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의 기타 제작기] 계기... 그리고 나의 '스트랫' 영웅들 - 데이빗 길모어, 잉베이 맘스틴, 신윤철 그리고 마이클 랜도
이런 기타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이 무슨 고물 기타냐구요? 아닙니다. 멀쩡한(?) 신품입니다. 깁슨과 함께 기타 제작업계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펜더의 커스텀 샵에서 만든 기타죠. 일반적인 양산형 모델과 달리 최고 장인들이 부품하나하나를 제작하고 조립하고 한 땀 한 땀(?) 흠집을 내고 부식시켜, 인위적으로 세월의 흐름을 입힌 이른바 '렐릭relic' 기타입니다.
사진의 기타는 마이클 랜도 시그너처 68년형 '렐릭' 스트래토캐스터. 국내 소비자가가 6,949,000원입니다. 지금은 세일 중이라 5,480,000원이네요. ^^;;
아니, 이런 고물 같은 기타에 왜 그리 많은 돈을 들이냐구요? 글쎄요. 다 떨어진 청바지가 명품으로 소비되는 심리와 비슷한 거 아닐까요?
"헤르메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아니, 뭐 저라고 딱히 다를 바는 없지만, 저는 그 같은 거액을 치를 여유도 없을 뿐 아니라, 설령 있다 해도 그렇게 쓰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지grunge한 청바지를 좋아하지만 청바지에 관한 한 '39,999원'이 제 심리적 마지노 선이니까요.^^ 그렇다면 방법은? 약간의 관심(덕심?)시간과 노력, 그리고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과정'을 즐기려는 멘탈이 있다면 방법은 있게 마련이죠.
"그리고 헤르메스, 그렇게 생긴 기타 있지 않아? 왜 또 필요한 거야?"
네, 맞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 이런 모양의 기타를 '스트래토캐스터(줄여서 스트랫)'라고 하는데요. 제게는 스트랫이 한 대 있습니다.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많이 보셨죠.
이 기타도 앞으로 말씀드릴 방법으로 만들었는데요. 핑크 플로이드의 기타리스트인 데이비드 길모어의 스트랫을 모델로 만든 기타입니다.
바디 색깔은 다르지만 목재, 전기 부품, 배선 구조 등 세부 스펙이 데이빗 길모의 그것과 동일한 나만의 기타죠. 참고로 펜더 커스텀 샵에서 나온 데이비드 길모어 시그너처 기타는 현재 4,590,000원에 팔리고 있네요. 그것도 '이월상품 할인'을 해서...^^
(그럼 제 기타를 만드는 데는 얼마나 들었을까요? 이월상품 할인하기 전 원래 소비자 가격의 1/10 정도...?)
"어 그래? 근데... 지금 있는 기타랑 새로 만들려는 기타가 뭐가 다른 거야?"
우선 가장 중요한 건 '핑거보드' 즉 '지판' 입니다. 지금 제가 갖고 있는 기타는 '메이플'로 만든 넥에 별도의 핑거보드를 얹지 않고 곧바로 프렛을 박아 넣은 형태죠. 반면 새로 만들려는 기타는 메이플 넥에 '로즈우드'라는 목재로 된 별도의 지판을 얹은 형태가 될 겁니다. (아래 그림에서 연한 색이 메이플, 진한 색이 로즈우드입니다.)
"아니, 그 정도 차이가 뭐가 그리 중헌디?"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핑거보드의 두께는 기껏해야 5밀리 정도에 불과하니까요.
그런데 그 얇은 목재 패널의 차이가 소리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예컨대 "메이플" 스트랫만을 고집하는 것으로 유명한 기타리스트 잉베이 맘스틴이 아주 드물게 '로즈우드' 스트랫을 연주할 때가 있는데요. 픽업, 바디와 넥 목재, 앰프, 이펙트 등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한 상태에서 두 가지 핑거 보드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먼저 '메이플'. 57년형 펜더 스트랫으로 연주한 장면이구요.
이건 '로즈우드'. 62년형 펜더 스트랫으로 연주한 영상입니다. (한편의 잔혹극^^이기도 한데, 끝까지 보셔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잘 들어보시면 잉베이가 주력으로 사용하는 "메이플" 스트랫은 "로즈우드"에 비해 피크로 현을 튕길 때의 음이 좀더 넓고 잘게 부스러지는 반면, 로즈우드는 메이플에 비해 좀더 좁고 단단하게 뭉쳐져 있는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다른 현악기들도 그렇지만 절대 다수의 기타는 로즈우드 핑거보드를 사용합니다. 제가 가진 '레스폴' 모델의 기타처럼 (강도 면에서나 소리 면에서) 더 단단한 에보니(흑단) 지판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피크나 손가락으로 현을 튕기는 악기 특성상 소리의 '선명함'을 더 강조하려는 선택이죠.
그런데 잉베이 맘스틴은 거꾸로 된 선택을 합니다. 딥퍼플의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와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 파가니니를 좋아했던 사람답게 픽업, 앰프 드라이브, 이펙터 등 다양한 장치를 통해 '메이플'의 잘게 부스러지는 소리 특성을 극대화해서 기타 소리를 마치 바이올린처럼 만들어버린 거죠. 클래식과 록을 음악적인 면뿐 아니라 '음향학적으로도' 완벽하게 '퓨전'해 버린 겁니다. 그렇게 누구도 흉내낼 수 없고, 누구나 한번 들으면 "잉베이네~" 하고 구별해 낼 수 있는 자기만의 시그너처 사운드를 세상에 알린 거죠.
어쨌든 메이플 핑거보드의 'Fuzzy'한 특성은 스트랫 특유의 '날 것'의 느낌을 즐기기에는 더할 바 없이 매력적이어서 제가 처음 스트랫을 만들 때는 '스트랫=메이플'이라는 확신까지 있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핑크 플로이드의 데이비드 길모어와 서울전자음악단의 신윤철 형님(신중현 선생의 아들이자 신대철 형님의 동생인)도 '메이플' 파(?)였으니...
하지만, 스트랫을 '한 대도 갖고 있지 않은' 기타리스트는 있어도 '한 대만 갖고 있는' 기타리스트는 없다는 이 동네의 격언(?)은 결코 틀리지 않더군요. 로즈우드 스트랫이 갖고 있는 '따뜻한 선명함'이 그리워지는 때가 점점 잦아지는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거기에는 이 형님의 영향이 가장 클 겁니다. 제일 처음 소개한 '렐릭 시그너처'의 주인공, '기타의 구도자' 마이클 랜도 형님입니다.
결국 결단을 내렸습니다. 과도한 장비 욕심을 제어하기 위해 스스로 정한 "악기 총량 보존의 법칙"에 따라 기타 한 대를 파양 보내는 대신 그 예산으로 로즈우드 스트랫을 제작하기로 한 겁니다. 아쉽게도 파양의 대상이 된 기타는 바로 이 녀석입니다.
아이바네즈 수퍼 스트랫. 가장 최근에 교환으로 업어온데다, 나에겐 이미 고등학교 때 산, 30년 된 아래의 수퍼 스트랫이 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죠. 수퍼 스트랫이 어떤 기타를 말하는지는 바로 위 아래 동영상에 나오는 기타의 공통점을 보시면 바로 이해하실 겁니다.
아이바네즈 수퍼 스트랫을 깨끗이 손질해서 음악인들의 커뮤니티에 내놓은 저는 한편으로는 새 주인이 나타나기를,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원하는 "녀석들"이 나타나길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생각 외로,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두둥~
첫번째 녀석, 그것도 가장 덩치 큰 녀석이 홀연히 자태를... 아래는 커뮤니티에서 녀석이 발견되던 당시의 모습입니다.
...예상보다 일찍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된 겁니다...
(다음 회에 계속)
저도 한동안 잉베이 맘스틴에 미쳐있던 시절이 기억나네요. ^^
고딩때 용돈 꼬깃꼬깃 모아 마지막 동영상에 나온 제 첫 기타를 사게 만든 것도 잉베이 형님이죠. 그 시절 모든 기타 키드들의 영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