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in #kr7 years ago

나는 여러모로 외강내유의 사람이다. 말 그대로도 그렇고 건강도 그렇다. 보기와 달리 0.3 샤프심 같은 멘탈을 지니고 있고 기골이 장대하여 병 같은 거 안 키우게 생겼으나 온갖 염증과 병을 달고 다닌다. 게보린 3대 통증 중 2개가 상시 대기 중이며 위염 장염은 나의 bff, 베스트 후렌드 뽀레버이고 디스크와 소소한 관절염은 물론이다. 활자와 픽셀의 노예이기에 나쁜 시력과 안구건조증도 소유하고 있고... 지금 당장 아픈 것만 나열해도 이렇게 줄줄이 소세지이다. 이렇게 뜬금없이 나의 병력을 오픈하는 이유는 내 병력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5월에 있는 13년 전통의 연례행사를 소개하고 싶어서이다. 나는 그것을 ‘메가 위장염 페스티벌’이라 부른다. 레이디스 앤 젠틀맨, 렛 미 인트로듀스 메가 위장염 페스티벌.

메위페는 매년 5월 열린다. 아직도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매년 5월 중으로 열리고 보통 일주일 정도로 진행된다. 보통 위염 장염이 한 번에 오며 앞에 ‘메가’라는 단어가 붙는 것은 이 축제의 규모를 말해주는 것이다. 풀어서 말하면 매년 5월 극극극심한 위염과 장염에 시달리는 축제이다. 그런데 왜 하필 5월일까... 수년간 고민을 했었다. 날씨 풀리면서 과식을 해서인가? 5월에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은가? 5월마다 특정 음식을 섭취하는가? 등 수많은 경우를 생각해보았지만 아직까지도 미스터리에 싸여있다.

제 1회 메위페는 초등학교 때였다. 5월 5일 빨간 날 발병한 이 페스티벌은 처음이자 마지막(아직까지는...) 응급실 경험을 가져다주었다. 올해로 13회를 맞이한 메위페이지만 1회만큼의 임팩트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사실 그 전까진 제법 건강한 어린이였는데 메위페 개최 후로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했다. (추측이지만 매우 그럴듯하여 나는 이 가설을 믿고 있다.) 어쨌든 1회는 여러모로 전설이 되어 남아있다. 응급실을 갔다는 것부터가 이 축제의 스케일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장염이 극도로 심하면 사람이 헛소리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학문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회였다. 내가 응급실 가며 헛소리 하는 동안 집에 있던 형제는 어린이날을 이렇게 보낼 순 없다며 엉엉 울었다는 소문이 전해진다.

2회는 아마 수업 중 열렸던 것 같다. 학교에서 우유급식이 나올 때였는데 당시 담임선생님은 우유를 빠르게, 깔끔하게 마신 사람에게 포상을 내리셨고 그것은 쓸데없는 데에 승부욕을 불태우는 나에게 큰 자극이었다. 이상하게 4월까진 괜찮았는데 5월 어느 날, 평소와 같이 우유 원샷 때리고 스티커를 받았는데 한 한 시간 후 속이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똥배는 아닌데... 왜 이러나 싶었던 순간 페스티벌의 메인, 토사곽란이 시작되었다. 주변 아이들은 경악하여 나의 주변을 떠났지만 몇 착한 아이들(아직도 고마워...)이 손수 그 흔적을 치워주며 나를 살폈다. 선생님께선 부모님을 호출하셨고 그렇게 나는 점심도 먹기 전 집으로 실려왔다.

3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회이다. 이때도 우유 먹다 그랬는데... 우유는 나의 적이다. 하지만 라떼는 맛있는 걸...! 어쨌든 나의 머리는 작년 메위페를 잊었지만 몸은 기억하였다. 어김없이 5월 어느 날 우유 마시고 시작된 축제는 나에게 흑역사를 남겨주었다. 사실 그게 무슨 흑역사야!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난 아직도 그 때 생각하면 집에 가고 싶어진다. 별거 아니게 보일수도 있지만 3회에서 난 교실 바닥을 뒹굴었다. 교실 한 쪽에 자리 잡고 있던 라디에이터 옆에 담요를 깔고 누운 나는 좌우로 구르며 ‘흐어엉 나 죽네!’ 하며 페스티벌을 즐겼고 보건 선생님이 직접 교실로 진찰 나오시는 이례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과거의 나에게 그러지 말라며 다그치고 싶지만 얼마나 아팠으면 그랬을까 짠하기도 하다...

그 후로 메위페는 계속되었다. 다만 회차가 쌓여가며 경험이 늘어 축제가 시작되겠다 싶으면 재빨리 조퇴증을 끊어 학교를 탈출했다. 물론 그 와중에 한 번은 매점에서 파는 과자 먹고 신호가 와서 수업시간에 뛰쳐나간 적이 있다. 근데 그 날이 급식 맛있는 날이라 꾸역꾸역 급식 먹고 조퇴하여 다음 날 학교를 가지 못하였다. 우리 집은 출석에 엄한 편이라 아프면 학교 갔다 조퇴하거나 병원 갔다 학교를 가야하는 잔인한 룰이 있기에 학교를 가지 않았다는 건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는 걸 뜻한다. 나는 그날 지옥을 경험했던 것 같다.

올해도 물론 메위페가 개최되었다. 다행인 것은 해가 갈수록 규모가 작아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게릴라 소규모 공연이 남발해 총량은 같은 것 같지만... 나이가 들수록 건강이 최고라는 걸 새삼 느낀다. 아픈 거 너무 싫다... 건강을 원하지만 다 내가 자초한 일이긴 하다. 게으름과 비규칙의 끝을 달리는 생활을 하며 건강을 원하는 건 욕심이다. 나는 달라질 것이다! 밥도 규칙적으로 먹고 산책도 나가고 일찍 잠들 것이다! 메위페는 올해로 막을 내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