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적 감상능력과 적극적 비판의지
댓글부대 같은 것이 왜 생겼다고 생각하는가? 개인적 관점에서 '댓글 따위로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사건 자체보다 더 인상깊다. 내가 정치적 이슈에 큰 관심이 없어 기사들을 자세히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댓글부대라는 단어가 주는 직관적 의미 외에 깊은 배경과 맥락이 따로 숨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만약 댓글부대의 활약상이 여론조작 이외의 다른 의도를 가진 활동이었다면 내가 잘못된 비유를 했다고 치자. 이야기 하려는 것은 댓글부대가 없어도 의미가 통하는 것일테니.
내가 느끼기에 우리의 감상(感想: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생각.) 능력에 문제가 있다. 자신이 겪는 일에 대한 이해와 대처가 부족하다. 내가 행하거나 당한 일이 개인적,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와 파장이 있을지 고민하지 않는다. 감상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말은 감각기관이 고장났다기보다 사고기관이 녹슬었다는 의미이다. 추상을 구체화 하기 위해서 언어라는 도구가 필요하듯 느낌을 실체화 하려면 자신의 감상을 정확히 인지해야 하는데 그 내용마저도 스스로 만들어내기보다 통념의 틀 안에서 선택하려고 한다.
가령, 그 여인이 점심을 같이 먹자는 내 제안을 거절했는데 의미는 당사자만 정확히 알 수 있다. '점심을 같이 먹자는 제안 직전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어제 밤까지만 해도 유효했던 약속이었는데 내가 오늘 점심 같이 먹을 생각만 하고 오전에 연락을 너무 뜸하게 하진 않았는지', '미리 충분한 준비를 해 놓겠다고 했던 그녀가 어제 그만 잠이 들어 지금 발표 준비가 부족해서 거절을 하진 않았을지' 알튀세르의 이론에 따르면 현실은 수많은 원인이 중첩되어 나타난 것이다. 결국 정답이든 오답이든 모든 맥락과 뉘앙스를 고민해보고 상대방의 마음은 내가 판단해야 한다. 이런 것들조차 대강의 상황을 친구에게 설명하고 또는 '같은 여자니까 니가 알 수 있겠다'며 옆에 서 있던 동아리 여후배에게 물어보며 답을 (남에 의해)알고 싶어 한다. 이 것이 기사는 안 읽고 댓글만 읽는 행태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는가?
무릇, 글이라는 것은 아 다르고 어 다르며 조사를 무엇을 쓰고 어떤 종결 어미를 사용하는지에, 같은 주제로 적은 글도 독자가 크게 다르게 인식할 소지가 있다. 일단 기사를 유심히 읽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기자들은 기사를 그 정도로 대충 쓰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어차피 사람들이 제대로 읽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사람들은 기사가 아니라 댓글을 정독한다. 공감을 많이 받은 순의 상위 2-3개의 댓글만 읽으면 해당 사건의 요약과 어느 정도 바람직한 판단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짐작한다. 나는 성급한 일반화를 지양하지만 오늘은 내가 생각하는 바를 가감없이 적는다. 물론 아닌 사람도 많이 계실 것이다. 그런데 아닌 사람이 대다수인데 댓글부대와 같은 것이 만들어지고 활동 할 수 있을까?
네이버나 다음의 기사를 읽을 때만 시간이 없으니까 요약을 읽는다는 의미에서 베스트 댓글에 집착한다고 핑계 댈 수도 있겠지만 모든 일상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예쁘다, 먹고싶다, 귀엽다, 불쌍하다, 슬프다, 화난다' 와 같은 1차원의 감상 표현 이외에 다른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게시물이 스마트폰 안의 세상 속에 존재하는가? 장문충이 꼴불견이라는 젊은이들의 외침은 나는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은 바보라는 선언과 다를 바가 없다. 어떻게 이 세상 모든 것이 아무 준비도 없고 어떤 공부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조차 한 순간에 이해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할 수 있겠는가? 조금만 길면 읽지 않고 재미가 없다는 이들이 댓글부대가 암약했다는 기사에 화를 낼 것은 또 무엇인가? 아마 자신들 모두는 그 영향을 받지 않았음을 가정하고 있는 듯 하다. 우리 모두는 댓글조작 정도로 사회여론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높은 분들이 가지게 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생성에는 우리 모두 기여했다. 내가 아닌 어떤 멍청이들이 이 현상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첨예하게 느끼고 절실하게 사고해야 한다. 한 개의 행동으로 주변과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준비하고 있으면 중요한 순간에 내가 해야할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다. 관심이 없다면 차라리 읽지 말아라. 애초에 객관성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그나마 기사만 읽고 이해가 안 되는 단어나 맥락은 검색으로 해결하면 좋겠다. 댓글이 내주는 쉽고 간편한 결론 말고. 댓글부대에 화가 난다고 댓글 다는 사람들 특정 정치세력을 비판하는 일보다 타인의 댓글에 집착하지 않는 풍토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는가? 읽고 생각하지 않으면 감상능력을 온전히 소유할 수 없다. 타인의 것에 휘둘리게 되고 그 것이 수동(受動)이다. 남의 것에 의해 움직이면서 왜 또 비판은 그렇게 통렬한지? 나와 다르다고 하여 비판하는 것은 잘못 되었지만 그나마도 '내 것과 달라서' 비판하는지, '내 의견이라고 선택한 무언가와 다르다'고 비판하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수동적 감상능력이 지겹다. 그 것을 기반으로 가지는 적극적 비판의지들이 무섭다. 정말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견해'라는 것이 생기면, 그 것의 생성을 위해 평소에 노력하다 보면, 달라 보이는 의견도 그렇게까지 정반대로 달라보이지 않으며 다른 의견을 가진 이와 싸울 필요는 없음을 알 수 있다. 때로는 투쟁이 필요한 상황이 있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는 다툼들은 투쟁으로 보이는 것이 별로 없다.
엄밀히 말하면 댓글 내용보다는 애초에 '부대'로만 가능한 많은 수의 '좋아요,' '공감' 등에 휘둘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라고 보는데. 즉 애초에 유심히 읽었어도 남들의 많은 공감을 받아서 '대세'로 보이는 내용을 보면 그저 기가 죽거나 침묵을 지키거나, 자신의 판단을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될 것이고, 이런 현상은 특히 선거철에는 패배의식을 심어줄 수도 있으니 정치인들이 민감한 것이라고 봄.
이런 '공감 많이 받은 대세 여론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기죽는 현상은 설령 한 개인이 자신만의 판단과 생각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특히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는 더더욱) 가질 수 있는 군중심리에 대한 두려움의 문제이고, 이것은 '장문충에 반대'하는 또 다른 시대적/사회적 현상과는 별개의 문제이며, 내 생각엔 더 본질적인 문제라고 봄. 물론 본문에서 말하는 그런 애들이 많아지는 게 문제인 것은 팩트지만, 역시나 본문에서 인정했듯이 댓글부대/여론형성을 떠나서 그냥 제너럴한 문제임. 이 시대가 특히 심하지만 항상 있어왔던 그런 문제.
그리고 내가 말한 일명 '공감 거지 현상'은...진지한 글조차도 자신의 생각 표현보다 공감을 우선시하고 쓰다 보면,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기에, 무섭다고 생각이 됨. 생각이 짧지 않으며 심지어 긴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즐겨하는 사람들도 죄다 빠질 수 있는 함정이라는 것이지.
좋은 시선입니다. 요즘 소비되는 컨텐츠들이 대부분 아주 짧은 시간에 소비할 수 있는 것들인 경우가 많아요. 길어지면 안읽죠. 또 안읽으니 짧아지죠. 사람들 사고의 속도가 빨라질지 모르지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으면 깊이는 얕아집니다.
댓글 부대는 바로 으 얕은 생각들을 쉽게 퍼나르는 거죠.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인것이 부끄러운 순간입니다 ㅎㅎ
Get your post resteemed to 72,000 followers. Go here https://steemit.com/@a-a-a
그러게요, 그렇네요. 이것저것 가득 느낌들은 올라오는데 언어화되지 않는군요.
'첨예하게 느끼고 절실하게 사고해야 한다.' 좋은 문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