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01(수)역사단편254

서경전쟁 이후에 사대주의가 팽배하고
조공과 아부로 연명하던 고려왕조가 몽고의 지배를 받게되면서
당대의 역사책들이 재앙을 맞았다.
역사책에 기록된
'천자'를 연상시키는 모든 구절들이 삭제되었을 것으로
단재는 해석했다.
그 후의 역사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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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 蒙古의 勢力(몽고의 세력)이 屛逐(병축)되자
高麗朝의 運命(고려조의 운명)도 또한 告終(고종)하였다.
李氏朝가 創業(이씨조가 창업)하자
비록 內政(내정)과 外交(외교)를 다 自主(자주)하여
他方의 掣肘(타방의 철주)를 받지 아니 하였으나,
다만 그 創業의 始因(창업의 시인)이 威化島의 回軍(위화도의 회군)이 되므로
『三國史記』 以外(삼국사기 이외)의 歷史(역사)를
世上에 公布(세상에 공포)할 意氣(의기)가 없어서
松都의 秘藏(송도의 비장)이
다시 漢陽의 秘藏(한양의 비장)이 될 뿐이었다.
鄭道傳(정도전)이 『高麗史고려사』를 編撰(편찬)할 때,
『三國史記삼국사기』의 書法을 奉承(서법을 봉승)하여
蒙古帝朝(몽고제조)에서 미쳐 다 竄改(찬개)치 못한 나머지까지 竄改(찬개)하더니,
그 뒤에 世宗(세종)이 金宗瑞(김종서)·鄭麟趾等(정인지 등) 을 命(명)하여
太祖 以來 實錄(태조이래 실록) 가운데
「詔조」·「朕짐」 等 字(등 자) 곧
鄭道傳(정도전)의 「敎교」·「予저」 等 字(등 자)로 改한 者(개 한 자)를
다시 原文(원문)대로 恢復(회복)하였다.
그러나 그 全部(전부)가
거의 鄭道傳의 竄改(정도전의 찬개)한 原本(원본)이었으니,
하물며 蒙古帝朝(몽고제조)의 竄削을 當(찬삭을 당)한 者야 어찌 恢復(회복)하였으랴?
그런즉 高麗의 史料(고려의 사료)도 史料될만한 史料는
三國의 史料(삼국의 사료)와 같이 모아 秘藏(비장)속에 갇혀 있게 된 것이오.
< 출처: 朝鮮歷史上 一千年來 第一大事件>

屛逐(병축): 쫓겨남
告終(고종): 죽음을 알림
自主(자주): 독립적으로 하다
竄改(찬개): 제멋대로 고치다
掣肘(철주):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함. 제약
他方(타방): 다른나라
始因(시인): 시작한 계기
意氣(의기): 적극적인 마음
秘藏(비장): 은밀한 창고
奉承(봉승): 뜻을 받들어 이음
蒙古帝朝(몽고제조): 몽고제국
竄改(찬개): 멋대로 나쁘게 고치다
詔(조): 왕이라는 칭호
朕(짐): 천자가 자기를 부르는 말
予(여): 나
竄削(찬삭): 없애다.

(옮기면)

(三) 몽고의 세력이 쫓겨나자 고려조의 운명도 또한 끝났다.
이씨왕조가 창업하자 비록 내정과 외교를 다 독립적으로 하여
다른 나라의 제약을 받지 아니 하였으나,
다만 그 창업의 계기가 <위화도의 회군>이 되므로
삼국사기 이외의 역사책들을 세상에 널리 알릴 적극적인 마음이 없어서
송도의 비밀창고가 다시 한양의 비밀창고로 될 뿐이었다.
정도전이 『고려사』를 편찬할 때,
『삼국사기』의 방식을 받들어 계승하여
몽고제국 시절에 미쳐 다 치 못한 나머지까지 제멋대로 고치더니,
그 뒤에 세종이 김종서, 정인지 등에게 지시하여
태조이래 실록가운데 「詔조」·「朕짐」 등의 글자
곧 정도전이 「敎교」·「予저」 등의 글자로 고친 글자들을
다시 원문대로 회복하였다.
그러나 그 전부 거의 정도전의 조작한 원본이었으니,
하물며 몽고제국 당시에 삭제당한 내용이야 어찌 회복하였으랴?
그런즉 고려의 사료도 사료가 될만한 사료는
삼국에 대한 역사기록들과 같이 모아 비밀스런 창고속에 갇혀 있게 된 것이오.
< 출처: 조선역사상일천년래 제일대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