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익스프레스 무료 배송의 불편한 진실.
알리익스프레스 등에서 3달러짜리 제품을 무료로 배송하는 비결이 궁금했는데, (한국에서 1만4000원짜리 핸드폰 케이스가 중국에서 주문하면 3000원 정도인데, 게다가 무료 배송이라니, 강남에서 종로 오는 배송비보다 중국 선전에서 한국으로 오는 배송비가 더 싸다니 이게 말이 되나?), 알고 보니 만국우편연합(Univesal Postal Union) 협약을 악용하는 것, 배송료를 낮게 받거나 안 받으면서 낮은 상대국 취급비를 이용해 부담을 떠넘기는 것.
불편한 진실은 이게 민간 택배 서비스가 아니라 우체국 서비스라서 가능하다는 것.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 메리트가 있겠지만 결국 공공 서비스에 무임승차하는 셈이다. 배송료 무료가 아니라 우체부 아저씨들이 받아야 할 임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체부 아저씨들 업무가 늘어나거나 고용을 늘린다면 그만큼 우체국의 손실이 늘어나거나. 결국 한국 우체국이 중국 온라인 사업자들에게 보조금을 주고 있는 셈.)
한국에서는 당연히 인건비도 안 나오지만 호혜주의 원칙에 따라 성실하게 배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 (호혜주의가 지켜져야 거꾸로 한국 우편물을 중국에 믿고 보낼 수 있는 거니까.) 그런데 한국에서 중국으로 가는 우편물보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우편물이 많으면 상대적으로 한국 우체국의 손실이 급증하게 된다. 안 받겠다고 할 수도 없고.
상대국 취급비(terminal dues)에 대해서는 다음 문서를 참조. http://www.upu.int/en/activities/terminal-dues-and-transit-charges/about-terminal-dues-and-transit-charges.html
상대국 취급비 또는 배달국 취급비라고도 하는데 이게 나라마다 등급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에서 중국으로 가는 우편보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우편이 훨씬 싸다. 미국에서 중국으로 가는 우편보다 중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우편이 훨씬 싼 것도 마찬가지.
실제로 미국에서는 중국에서 넘어오는 우편물이 너무 많고 감당이 안 돼서 등기 우편을 트래킹 없이 그냥 일반 우편으로 취급했다가 지금은 ‘ePacket’이라는 별도 등기 상품을 따로 만든 상태. 물론 그래도 인건비를 제대로 못 건지는 상황일 것 같은데. (상대국 취급비를 현실화하는 건 국가 대 국가로 풀어야 할 문제일 듯.) 배송비에서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일단 밀어내고 보자는 중국 국가적 차원의 전략일 수도.
“우리가 제품 가격 2달러에 2.5달러 배송비를 붙여서 파는 제품을 중국 회사들은 0.99달러에 무료 배송으로 팔고 있습니다.(One product that we sell for 2.00 with 2.50 shipping a Chinese company is selling for .99 with free shipping,)” https://www.skubana.com/usps-epacket-program-affects-e-commerce/
미국 우정청(USPS)에 따르면 e-Packet이 도입된 이후 중국에서 오는 우편물은 상대국 취급비로 평균 94센트만 지급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우편물 하나에 1달러 이상 손실, 2012년에만 손실 규모가 2940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나마 e-Packet 덕분에 오른 것이고 만약 일반 우편이었다면 100만달러 이상 추가 손실이 더 늘어났을 거라는 분석도 있었다.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storyline/wp/2014/09/12/the-postal-service-is-losing-millions-a-year-to-help-you-buy-cheap-stuff-from-china/?utm_term=.c96923d23cb3
완벽하게 잘 정리된 기사는 여기를 참고. https://www.hudson.org/research/13401-crisis-in-the-mail-fixing-a-broken-international-package-system#footNote26
미국 정부가 이런 식으로 중국 업체들에게 주는 사실상의 보조금이 연간 1억3500만달러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고. http://www.lexingtoninstitute.org/terminal-dues-time-end-drain-u-s-economy/
확인해 보니 UPU의 취급비는 나라마다 4개의 그룹으로 나뉘는데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은 첫 번째 그룹, 중국은 보츠와나나 코스타리카, 칠레 등과 함께 세 번째 그룹에 포함돼 있다. 한국은 두 번째 그룹이다. 세계적으로 누구나 그 나라의 물가 수준에 맞는 보편적인 우편 요금으로 어디에나 우편물을 보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인데 세계 2위 경제 대국 중국이 이런 꼼수를 쓴다는 게 어처구니 없을 따름. UPU 그룹에 대한 설명은 여기를 참조. http://www.upu.int/uploads/tx_sbdownloader/guideTerminalDuesStatisticsAccountingEn.pdf
- Group 1.1 includes the United States, Japan, Australia, and most of the world’s other developed economies, as well as most of the overseas territories belonging to Great Britain and France.
- Groups 1.2 and 2 apply the same terminal dues schedule for inbound and outbound letter post. Group 1.2 includes more recently advanced countries, such as Hong Kong and Singapore. Group 2 consists of countries with mid-size economies such as Cyprus, Hungary, Estonia, Poland, Slovakia, and Saudi Arabia.
- Group 3 includes still emerging economies such as Argentina, Bosnia, Brazil, Chile, Jamaica, Gabon, Cuba, Kazakhstan, as well as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 Groups 4 and 5 apply the same terminal dues schedule for inbound and outbound letter post. These groups generally include least developed countries, but they also include countries with substantial economic potential such as Egypt, India, Iran, Kenya, Nigeria, and Vietnam.
포브스 기사에 따르면 중국에서 토론토나 런던으로 9온스짜리 소포를 보낼 때 4달러 미만이 드는데 미국에서 같은 물건을 토론토에 보내려면 14.73달러, 런던으로 보내려면 21.38 달러를 내야 한다. 미국 국내 우편도 마찬가지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뉴욕으로 1파운드짜리 우편물을 보내려면 6달러 정도가 드는데, 중국에서 뉴욕으로 오는 데는 3.66달러 밖에 들지 않는다. 거꾸로 미국에서 중국으로 보내려면 50달러 이상이 들 수도 있다. 포브스 기사 원문은 여기. https://www.forbes.com/sites/wadeshepard/2017/11/05/how-the-usps-epacket-gives-postal-subsidies-to-chinese-e-commerce-merchants-to-ship-to-the-usa-cheap/#4ef0c28240ca
아마존에서는 10달러짜리 제품이 미국 국내 배송료만 3.5달러인데 중국 알리익스프레스에서는 배송비 포함 2달러에 판매한다면 애초에 경쟁이 될 수가 없다. 배송 기간이 관건이지만 기꺼이 기다릴 정도로 가격 메리트가 크다는 게 알리익스프레스 마니아들의 평가.
3센트짜리 나무 단추를 중국에서 프랑스까지 무료 배송으로 받았다는 한 블로거의 이야기. https://romain.goyet.com/articles/free_shipping_from_china/ 보통은 2.16유로, 트래킹 없는 일반 우편도 1.12유로인데, 최소 40분의 1 가격의 미스터리. 아마도 UPU 취급비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알리바바 차원의 출혈 서비스거나 중국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을 수도.
이 블로거가 내린 추론은 이렇다.
- 알리익스프레스가 손해를 보고 판다면 뭐 좋은 일이지.
- 혹시 버그일까? 3달러 미만 제품이 수두룩하고 아직도 잘 팔리고 있는 것 보면 아닐 것 같고.
- 알리익스프레스가 중국과 미국의 우체국을 해킹한 걸까.
- 미국이 아이언맨을 만드느라 바쁜 동안 중국은 순간 이동 기술을 발명한 거 아닐까?
중국이 워낙 물량이 많다 보니 국제 배송 업체들 경쟁도 치열해서 트래킹은커녕 컨테이너 박스에 때려넣고 다 찰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싣고 가는 시스템이라 빠르면 보름, 길면 반 년씩 걸리는 경우도 있다. 가짜 트래킹 번호를 주는 데도 있고 트래킹이 엉터리인 경우도 많고, 흔히 쓰는 ‘China Post Ordinary Small Packet Plus’ 같은 경우는 그냥 일반 우편이라고 보면 된다고. 비싼 물건이 아니고 설령 중간에 사라져도 상관 없는 정도라면 적당히 포기하고 주문하면 되겠지만 컨테이너가 스웨덴이나 칠레까지 다녀오는 경우도 있다고.
미국에서는 중국 우편물의 ‘e-Packet’ 가격이 터무니 없이 낮다는 불만도 많은데 만약 ‘e-Packet’ 배송이 없어지면 중국은 훨씬 더 싼 일반 등기 우편으로 물량을 쏟아낼 것이고 이를 막을 방법이 없는 게 현실. 한국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낮은 상대국 취급비 덕분이라고는 하지만 1달러 미만 제품을 어떻게 글로벌리하게 무료로 배송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아마도 중국 정부 차원의 보조금이 있을 수도 있고 알리익스프레스 등이 적자를 감수하고 밀어내기를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국내는 물론이고 아무리 외신을 뒤져봐도 관련 정보가 없다는 게 놀라운 일.
상대국 최급비를 계산하는 공식은 여기에. 굉장히 복잡하군요. http://www.upu.int/en/activities/terminal-dues-and-transit-charges/2018-2021-cycle.html
결국 한 마디로 요약하면 세계의 공장 중국의 물량 공세와 글로벌한 공공부문 약탈.
결국 여기서도 뵙네요. 트위터랑은 또 좀 틀려서.. 좋은글 지금까지 잘 봤고 앞으로도 부탁드립니다.
이런 비밀이 숨겨져있는지는 몰랐었네요... 정말 유용한 분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팀잇에도 진출하셨네요! 팔로우하고 갑니다
많이 불편하네요. .. 늦게나마 알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알리익스프레스가 있어서 가뭄에 단비나듯 괜찮은 상품을 구할 수 있어 애용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끔 이용하는 편입니다만 이런 진실이 있었네요. 사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런 배송이 이뤄진다고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런 내막이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
글 잘 읽었습니다. 알리의 무료배송이 이렇게 가능했군요.
그런데, "배송료 무료가 아니라 우체부 아저씨들이 받아야 할 임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는 표현은 조금 부적절해 보입니다.
우체국의 손실은 맞겠습니다만, 집배원의 임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고 보기는 어려우니까요.
네. 표현이 애매하네요. 임금은 물론 제대로 지급되겠지만 노동의 대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이해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게 노동량이나 노동강도로 나타날 수도 있고 본문에도 살짝 썼지만 장기적으로 인력 투입이 늘어나는데 그만큼 수입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손실이 될 수도 있고요.
이런 비하인드가 있군요. 소비자입장에선 저렴한 장점도 있지만,참 결론을 내리기 거시기합니다.좋은정보글이라서 리스팀해갑니다.
EBAY 같은 곳에서도 배송요금이 무료가 많은데 다 이런 이유 때문이군요
저렴한 가격에 대해 의문을 가진 적은 없는데 이런 뒷배경이 있었군요. 잘 보고 갑니다.
저도 엄청 궁금했어요.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하구요.
이런 꼼수(?)가 숨어있었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