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CUT|기억 의심

in #kr-pen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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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은 감각 의존적이다.

대부분의 순간을 색깔과 온도, 냄새로 기억한다.
어떤 추억을 년, 월, 일로 이야기하는 것이
내겐 거의 불가능하다.

그저 장미가 필 때쯤이었다고,
바다가 검은 날이었다고,
바람에 계피 향기가 묻어왔다고,
목에 두른 머플러가 까끌거렸다고,
구두에 쓸린 상처가 무척 아팠다고,
둘 사이를 지나던 바람이 칼날 같았다고,
그렇게 온몸을 다해 기억할 뿐이다.

감각 따위는 느껴진 직후
소멸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간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나는
나의 흐린 추억을 순수하게 믿을 수 없다.

추억을 믿을 수 없는 것만큼 이상한 일이 또 있을까.



[ONE CUT] 시리즈는 한 장의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써 내려간 이야기 입니다.

-#ONE CUT | re·fine
-#ONE CUT | 속성에 대하여
-#ONE CUT | 태풍이 지나가고
-#ONE CUT | 그러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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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요즘은 흐릿한 기억만이 남네요.
그래서 더욱 일부라도 스팀잇에 남기려고 합니다.
다 기억하는 것도 고통일 수도 있기에...

필소굿님 글을 보니
'좋은 기억만 남기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게 아닐까 싶네요.
어차피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수 없고, 또 고통스러우니까요..

하루키가 생각나는 포스팅입니다ㅜㅡ

그런가요 ㅎㅎ
좋은 아침입니다. 북키퍼님 ^^

태안바다 사진인가요?

제주도 광치기 해변입니다.
검은 모래가 많은 편이죠. :)

밀려간 기억이 저 지구 반대편의 이야기까지 잔뜩 실어
배작가님께 기쁘게 돌아 올 거예요
지금...배작가님이 일상을 기적처럼 살아가고 있으면,
기억이 믿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올 거래요..

그러면 쓸 이야기거리도 참 많아지겠네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

흐- 공감입니다. 지나간 일은 곧바로 기억에서 조작되고 왜곡되고 과장되곤 하죠.. 그래서 저도 제 몸을 거쳐간 일이라고 해도 별로 스스로 신뢰하지 않는 편입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에 속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써요. ㅎㅎ

사람는 믿는대로 보고, 듣고, 느끼고, 심지어 기억하기도 하죠. 어쩌면 행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종종 내 기억을 믿지 못한다면 무엇을 믿어야 하나, 망연해지기도 합니다.

아아, 배작가님 기록해두지 않으면 저 역시 그날의 감각으로 기억하곤 해요. 년, 월, 이런 숫자하고는 친하지도 않아서...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은 날도 1년중에 여러번 그 날의 온도와 바람이 불기라도 하면 그 날을 상기시켜주곤 하지요- 감각의 기억은 놀랍도록 정확해서 가끔은 T_T.. 울적해지기도 해요

맞아요. 감각이라는게 참 신기하고 무섭기도 하죠.
스쳐지나가는 바람의 느낌도, 향기도, 온습도 모두
잊은지 오래 된 기억의 실마리가 되곤 하니까요.

행사는 잘 치루셨는지 모르겠네요.

족장님, 응원해주신 덕분에 잘 치렀습니다.
알게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는지 지금 살짝 넋이 나갔지만요. ㅋㅋ

마이 아파????

머리에 꽃 꼽고 돌아 다니시면 안됩니다. ㅋㅋㅋ

아무렴요. 집에서만 꼽고 있어요. (...?)

추억과 기억은 자신의 의해 조작(?)되고 자기 중심적으로 남는 것 같아요. 느끼는 감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가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기억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의외로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네요.
결국 모든 것을 판단하고 기억하는 중심은 본인일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 판단 기준에 감각이 중요한 작용을 할테고요...

제 소중한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흐려진 기억은 아쉬움이 큰 거 같아요.

소중한 기억 하나 불러드렸다니 기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