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위의 안부, 이중기
밥상 위의 안부
오늘도 식당밥으로 점심을 이우셨군요
은유와 상징으로 맛보신 농촌은 어떠했나요
표고버섯 고사리 도라지 바지락에
된장국 곁들인 삼치구이 백반을 드시다가
버릇처럼 간혹 손이 간 김치 몇 조각이 혹
그대 입맛을 다치게 하지는 않았습니까
얼핏 젓갈냄새 풍기는 김치쪼가리
걸쳐 먹은 밥 몇 숟갈에서
몸파는 어린 조국의 안부를 들었습니까
오늘도 밥상 위에서 안부를 묻습니다
우리에게 나라는 무엇입니까
흑백의 거친 폐허를 거처로 삼은 사람들이
북만주나 외몽고에 전세 들고 싶은 날,
생인손을 앓는 목민심서 문장 속으로 들어가니
토사곽란의 길 끝에 잘 늙은 절 하나,
시줏돈은 색주가에 다 퍼날렸는지
俗때 묻힌 대웅전은 장엄하나
요사채는 기울어 덧쌓인 폐허입니다
짐승의 피를 달래 인간을 이롭게 한
옛 사람의 손길은 산중까지 닿아 있는데
무엇을 못 이겨 대들보가 무너지는지
늙은 젖무덤 같은 산허리꼬집어 물으니
우야겠노 우야겠노 중중대는 물소리 끌며
물거리를 한 짐 지고 노인이 산을 내려갑니다
그 사람 사랑방에 등짝을 풀고 싶은 날,
입술이 붉은 수다새들만 들락거리는
이 절간에서 빌어먹던 중은 출타중입니다
- 이중기시집[밥상 위의 안부]-창비,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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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ccessgr.with (74) 5 days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