滅(멸)하고 四郡(사군)을 두었다 하였는데,
何故(하고)로 『漢書』 地理志에는
玄菟·樂浪(현토-낙랑)만 있고 眞番·臨屯(진번-임둔)이 없느냐?
樂浪이 二十五縣(25현)이나 되는데
玄菟(현토)는 何故(하고)로 겨우 三縣(3현)이냐?

(해석하면)
사기에 한나라 무제가 위씨(위만)를 멸망시키고 사군을 두었다 하였는데
어떤 이유로
[한서 지리지]에는
현토(도)-낙랑만 있고
진번-임둔이 없느냐?
낙랑은 25현이나 되는데
현토는 어떤 이유로 겨우 3현이냐?

다음 부분을 읽기전에
먼저 표를 이용해서 정리를 한다.

한사군비교.JPG

한서와 진서는 당태종의 명으로 편찬한 역사책이다.
당태종은 고구려를 침략했다가
안시성에서 눈에 화살을 맞아 도망쳤고
얼마지나지 않아 그 후유증으로 죽었다.

정복욕에 불타다가
원한에 사무쳐 죽은 당태종이 만든 역사서를
그 원한의 대상인 우리가
비판적 시각없이 곧이 곧대로 믿으면 어떻게 될까?

대한민국의 국민과 역사학자들은
역사적 사실 앞에서는
인간들이 공명정대 하게 기록할 것이라고 믿을만큼
순진한 사람들인가?

본인들의 이익이 관계되면 그렇게 살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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