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3권(29)

in AVLE 일상yesterday

제2절 전투 경과 개요

제1항 전투 경과의 개요

7월 9일의 정황

동해안 울진에 상륙한 적 제766부대는 태백산맥을 이용하여 아 후방지구인 경북 각지에서 민심을 교란하며 보급로 차단을 목적으로 보현산 부근인 구암산과 불노동 일대에 유격대 약 1.300명을 투입해 왔다. 적이 동 지대를 중심으로 하여 아 후방 위협을 책동하기 시작하자 아군은 제3사단의 일부 병력으로 동 적을 격멸하게 하였으나 동해안 영덕 작전의 급박사태에 비추어 제3사단의 일부 병력은 부득이 영덕으로 이동하고 이 전투지역을 경북 경찰에 인계하였다. 경북 경찰은 관하 각 서 특공대와 지서원을 동원하여 해 적에 대비하였다.

7월 11일의 정황

적은 계속하여 아 후방에 침투를 기도하여 영천군 운주산에 집결한 적 유격대 150명이 동 군 북안면 유상리로 남하 공격하여 왔으나 08:00 아 경찰대는 미군의 협조 하에 즉시 공격을 개시, 동 적을 운주산으로 격퇴하고 또한 20:00에 영천 경찰서 경찰대는 영천주재 경찰지대와 협동 공격으로서 영천 동북방 12㎞ 지점인 영천군 고경면과 자양면 경계선에서 영천으로 남하하여 오는 적 유격대 약 200명을 문복산으로 격퇴하였다.

7월 12일의 정황

05:00 청송 경찰서 경찰대와 부남 지서원은 합동작전으로 청송군 부남면 동점리 495고지에 출현한 적 120명을 추격한 바 적은 죽면 상리동 부근으로 도주하였다.

한편 영덕군 창수면 등문산 부근에서 아군에게 참패 당한 적 약 200명이 12:30 구암산 및 운주산 중간인 포남동에 침투하여 왔으나, 경주경찰서 특공대는 안강 기계를 경유, 포남동에 진출, 적을 공격하여 다대한 손실을 주었다.

7월 13일의 정황

적 유격대 80명이 영천군 북안면을 경유, 경주군 산내면 신계동에 침투하여 옴을 발견한 경주경찰서 특공대는 15:00 동 적을 문복산에서 포위하고 3시간 교전 끝에 이를 섬멸하였다.

7월 14일의 정황

안동에서 재편성한 강원도 비상 경비 사령부 제3대대는 청송에 이동하여 동 대대 지휘소를 설치하고 예하 정선 경찰 중대 경찰대를 구산동에 배치, 부근의 적을 소탕하며 계속 도평동에 진출하여 동 지대를 방어하게 하였다. 그리고 예하 평창 경찰 중대를 청송 전방 1.5㎞ 지점(ER045~205)에, 동 사령부 제9대대 제3중대를 청송 괴정(槐亭)에 각각 배치하고 적의 준동을 저지하고 있었다. 한편 동 사령부 제6대대는 동 대대 지휘소를 구지동(ER130~950)에 설치 관내 각 경찰 지서원을 동원하여 주력을 보현산 및 운주산 중간 죽장면과 기계 간의 경계선인 중개리(ER097~962)에 배치하여 영덕 방면으로부터 남하 침투하는 적과 보현산 및 운주산을 유동하는 적을 포착 격멸하고 있었다. 11:00 제3대대 정선 경찰 중대가 방어 중인 도평동에 적 유격대 200명이 길안천을 도하하여 아 경찰 정면으로 접근해 왔으므로 정선 경찰 중대는 즉시 해 적을 강변에서 포착 공격을 가하였다. 그러나 적은 후속부대 약 1,500명의 증원을 얻어 각종 중화기 엄호하에 아 경찰대를 삼방면으로 포위공격하여 왔으며, 아 경찰대는 3시간에 걸친 치열한 교전 끝에 포위망을 돌파 15:00 도평동 북방 2㎞ 지점인 564고지에 철수, 부대를 재편한 후 계속 도평동 전면에 진출한 적에 반격전을 감행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16:00 전원 청송으로 철수하였다.

7월 15일의 정황(부도 제18호 참조)

청송에 철수한 아 제3대대 정선 경찰 중대는 대대본부에서 탄약을 수령하고 11:00 예하 평창 경찰 중대와 제9대대 제3중대의 증원을 얻어 도평동 동북방 및 동남방 뒷산까지 진출 배치 측면으로부터 반격전을 감행 1시간여의 치열한 교전 끝에 12:00 적은 월매동 부근으로 도주하고 그 후 도평동은 아 제3대대가 완전 탈환하여 전방에 진출 배치하였다. 19:00 적은 재차 도평동 아 경찰 진지 전면에 침공해 왔으므로 아 제3대대는 일시 도평동을 철수, 도평동 동북방에 정선 경찰 중대를, 서북방에 평창 경찰 중대 및 제9대대 제3중대를 각각 배치, 계속 침공을 기도하는 적을 극력 저지하고 있다가 21:00에 이르러 제3대대는 전 병력을 도평동 동북방인 부남면에 철수 배치하였으며 16, 17 양일간에 걸쳐서 경비 수색에 임하였다. 한편 도평동에 침입한 적 유격대는 17일에 이르러 보현산 부근으로 이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