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캐리 (Carrie, 1976/2013) - 알 수 없는 걸 알 수 없다고 할 때
- 요새 아이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 말은 의외로 역사가 깊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말했다고 알려진 사람 중에 가장 연대가 이른 사람은 소크라테스죠. 소크라테스가 활동했던 시기는 기원전 5세기 경으로, 예수가 태어나기 약 400년 전의 사람입니다.
- 공포와 혐오
잘 알지 못하는 대상을 깎아 내리는 건 쉽습니다. 우리는 모른다는 사실에 공포와 혐오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단순명쾌한 사고를 지닌 아이들과 나름의 확고한 태도를 보이는 어른들 사이에 위치한 청소년은 늘 알 수 없는 존재였고, 그래서 언제나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사람들은 '요즘 애들'이 어떤 존재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요즘 애들도 '요즘 애들'이 어떤 애들인지 설명하지 못하죠. 어느 시대든 청소년은 주류 사회에서 뒤로 몇 발짝 물러나 있고, 본인의 의견을 말하기보다 타인의 요구를 듣는데 더 익숙합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두 편의 영화 캐리는 이와 같이 고립되어 있는 청소년의 초상을 극단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 청소년으로 산다는 것
기독교 근본주의에 빠져 있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캐리는 어머니의 순종적인 딸이고 기독교의 독실한 신자이며 눈에 잘 띄지 않는 학생입니다.
캐리의 초경과 함께 출발하는 영화는 이제 막 청소년의 고된 길로 들어선 캐리의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성적인 생리 현상을 죄악으로 미루는 어머니 탓에 캐리는 자신의 몸에서 벌어지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공포에 질린 캐리에게 생리대를 던지며 즐거워하죠.
- 나는 너를 알아
많은 사람들이 캐리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중에 어떤 것도 캐리라는 인물을 정확히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캐리는 처음으로 청소년인, 알 수 없는 자신과 마주합니다. 초경 사건과 함께 얻은 초능력에 대한 캐리의 탐구는 어른이 되어가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탐구이기도 합니다.
캐리를 괴롭힌 행위에 죄책감을 느끼는 수와 캐리를 동정하는 콜린스 선생, 그리고 끝까지 캐리를 괴롭히는 크리스는 모두가 조금씩 캐리를 안다고 생각함으로써 그녀를 파멸의 현장으로 몰아갑니다. 캐리의 비극은 사람들의 몰이해에서 비롯됩니다. 모를 수밖에 없는 대상을 안다고 어설프게 정의내림으로써 맞이하는 비극인 셈입니다.
- 나는 너를 모르겠어
2013년에 리메이크 된 캐리의 캐치프라이즈(You will know her name)는 그런 의미에서 재미있게 읽힙니다. 우리가 캐리에 대해서 아는 것이 뭐가 있을까요? 혹은, '요즘 애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요?
모르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행위는 가끔 무지막지한 폭력이 됩니다. 무지의 지를 강조했던 소크라테스조차 휘둘렀던 폭력이니 '요즘 애들'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 대충 짐작할 수 있겠죠. 서로에 대한 이해는 알 수 없는 걸 알 수 없다고 말할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캐리에게 필요했던 건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 아니라 "너를 잘 모르겠어."가 아니었을까요.
- 무명 시절의 존 트라볼타가 별 거 없는 역할로 나옵니다. 물론 1976년판에서요.
- 클로이 모레츠가 열연한 2013년판은 1976년 버전과 내용이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두 영화를 모두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굳이 고른다면 저는 2013년판을 추천합니다. 특수효과가 멋지거든요.
- 팟캐스트 방송 밥상 엎고 영화에게 이단옆차기 06회에서 다루었습니다.
3.5/5 캐리 (1976)
4.0/5 캐리 (2013)
2017 03 06.
2018 01 05.
"걔들은 모두 널 비웃을 거야."
[Ourselves 캠페인] 셀프보팅을 하지 않고 글을 올리시고 ourselves 태그를 달아 주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보팅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리스팀 덕분이었네요. 감사합니다!
오호.. 흥미로운 캠페인을 제시하시는 군요.. 저도 동참하겠습니다...!!
앗. 저도 다른 분들이 하시는 캠페인에 동참 중입니다. ^^ 셀프 보팅은 어쩐지 쑥스러워서 안 하고 있었는데 마침 관련 캠페인이 있더라고요.
영화보고 느낄 순 있지만, 글로 정리하는건 너무 어렵더라구요ㅎ 좋은글 감사합니다. 팔로우하고가요~
맞아요.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막상 글로 적으면 다 나온 것 같지 않을 때가 있죠.
모르는 것을 인정할 때부터 알기 시작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홍보해
어떻게 보면 그게 진정한 관계의 출발점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