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패한 직장인이다 | 3 내 18년 직업 기구설계의 시작

in #kr-pen6 years ago (edited)

실패한 얘기를 써야 하는데... 이상하게 성공한 얘기 같은 이야기가 2편까지 이어졌습니다. 아마도 제가 식당에서 일할 때 너~~~무 잘 나갔기에 마치 성공한 직장인 스토리같이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겨우 21살에 칼질은 최고 실력이었고, 다룰 줄 모르는 채소나 고기가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저는 호텔급 식당의 주방장이 되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리고 실력 좋다고 나날이 교만해졌죠. 그 벌은 가스폭발 후유증으로 인한 손 마비였습니다. 기적을 기다리거나 신경 이식 수술을 하거나 에서 기적을 기다렸고, 하늘의 도움으로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저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합니다.

저는 종교가 없었습니다. 음... 종교 얘기를 꺼내기 참 불편한데 꺼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종교로 인해 주방장의 꿈을 버렸거든요. 겨우 21살짜리 꼬마가 현란한 칼 솜씨를 뽐냈고, 못하는 게 없을 정도로 기술들을 흡수해버린, 말 그대로 요리 천재(?)이자 요리 꿈나무가 요리를 버린 이유는 단 하나 종교 때문이었습니다. 요리하다가 군대를 가고, 제대한 다음에도 요리를 해서 호텔급 주방의 주방장이 되려던 꿈은 종교적 이유로 단숨에 버리고 맙니다. 그 이유는, 주방에서 일하면 주일에 교회를 갈 수 없다는 것 하나였습니다. 일반 직장인이 돼야 주일에 쉴 수 있고 교회에도 갈 수 있다는 생각에, 평범한 직장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웹 프로그래머가 되기로 합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던데, 헐~~~ 1년만 지나도 강산은 변하더군요. 분명 제가 군대에 갈 때만 해도 인터넷이라는 용어도 어쩌다 한 번 들어본 정도였습니다. 그땐 PC 통신 시대였고 인터넷은 뭔지 몰랐던 때였죠. 그러던 어느 날, 휴가를 나와 보니 PC방이란 게 생긴 겁니다. 사람들이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있더군요. 저건 뭐지? 해보니 잼나더군요. 와~~~ 끝내주게 잼나네. 그렇게 인터넷이란 게 세상에 들어왔고 제가 병장을 달았을 땐 회사들이 홈페이지 만들기에 덤벼들었던 때입니다. 그냥 재미 삼아 HTML 공부를 하다가 제 홈페이지도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땐 나모 웹에디터가 있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메모장에 순수 타이핑해가며 홈페이지를 만들었죠. 제가 병장을 달았을 땐 군대에서도 정보 어쩌고 하면서 병장들 상대로 인터넷을 가르쳤습니다. 와~~~ 신세계. 이메일도 만들고 다음 카페 들어가서 제목 대빵 크게 쓰는 태그도 배우고, 제목이 반짝이는 태그도 배우던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뭔가 예쁘게 하는 건 자신이 없었기에 웹디자이너 말고 웹 프로그래머를 배워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병장 시절 책 한 권 없이 인터넷 뒤져가며 열심히 공부해서 제 홈페이지도 만들고는 '제대하면 학원 등록해야겠다. 인터넷 시대다. 요리사의 꿈은 주일날 못 쉬니까 과감하게 버리자. 난 웹 프로그래머가 돼야 짓.'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대를 얼마 앞두고 말년휴가를 나갔을 때입니다. 아는 분(어떻게 아는 분인지는 비밀. 음... 쓰다 보면 안 비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암튼.)이 제게 제대하면 뭘 할거냐고 묻더군요. 전 자랑스럽게 웹 프로그래머가 될 거라고 했습니다. 웹디자인 말고 웹 프로그래머라고 해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웹디자인과 기구설계를 비교하며 설명해주시더군요. 그분은 기구설계를 배워두면 평생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며 자기 밑에 와서 배우라고 했습니다. 듣고 보니 솔깃했습니다. 그분은 작은 사업을 하고 계셨고 그분도 기구설계 출신 사업가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제대 2주 만에 한 엔지니어링 회사에 입사를 합니다. (같이 웹 공부했던 친구는 대박이 났고 저는 평범하게 롱런 중입니다. 그 당시 웹 공부했던 사람들은 다들 어마어마하게 돈을 벌었죠. 저는 홈페이지 수요가 폭발하는 시기에 초기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기구설계와 맞바꿨습니다. 잘한 판단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음,,, 반반?)

기구설계자로 18년이나 살고 있는 제 첫 기구설계 직장은 엔지니어링 회사였습니다. 설계를 외주 받아서 개발을 해주는 회사였지요. 직접 생산(양산)을 하진 않았고, 목업(샘플)이나 금형(사출금형, 프레스 금형 등)까지만 일을 했습니다. 제가 입사해서 처음 한 거는 백과사전만 한 오토캐드 2000 책을 보며 혼자 공부하는 일이었습니다. 다들 바빠서 자기 일하기 바빴고 저는 뭐 아침에 출근하면 책 보며 실제 캐드로 따라 그리고 6시 되면 퇴근하고 했습니다. 사장님이 '내 조카야.'라고 저를 소개한 바람에 저를 터치하는 사람도 없었고 제 사수는 자연스레 사장님이 되었습니다. 오토캐드 그까이꺼 혼자서 책 보고 한 달이면 배우더군요. 한 달쯤 지나니 정말정말 너무너무 간단한 걸 하나 주며 그리라고 했습니다. 아~~~ 드디어 첫 설계. 열심히 잼나게 그렸습니다. 그런데... 금형을 파고 드디어 사출이 나왔습니다. (금형은,,, 붕어빵 찍는 틀처럼 생겼고, 사출은 플라스틱 가루 녹여서 붕어빵 찍듯 플라스틱 찍어내는 걸 말함.) 헐... 조립이 안 되더군요. ㅋㅋㅋㅋㅋㅋㅋ 와~~~ 욕 엄청 먹었습니다. 뭐 아무도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ㅠㅠ 그렇게 저는 사수에게 강행군을 당합니다. 설계를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는데요, 얼마나 무서운지 너무 많이 혼나서 화장실 가서 울기도 했습니다. 나이도 저보다 30살 정도 많은 아버지 같은 분이었고 호랑이같이 무서워서 정말 눈물 쏙 빠지게 혼자고, 또 화장실 가서 눈물 빼며 배웠지요. ㅋㅋㅋㅋㅋ

1년쯤 지나자 사무실 기구설계자들이 하나둘 저를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겨우 2년 차가 별별 걸 다 설계하기 시작했고 속도도 엄청 빨랐습니다. 게다가 에러도 거의 없을 정도로 설계를 했습니다. 거래처 사람들은 '경력 1년 맞아요? 3년은 넘은 거 같은데?'라는 말을 했고, 제가 3년 차가 됐을 땐 '도면 보고 경력 5년 정도 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엄청 어리네요.'라는 말을 들을 정도가 됐습니다. 사람들은 '배우는 재주가 있다' '배우는 능력이 뛰어나다' '하나 알려주면 열을 아는 게 아니라 그냥 다 안다'라고 칭찬들을 했습니다. 저는 겨우 3년 차에 과장급 정도의 실력으로 혼자 설계 일을 해치우기 시작했습니다. 재밌고 씐나더군요. 흠... 이상하게 성공 스토리 같은데,,, 이제부터 고난이 시작됩니다.

회사가 망합니다. 제 첫 직장은 받은 수표가 부도나면서 업체들 대금은커녕 직원들 급여까지 밀리게 되고, 결국 직원들 하나하나 떠나 저만 남게 됩니다. 다 떠나고 저만 남아 썰렁한 사무실. 사장은 영업 뛰느라 주로 외근. 저는 혼자 일하며 버텨보지만 벅찼습니다. 사장이 아는 분이기에 다른 직원들처럼 급여 밀렸다고 매몰차게 퇴사할 순 없었지만, 한계는 딱 1년이었습니다. 저는 결국 급여를 못 받으며 일한 지 1년 만에 퇴사를 합니다. 돈이 없는 기간도 한두 달이지 1년이 되니 못 버티겠더군요. 여자친구를 만나든 친구를 만나든 돈이 필요한데 만원 한 장이 아쉬운 시절이었습니다. 교통비도 감당이 안 될 정도였지요. 그렇게 전 완전 거지가 된 상태에서 밀린 월급도 퇴직금도 단 한 푼 못 받고 퇴사를 합니다. 다른 직원들은 노동부에 접수해서 다 받아 갔더군요. 그런데 저는 '아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노동부에 접수할 수도 없었습니다.

재취업을 하기 위해 여기저기 이력서를 냈습니다. 어디 한 곳에서도 연락이 안 오더군요. 이력서에 내가 설계한 제품들 수십 개를 적어놨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어떤 회사도 고졸 기구설계를 뽑으려 하지 않았고, 어떤 회사도 3D를 할 줄 모르는 기구설계를 뽑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땐 설계가 2D에서 3D로 거의 넘어간 때였고, 저는 오토캐드로 2D만 할 줄 알던 때였습니다. 아무리 실력이 좋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어도 우물 안 개구리였더군요. 어떤 회사도 고졸에 경력 3년, 2D만 할 줄 아는 사람을 뽑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 내가 전문대만 나왔어도... 모집요강에 적힌 자격 제한은 대부분 전문대 졸이었고, 저와 나이가 같은 전문대 졸 기구설계자는 2년 차, 저는 4년 차. 인사 담당자 눈엔 별 차이가 안 나 보였겠죠. 결국 사람을 채용함에 있어 스펙은 중요했습니다. 실력을 알 수는 없으니 졸업장을 볼 수밖에요.

그래서 다시 식당에 갔습니다. 다행히도 주일 오전에 교회에 갈 수 있게 빼준다는 식당을 구했고 저는 거기서 열심히 일을 합니다. 주방 보조를 뽑아놨더니 칼질이며 요리며 너무 잘해서 사장은 땡잡았죠. 그렇게 거기서 일하며 다시 생각을 고쳐먹어 봅니다. 그래, 고졸이 무슨 사무직이야. 그냥 요리사 하자. 3.5년의 기간은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하자. 하지만 하늘은 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펄펄 끓는 물이 담긴 통이 엎어지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뭐... 당연하게... 펄펄 끓는 물은 제게 쏟아졌고,,, 저는 뭐 흠... ㅎㅎㅎ ㅠㅠ 심각한 화상을 입고 또 병원에 갑니다. 아~~~ 이런...

참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몸쓰는 일을 하지 말라는 신의 뜻인가. 그럼 다시 웹을 배워봐? 하지만 그땐 이미 웹 쪽 인력은 포화상태였습니다. 저와 같이 공부를 시작했던 친구는 이미 자리를 잡아 프리랜서 하며 돈을 펑펑 벌고 있었죠. 그 친구는 제게 '그러게 왜 기구설계를 배웠냐. 지금은 너도나도 다 배운다고 난리라서 자리도 없어.' 내 인생 왜 이러나 한스럽기도 했습니다. 이런 제를 목사님은 많이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네, 저를 전도한 그 전도사님은 목사님이 돼 있었죠. 저를 수제자라고 사람들에게 소개하면서도, 신학교 가겠다고 했더니 말렸던 목사님은 주위 사람들에게 제 얘기를 하고 다닙니다. 어디 취직시켜주려고요. 네, 저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뭔가를 참 잘 배우는 사람입니다. 주유소 사건 이후 저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교회 다닌 지 3개월 만에 입대를 합니다. 겨우 3개월 만에 제자 과정 모두 마치고 성경 1독을 마치고 군대를 갔고, 군대에서 성경공부를 하며 무럭무럭 성장합니다. 겨우 3개월 배운 사람이 웬만한 신학생 전도사보다 더 많이 알았고 신학교를 가고자 결심도 했지요. 하지만 목사님은 '내가 너무 가난하게 자랐기에, 네가 얼마나 가난하게 자랐는지 알기에 너는 신학 안 했으면 해. 신학교 나오면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하거든. 아주 힘든 길이야. 그러니까 넌 신학 하지 말고 그냥 직장 다니며 평신도 사역자가 됐으면 좋겠어. 그래도 내 수제자니까.'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을 겁니다. 첫 직장에선 1년 치 급여와 퇴직금도 못 받고 그만뒀고, 다시 식당 갔더니 또 화상. 어디 취직하려고 해도 고졸 4년 차 개발자를 받아주는 회사는 없고.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저 얘기를 하고 다니며 저를 취직시켜 주려고 애쓰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저는 취직합니다. 목사님이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소개로요. 업계 2위의 디지털 도어록 회사라는 튼튼하고 자금력 좋은 회사였습니다. 입사해보니,,, 뭐... 저보다 실력 낮은 사람들이 다 저보다 연봉이 높더군요. 학력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높은 연봉의 그들과 함께 두 번째 직장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취직된 게 어디냐며... 그렇게 학력차별을 몸으로 느끼며 직장생활을 합니다. 기구팀 팀장은 자꾸 제게 일을 맡겼는데요, 이미 일이 많은데도 계속 저에게 만 맡겼습니다. 이유는 제가 가장 일을 잘 해서. 그래서 따졌습니다. '제가 일을 가장 잘해서 제게 일을 많이 주는 거라면, 그만큼 연봉도 맞춰주셔야죠.' 팀장은 알았다고 반드시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팀장도 고졸이더군요. 그래서 저를 더 챙겨주긴 했습니다. 반드시 급여 올려주겠다고 약속하고는 연구소장과 다투기도 했지요. 일을 잘하는데 학력만 낮을 뿐이다, 연봉 올려줘야 한다. 하지만 연구소장은 매번 거절했다고 합니다. 팀장은 거절당해도 또 건의하고 또 건의했지만 매번 연구소장은 거절을 했고 팀장은 매번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이런 게 차별이구나'를 배웁니다. 그때가 28살이었습니다. 기구설계 경력 4년 차.

기분 더러워서 막무가내로 일했습니다. 디자이너와 욕하며 싸우고, QC와 물건 집어던지며 싸웠지요. '젠장할, 기분 더러우면 날 짜르던가...'라는 마음이었습니다. 특히나 디자이너와 심하게 싸웠는데요, '내가 당신 개새끼냐. 똥개 훈련시키냐. 니가 해.'라고 말하며 싸웠습니다. ㅋㅋㅋ 정말 성격 더럽네. 나 진짜 쓰레기였네. 연구소 전체회의 시간에 연구소장한테 '하기 싫으니까 그냥 저를 짜르세요.'라고 덤비기도 했습니다. 연구소장이 내가 고졸이라고 차별하는 것 같아 그냥 막 나간 거죠. 망나니가 따로 없었습니다. 정말 개놈이었죠. 이렇게 저는 고생길에 오릅니다. 계속된 학력차별로 마음 삐뚤어짐으로 인해 고난의 길이 시작됩니다. 매우 길고 처참한 고난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렇게 저는 실패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갑니다. 마치 실패하려고 작정한 사람처럼요.

(다음에 이어서...)

나는 실패한 직장인이다 | 0 프롤로그
나는 실패한 직장인이다 | 1 한식당 설거지부터 시작해서 칼질 고수가 되다
나는 실패한 직장인이다 | 2 화상 후유증으로 손이 마비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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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님 이전글시리즈와 이번 글까지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혹시 세이노의 가르침이라는 글을 아실지 모르겠는데 그 글에 나오는 인물 중 한명의 인생처럼 느껴졌어요.

기량이 뛰어나고 내실이 대단하신분 같아요. 전 아무리 봐도 실패한 직장이야기라고 생각이 아직 들진 않네요.
능력자의 고생스런(?) 직장이야기 같습니다.

앞으로의 남은 고난과 성장스토리 기대됩니다.
꼭 끝까지 이 시리즈를 마무리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세이노의 가르침, 검색을 해보니 PDF가 있어서 다운받았어요. 학력이 낮은 사람에게 한 말이 있어서 보니, 사업하라고 하네요. ^^ 흠... 그리고 대리운전 같은 노동 말고 배우기 어려운 걸 배우라고도 하고요. 제 직업 기구설계는 적어도 3년은 배워야 혼자 할 수 있고 5년은 배워야 에러를 줄이거든요. 배우기도 어렵고 희귀성이 매우 강한 직업이긴 하지만 이 기술로 사업을 하기엔... 흠... 생각을 더 해봐야겠어요. 좋은 책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

저도 돈 못받고 떠나 온 직장이 있다죠. 지금이라도 빋고 싶네요 ㅎㅎ
화상을 두번이나 입다니요~ㅠ

이미 십년도 더 지난 일... 잊어야죠. ㅠㅠ

아 정말 음식은 천직이 아니라고 했네요.
화상 입은 곳은 괜찮은 거죠?

또 웬지 회사에서 무슨 일이...
불안 한데요. ^^

전 아무래도 몸쓰는 일을 하면 안 될 사람인가봐요. ㅎㅎㅎ

정말 파란만장하네요. 전 오직 외길을 가고 있는데....

지금은 기구설계만 하고 있긴 하지만... ㅡ.ㅡ

아이공 고생이 많으셨네요
지금 손은 괜찮으신가요??
다음화는 더 힘드셨던 이야기 인가영?

지금은 괜찮아요. 터널증후군이... 좀... 거시기하긴 합니다. ^^

눈썰미가 참 좋은 거 같아요.
독학으로 다하다니
부럽습니다.

그냥 뭐든 잘 배우는 것 같아요. ^^

나하님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 같지 않네요..ㅎ
다음 이야기도 기대하겠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이야기일지도요. ^^

스팩이 아닌 실력을 봐주는 지혜로운 회사에 들어가면 승승장구할것 같은데
안타깝네요 그래도 모순된 회사에서 기죽지 않고 큰소리 치며 실력행사를 했다니 나름 통쾌했습니다~

그럼 참 좋을 텐데... 회사는 사람을 채용할 때 그 사람의 실력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스펙 뿐이겠더군요. 같이 일해보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의 실력을 모르니까요. 안타까운 현실이죠. 그래서 졸업장이 필요하더라고요.

흥미진진하게 잘봤습니다.ㅎ

고맙습니다. ^^

화상을 당하셨을때 정말 많이 힘드셨을것 같아요
다음 이야기도 많이 궁금해집니다~

첫번째 화상이야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해도, 두 번째 화상은 너무 어이없고 화도나고 했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