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22]제 22장 십지품(十地品)
그때 부처님께서는 타화자재천왕궁(他化自在天王宮)의 마니보전(摩尼寶殿)에서 큰 보살들과 함 께 계셨다. 그 보살들은 모두 최고의 바른 깨달음에서 물러나지 않는 이들로서 다른 세계로부터 모여 왔 다.
그들은 모든 보살의 지혜로 다니는 곳마다 자재를 얻었고, 모든 부처님의 지혜로 들어가는 곳 마다 일체 세간을 잘 교화하며, 찰나 찰나 사이에 모든 일을 두루 나타내 보이고, 모든 보살의 소원을 갖춰 세간의 모든 겁, 모든 국토에서 항상 보살행을 닦았다.
그리하여 보살의 복덕과 지혜를 완전히 갖추어 다함이 없고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며, 일체 보 살의 지혜와 방편으로 저 언덕에 이르렀고, 중생들로 하여금 탐욕의 길을 등지고 열반의 문으로 향하게 하며, 모든 보살의 행을 끊지 않고 모든 보살의 선정과 해탈과 삼매를 잘 얻어서 신통과 밝은 지혜로 모든 일을 잘 나타내 보이며,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모임에 가서 부처님께 설법을 청하여 그 법륜을 받들어 지녔다.
언제나 큰 마음으로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항상 모든 큰 보살들의 행하는 바를 닦아 익히며 그 몸은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나타나고 그 음성은 두루 들려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며, 그 마음 은 탁 트이어 삼세를 훤히 보고 모든 보살의 온갖 공덕을 다 닦아 익혔다.
그러므로 모든 보살 마하살의 공덕은 무량무변하여 무수한 겁이 흘러도 다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의 이름은 금강장보살, 보장보살, 연화장보살, 덕장보살, 일장보살, 월장보살, 묘덕장보 살, 여래장보살, 불덕장보살, 해탈월보살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보살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금강장보살이 가장 으뜸이었다.
그때 금강장보살 마하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보살의 큰 지혜 광명 삼매에 들었다. 그때 시방세계의 한 쪽으로 십억 부처님 국토의 티끌 수 같은 세계를 지나 십억 티끌 수 같은 부처님이 모두 함께 그 몸을 나타내시니 그 이름은 모두 금강장이었다. 또 시방세계에서도 그와 같으니 그 부처님들은 모두 같은 음성으로 금감장보살을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금강장이여, 그대는 보살의 큰 지혜 광명 삼매에 들었구나. 그것은 시 방 세계의 티끌 수 같은 부처님이 다 같은 이름으로 그대에게 위신력을 더한 것이니 이른바 비로 자나 부처님의 본래 원력 때문이며 그대에게 큰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또 그것은 모든 보살에게 불가사의한 모든 불법의 광명을 펴기 위한 것이니 이른바 지혜의 자 리에 들게 하려는 것이며, 일체 선근을 포섭하게 하려는 것이며, 일체 불법을 잘 분별하게 하려 는 것이며, 법의 지혜를 넓히게 하려는 것이며, 분별없는 지혜로 잘 분별하게 하려는 것이며, 일 체 세간법이 물들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며, 출세간의 선근을 청정하게 하려는 것이며, 불가사 의한 지혜의 힘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또 그것은 이른바 보살 십지(十地)의 차별을 여실히 말하게 하려는 것이며, 보살 십지에 편히 머물게 하려는 것이며, 번뇌 없는 법을 분별해 말하게 하려는 것이며, 큰 지혜 광명으로 잘 분별 해 스스로 장엄하게 하려는 것이며, 원만한 지혜의 문에 들게 하려는 것이며, 걸림 없는 변재의 광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며, 걸림 없는 큰 지혜 자리를 모두 갖추게 하려는 것이며, 보살의 마음 을 잃지 않게 하려는 것이며, 모든 중생의 세계를 교화해 성숙시키게 하려는 것이니라.
금강장이여, 그대는 이 법문의 차별을 말해야 할 것이니 그것은 모든 부처님의 신력을 위해서 이며, 그대의 선근을 청정하게 하기 위해서이며, 법계를 청정하게 하기 위해서이며, 중생을 이롭 게 하기 위해서이며, 일체 세간의 길을 뛰어나기 위해서이며, 세간을 뛰어난 선근을 깨끗하게 하 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곧 시방의 여러 부처님은 금강장에게 진실하고 위없는 궁극의 깨달음을 주고 걸림 없이 잘 말하는 변재를 주며, 잘 분별하는 청정한 지혜를 주고, 잘 기억하여 잊지 않는 힘을 주며, 잘 결정하는 지혜를 주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지혜를 주며, 모든 부처님의 무너지지 않는 힘을 주고, 모든 부처님의 두려움 없음을 주며, 모든 부처님의 모든 법을 잘 분별하고 법문을 잘 아는 걸림 없는 지혜를 주고, 모든 부처님의 가장 묘한 몸과 입과 뜻의 업을 주었다.
그때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다 오른손을 펴서 금강장보살의 머리를 어루만지셨다. 금강장 보살 은 곧 삼매에서 일어나 여러 보살들에게 말하였다.
“불자들이여, 이 모든 보살의 서원은 잘 결정되어 허물도 없고 부술 수도 없으며, 광대하기는 법계와 같고 끝이 없기는 허공과 같아 모든 부처님 세계의 중생들을 두루 덮습니다. 그것은 일체 세간을 구제하기 위해서요, 모든 부처님들의 신력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보살 마하살은 과거 모든 부처님의 지혜의 자리에 들어갔고 또 미래와 현재의 모든 부처님의 지혜의 자리에 들어갔고 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지혜의 자리인가. 보살 마하살의 지혜의 자리에는 열 가지가 있으니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이미 말씀하셨고 장차 말씀하실 것이요, 또 지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자리를 위해 나도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 열 가지란 첫째는 환희지(歡喜地)이며, 둘째는 이구지(離垢地)이며, 셋째는 발광지(發光地) 이며, 넷째는 염혜지(焰慧地)이며, 다섯째는 난승지(難勝地)이며, 여섯째는 현전지(現前地)이며, 일곱째는 원행지(遠行地)이며, 여덟째는 부동지(不動地)이며, 아홉째는 선혜지(善慧地)이며, 열 째는 법운지(法雲地)입니다.
이 십지(十地)는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이미 말씀하셨고 지금도 말씀하시며 또 장차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는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서 이 십지를 말하지 않는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십지는 보살이 수행하는 최상의 미묘한 진리이며, 최상의 밝고 깨끗한 법문으로서 이른바 십지의 일을 분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이 일은 불가사의한 것이니, 이른바 보살의 모든 자리[地]의 지혜를 따르기 때문 입니다.” 금강장보살은 십지의 이름을 설명한 뒤에 다시는 분별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그때 모든 보살은 십지의 이름을 듣고는 모두 그 진리에 대해서 듣고자 바라면서 이렇게 생각 했다.
‘무엇 때문에 금강장보살은 십지의 이름만을 말하고 잠자코 있는가.’ 그때 금강장보살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십지에 대하여 설명했다. “불자들이여, 초지인 환희지(歡喜地)에 들어가자마자, 보살은 범부지(凡夫地)를 초월한 자가 되며, 보살의 확정된 자리에 들어가며, 여래의 집에 태어나며, 깨달음을 궁극의 목적으로 해서 미래의 혈통에 속하는 자가 됩니다.
불자여! 그래서 환희지에 들어간 보살은 많은 환희가 있게 됩니다. 그는 환희의 보살지에 들어 가자마자, 곧 이러한 서원을 세웁니다.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공경하기 위해, 모든 뛰어난 모습을 갖추고 뛰어난 확신에 의해 마음 을 청정히 하겠다.
모든 여래께서 설하신 진리의 눈을 수지(受持)하고, 그 가르침을 지켜 가겠다. 여러 부처님들이 세상에 나오시는 온갖 세계에서 갖가지 보살의 생존의 모습을 나타내겠다. 모든 보살의 십지에 이르는 길을 있는 대로 가르치며 바라밀의 청정한 가르침을 설하며, 보시 에 의해 이룩된 발심을 하겠다.
모든 중생계를 성숙시키기 위해 불법에 들어가고, 모든 미혹을 끊으며 전지자의 지혜에 안주하 게 하기 위해 모든 중생계의 성숙에 힘쓰겠다.
넓고 좁고 크고 작은 모든 곳에 두루 들어가, 제석천의 그물같이 시방의 온갖 분별에 들어가는 지혜를 얻겠다.
모든 국토가 한 국토에 들어가고, 한 국토가 모든 국토에 두루 들어가, 무량한 불국토의 광명 으로 장식되며, 모든 번뇌를 떠나 청정한 도에 도달하며, 헤아릴 수 없는 지혜로 중생을 채워 주 겠다.
어떠한 대가도 바람도 없는 선근(善根)을 닦기 위해, 여러 부처, 보살과 떨어짐이 없기 위해, 궁극에 도달한 초자연적인 능력을 얻기 위해, 불가사의한 대승의 진리를 갖추도록 하겠다. 물러섬이 없는 보살행을 하기 위해, 신(身), 구(口), 의(意)의 활동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번뇌를 제거하기 위해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
모든 세계에서 더없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또 온갖 중생의 경계 안에서 위대하고 완전한 열반 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 또 부처님의 위대한 경계, 위신력(威神力), 지혜에 도달하기 위해, 또 중생의 소원에 응해 그때 그때에 알맞은 분별과 편안을 나타내기 위하여, 대지(大智)의 활동을 계속하겠다.’
불자들이여, 제 1의 보살지에서 아주 청정한 수행을 한 보살은 제 2의 보살지인 이구지(離垢 地)를 원하게 됩니다. 그에게는 열 가지 마음가짐이 일어납니다. 열 가지 마음가짐이 무엇입니 까.
즉, 정직, 유연, 근면, 교화, 정적, 진실, 잡란되지 않는 것, 돌아보지 않는 것, 큰 마음가짐 이 그것입니다.
그러기에 더러움을 떠났다[離垢]라는 제 2의 보살지에 들어간 것이 됩니다. 불자여, ‘이구’라는 보살지에 든 보살은 본래 열 가지 선한 행위의 길[十善業道]을 갖춘 구도 자입니다.
열 가지 선한 행위의 길이란 무엇입니까.
그는 살아 있는 목숨을 해치는 것으로부터 떠납니다.
그는 주어지지 않은 것을 훔치는 일에서 떠납니다.
그는 욕정에 사로잡힌 행위에서 떠납니다.
그는 거짓말에서 떠납니다. 그는 이 말 하고 저 말하는 일에서 떠납니다.
그는 욕설에서 떠납니다.
그는 야유하는 말에서 떠납니다. 그는 탐욕이 없는 자가 됩니다.
그는 성내지 않는 자가 됩니다.
그는 바른 견해를 가진 자가 됩니다.
또한 그는 중생을 관찰한 끝에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아, 그들 중생은 악한 견해에 떨어지고, 지혜도 악하며 뜻도 악하다.
아, 그들 중생은 사이좋게 못 지내고 서로 배반하여 항상 증오하고 있다.
아, 그들 중생은 만족할 줄 몰라서 남이 얻은 것을 가지고 싶어한다.
아, 그들 중생은 욕심[貪], 성냄[瞋], 어리석음[痴]에 사로잡혀서 여러 가지 번뇌의 불꽃 속에 타고 있다.
아, 그들 중생은 큰 어리석음[無明]에 덮여서 깨달음의 지혜의 광명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아, 그들 중생은 항상 큰 윤회의 숲을 헤매어 언제나 불안에 떨고 있다.
아, 그들 중생은 정욕과 무지의 흐름 속에 떨어지고, 윤회의 물결에 표류하여 갈망의 기슭에 도달한다.
아, 그들 중생은 많은 고뇌와 근심과 불안을 수반하고 탐욕에 의해 방해받는다.
아, 그들 중생은 자기와 자기 소유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아, 그들 중생은 보잘 것 없는 것을 믿고 대승에 귀의하려 하지 않는다.’
불자여, 제 2의 보살지에서 마음이 청정해진 보살은 제 3의 보살지인 발광지(發光地)로 들어갑 니다. 불자여, 이 보살은 제 3의 보살지에 머물면서 모든 존재가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 관찰합니다. 또 그것이 고뇌요, 깨끗지 못한 것임을 관찰합니다.
이렇게 하여 모든 존재를 관찰하면 그것들은 반려가 없고, 편이 없고, 모든 근심과 슬픔, 고뇌 가 없어 그의 마음은 여래의 지혜 쪽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는 여래의 지혜가 불가사의하며, 비할 데 없으며, 무량함을 잘 관찰합니다.
이리하여 그는 중생계의 많은 고난을 잘 관찰하면서 다음과 같은 노력을 일으킵니다. ‘이들 중생은 마땅히 나에 의해서 구제되어야 한다.’ 그는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여 다음과 같이 관찰합니다.
‘어떠한 방편으로 저토록 고뇌에 싸인 중생들을 구원하며, 궁극의 안락처인 열반에 안주시켜야 하는가.’ 또한 보살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유로운 지혜에서 생기는 깨달음을 얻는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는 더욱 진리의 가르침을 듣고자 원합니다. 주야로 진리의 가르침에 대해서 듣기를 원하며, 진리를 사랑하며, 진리를 기뻐합니다. 그는 처음으로 듣는 진리의 말씀에 접하면 기뻐하지만,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보배를 얻어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는 잘 설해진 한 시구를 들으면 기뻐하지만 전륜성왕의 지위를 얻어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섭사(四攝事)의 실천 가운데 중생을 이롭게 하는 실천[利行攝]이 가장 뛰어나며, 십바 라밀 중에서는 인욕 바라밀이 가장 뛰어납니다.
불자여, 제 3의 보살지에서 청정한 광명을 체득한 보살은 제 4의 염혜지(焰慧地)에 도달합니 다. 보살은 염혜지를 얻자마자 곧 스스로 진리를 얻기 위해 지혜를 성숙케 하는 열 가지 진리를 가 지고, 여래의 집에서 성장하는 자가 됩니다. 그 열 가지 진리란 무엇입니까. 퇴전하지 않는 생각을 지닐 것, 삼보에 대한 궁극의 신앙에 도달할 것, 존재의 생멸을 관찰할 것, 모든 것의 자성은 불생(不生)임을 관찰하는 지혜, 세계의 생성과 소멸을 관찰하는 지혜, 업 (業)에 의해 생존이 생김을 관찰하는 지혜, 윤회와 열반을 관찰하는 지혜, 중생의 국토와 업을 관찰하는 지혜, 원초와 종말을 관찰하는 지혜, 비존재(非存在)와 소멸을 관찰하는 지혜가 그것입 니다.
불자여, 염혜지에 든 보살은 개체는 실재한다는 견해와 이것으로 야기되고 사고되고 관찰된 모 든 것을 떠나 버립니다. 그는 도를 깨닫기 위해 여덟 가지 바른 진리를 수행해 감에 따라 그 마음은 윤택해지고, 부드 러워지고, 부지런해지고 순수해 갑니다. 그는 사섭사 중에서 중생과 더불어 불도를 행하는 실천[同事攝]이 가장 뛰어났고, 십바라밀 중 에서는 정진 바라밀이 뛰어납니다.
불자여, 제 4의 보살지에 이르러 도가 정화된 보살은 제 5의 난승지(難勝地)에 들어갑니다. 여기에 이른 보살은 사제(四諦)와 팔정도(八正道)에 의해 청정한 활동이 생기고 고결한 마음이 생겼으므로 다시 다음 단계의 도를 구하면서 실다운 성품[如實性]에 도달한 자가 됩니다. 그리고 자비에 의해 중생을 버리는 일이 없이 복덕과 지혜를 닦아 점점 위를 바라보고 나아갑니다. 그는 ‘이것은 고(苦)라는 성스러운 진리[苦諦]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인식합니다. 또한 ‘이는 고의 원인[集諦]이다. 이는 고의 소멸[滅諦]이다. 이는 고의 소멸로 이끌어 가는 길[道諦]이다’ 라고 있는 그대로 인식합니다.
또한 그는 세속적 진리와 불법의 진리에 다같이 뛰어난 자가 됩니다. 그는 ‘모든 존재는 헛되고 허망한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인식합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중생에 대한 위대한 연민의 정이 나타납니다. 그는 이리하여 지혜의 힘으로 모든 중생을 돌아보며, 부처님의 지혜를 구하며, 온갖 존재의 원 초와 종말을 관찰합니다.
그는 어떤 선을 행하는 때에도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행합니다. 모든 중생의 이익을 위해, 모 든 중생의 안락을 위해, 모든 중생을 열반에 들게 하기 위해 선을 행합니다. 그는 보시(布施),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 기타 모든 일에 의해 중생을 교화합니 다.
또 세상에서 중생 구제에 도움이 될 것, 즉 글씨, 논서, 도장, 수학, 의학, 복술 등에 대해서 도 배웁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십바라밀 중, 선정 바라밀이 가장 뛰어납니다. 불자여, 이것이 난승지라는 보살지입니다.
불자여, 제 5지에서 도가 충만해진 보살은 제 6의 현전지(現前地)에 들어갑니다. 그는 열 가지 진리의 평등성에 의해 거기에 도달합니다. 열 가지 진리의 평등성이란 무엇입니 까.
모든 것은 무상(無相)이라는 평등성, 모든 것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평등성, 모든 것은 무성(無 性)하다는 평등성, 모든 것은 불생(不生)이라는 평등성, 모든 것은 고요하다는 평등성, 모든 것 은 원래 청정하다는 평등성, 모든 것에는 희론(戱論)이 있을 수 없다는 평등성, 모든 것은 환상, 꿈, 그림자와 같다는 평등성, 모든 것은 존재와 비존재가 둘이 아니라는 평등성입니다. 그는 세간의 발생과 소멸을 관찰할 때,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무릇 세간의 작용이 발생하는 것은 모두 아집(我執)에서 생긴다. 자아의 집착을 제거하면, 세 간의 작용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는 십이연기(十二緣起)를 순역(順逆)으로 관찰한 끝에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이 미혹의 세계가 존재하는 원인은 오직 마음뿐이다.’
여래가 설하신 십이인연도 또한 한 마음에 의지함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물에 대 해 탐욕과 결부된 마음이 생겼을 때 인식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사물은 구성된 것이며, 구 성에 관한 어리석음이 무지입니다. 무지에서 생기는 것이 개체입니다. 개체에서 증대된 것이 여 섯 감각 기관입니다. 이 감각 기관과 결부되는 것이 접촉입니다. 접촉과 함께 생기는 것이 감수 작용입니다. 감수에서 싫증을 안 느낄 때, 그것이 갈망입니다. 핍박되는 것이 취착(取着)입니다. 이런 생존의 지분(支分)이 생기는 것이 생존입니다. 생존이 발생하는 것이 생입니다. 생은 늙음 을 낳습니다. 늙음의 끝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이리하여 그는 열두 가지 양상을 가진 연기(緣起)를 관찰하면서 자아가 없고, 중생이 없고, 개 체의 존재가 없으며, 원래 공이요, 지은 자와 감수하는 자를 떠난 것으로서 관찰할 때, 모든 존 재는 공(空)해서 그 본성이 없다[空無性]라는 깨달음의 문[空解脫門]이 열리게 됩니다. 그가 이런 온갖 생존의 지분(支分)의 자성을 없애고 궁극의 깨달음에 안주할 때, 어떤 상(相) 도 생겨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무상의 깨달음의 문[無相解脫門]을 연 자가 됩니다. 그는 공무성과 무상의 깨달음에 들어갔을 때, 그에게는 중생에 대한 대자비 이외의 어떤 원도 생기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그는 소원 없는 깨달음의 문[無願解脫門]을 연 자가 됩니다. 그는 십바라밀 중에서 지혜의 바라밀에 가장 뛰어났습니다. 불자여, 이것이 보살의 제 6지인 현전지입니다.
불자여, 제 6 보살지에서 보살도를 만족시킨 보살은 제 7의 원행지(遠行地)에 들어갑니다. 제 7의 보살도에 머무는 보살은 헤아릴 수 없는 중생계, 세계, 여러 가지 차별성을 지닌 진리, 겁수(劫數), 뛰어난 확신, 갖가지 의향, 마음의 작용, 성문승(聲聞乘)의 출리(出離)에 수반되는 갖가지 확신의 성질, 독각승(獨覺乘)의 완전지(完全地)의 완성, 보살행의 가행(加行)에 들어가며 그와 동시에 부처님의 지혜에 들어갑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래의 경계는 백천억 내지 무수의 겁을 세어도 셀 수가 없다. 그리고 부처님의 경계는 우리 들에 의해 완성되지 않으면 안된다. 더욱이 그것은 저절로 분별함이 없이 충족되어야 한다.’ 부처님의 지혜를 구하며, 선을 중생에게 회향하는 일, 이것이 그의 보시 바라밀입니다. 번뇌의 온갖 불꽃을 끄는 일, 이것이 그의 지계 바라밀입니다. 자비한 마음으로 모든 중생에 대해 참는 일, 이것이 그의 인욕 바라밀입니다.
선을 쉬지 않고 닦는 일, 이것이 그의 정진 바라밀입니다. 전지자의 지혜를 실현코자 어지러움이 없는 도를 갖추는 일, 이것이 그의 선정 바라밀입니다. 모든 것은 본래 불생(不生)임을 아는 일, 이것이 그의 지혜 바라밀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지혜를 완성하는 일, 이것이 그의 방편 바라밀입니다. 훌륭한 지혜를 얻으려는 원을 세우는 일, 이것이 그의 원(願)바라밀입니다. 외도(外道)의 논설과 악마에 의해 도가 끊기지 않는 일, 이것이 그의 역(力)바라밀입니다.
모든 것에 대해 있는 그대로 지혜를 내는 일, 이것이 그의 지(智)바라밀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는 십바라밀 중 방편 바라밀이 가장 뛰어납니다. 불자여, 이것이 보살의 제 7지인 원행지입니다.
불자여, 보살이 제 8부동지(不動地)에 들면 신(身), 구(口), 의(意)의 의식적 활동을 떠나고 온갖 사념이나 분별을 떠나 과보(果報)의 본성에 머무는 자가 됩니다. 불자여, 제 8지에 이른 보살은 구제와 지혜의 방편을 완성하고, 저절로 체득된 보살의 깨달음 에 의해 부처님의 지혜를 관찰하면서 세계의 생성을 잘 관찰하고 세계의 소멸을 잘 관찰합니다. 그는 세계의 극소성(極小性)을 알고, 또 위대성과 무량성에 대해서도 잘 압니다. 그는 국토, 중생 등 온갖 것의 극소성을 알고 또 위대성과 무량성을 압니다.
또 그는 온갖 중생신(衆生身)의 차별을 이해하여 불국토와 집회에서 각기 그대로 자기 몸을 나 타냅니다. 그는 온갖 신체의 분별을 떠나 평등성을 얻었건만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그 몸을 나타 내 효과를 거둡니다.
그는 중생신이 업신(業身)임을 알고 또 번뇌신, 색신(色身), 무색신(無色身)임을 압니다. 그는 이렇게 신체에 관한 지혜를 완성하여 자재한 자가 됩니다. 또 마음, 용구(用具), 업, 생을 받는 것, 확신, 원, 신통력, 진리, 지혜의 자재를 얻습니다.
그는 모든 번뇌를 떠났으므로 마음가짐이 안정되고, 도를 떠나지 않으므로 고결한 마음이 안정 되고, 중생의 이익을 버리지 않으므로 대비(大悲)의 힘이 안정되고, 온갖 중생을 구제하므로 대 자(大慈)의 힘이 안정되고, 진리성을 망각하지 않으므로 다라니의 힘이 안정되고, 불법을 잘 분 별하므로 변재(辯才)의 힘이 안정되고, 무한한 세계에서 일어나는 행위를 잘 구별하므로 신통력 이 안정되고, 보살행을 버리지 않으므로 원력이 안정되고, 불법을 수지하므로 바라밀의 힘이 안 정되고, 온갖 형태로 부처님의 지혜를 실현하므로 여래의 가지력(加持力)이 안정되어 있습니다. 또 그는 원하자마자 한 순간에 백천만억의 셀 수도 없는 삼매을 얻어 거기로 들어가고, 백천만 억의 셀 수도 없는 부처님 나라에 들어가고, 백천만억의 셀 수도 없는 중생을 제도할 수 있습니 다. 불자여! 이것이 보살의 제 8지인 부동지입니다.
불자여, 보살이 제 9지인 선혜지(善慧地)에 들면 선도 악도 아닌 무기(無記)의 법과 세간, 출 세간의 법과 보살행의 법, 여래지(如來地)의 법이 현재에 나타나는 것을 그대로 인식하게 됩니 다.
그는 온갖 중생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압니다. 마음은 다양하다는 것, 마음은 순간에 변하고 또 안 변하기도 한다는 것, 마음에는 뿌리가 없다는 것, 마음은 미혹의 세계를 따라 현존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는 온갖 소질의 둔하고, 예민하고, 그 중간인 것의 성질을 있는 그대로 알고, 또 처음과 끝 에 따라 차별이 있고 없는 것을 압니다.
그는 온갖 미혹된 습성이 뜻과 함께 생기고, 마음과 함께 생김을 있는 그대로 압니다. 그는 생(生)을 받는 것의 갖가지 성질을 있는 그대로 압니다. 그것이 업에서 나온다는 것, 그 리고 물질적인 세계와 정신적인 세계에 생긴다는 것을 압니다.
이 보살지에 들어간 보살은 설법자가 되고 여래의 진리의 창고를 지킵니다. 그는 사무애지(四無碍智)로써 완성된 변설을 가지고 설법을 합니다. 사무애지란 무엇입니까. 법(法)무애지, 의(義)무애지, 사(辭)무애지, 변설(辨說)무애지입니다. 그는 법무애지에 의해 모든 존재 자체의 모습[相]을 알고, 의무애지에 의해 온갖 존재의 차별 을 알고, 사무애지에 의해 온갖 존재를 착란 없이 설하고, 변재무애지에 의해 모든 존재가 연속 하여 끊어지지 않음을 압니다.
불자여! 이리하여 보살이 위대한 설법자가 되고 여래의 진리의 창고를 수호할 때, 그는 무수한 다라니를 얻게 됩니다. 그는 무량한 다라니를 얻어 무수한 부처님에게서 진리를 듣고 그것을 잊 지 않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그는 다라니를 얻고 변재를 얻어, 설법하기 위해 한 곳에 앉았으면서도 동시에 온갖 삼천대천세계에 충만하여 모든 중생을 위해 진리를 설합니다. 제 9지인 선혜의 보살지를 얻은 사람은 밤이나 낮이나 오로지 부처님의 경계에 들어가, 여래와 함께 있으면서 보살의 깊은 깨달음을 얻은 자가 됩니다.
불자여, 이 보살이 제 9지에 이르면, 무량한 대상을 잘 관찰한 각지(覺知)에 의해 힘과 무외 (無畏)와 불공법(不共法)을 바로 관찰하기에 이르고, 전지자의 지혜를 체득하는 경지인 법운지를 얻게 됩니다.
불자여, 보살이 제 10지인 법운지(法雲地)에 이르면 무수한 삼매가 나타납니다. 즉, 헤아릴 수 없는 종류의 삼매를 얻고 수용하게 됩니다.
이 삼매가 실현되면 삼천 세계의 백만 배나 되는 큰 보옥의 연꽃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온갖 보배로 아로새겨지고, 불가사의한 아름다움으로 차 있습니다. 그가 전지자의 지혜를 체득하는 삼매를 얻자마자 그는 이 연꽃에 앉게 됩니다. 보살이 이 위에 앉으면 무수한 보살이 시방 세계로부터 와서 앉아 이 보살을 둘러싸고 연꽃 위에 앉습니다. 그들 각자가 이 보살을 우러러보면서 백만의 삼매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법운지에 안주한 보살은 진리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합니다. 그는 욕망의 세계, 물질의 세계, 정신계의 세계, 중생계의 세계, 기타 모든 세계에 대해 있는 그대로 인식합니다. 그는 중생신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알고, 부처님의 가지(加持)를 있는 그대로 알고, 여래가 티 끌 속으로 들어가는 지혜를 알고, 여래의 모든 비밀, 그 신체, 언어, 마음 등의 비밀을 있는 그 대로 압니다. 그리고 여래가 겁(劫)에 들어가 깨닫는 지혜, 온갖 깨달음에 들어가는 지혜를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 보살지를 얻은 자는 ‘불가사의’라는 이름의 깨달음과 ‘무애’라는 깨달음을 얻습니 다. 그리하여 모든 보살의 깨달음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이 십지의 보살은 얻게 되는 것입 니다. 여기에 안주한 보살은 대개 대자재천왕(大自在天王)이 되며 온갖 중생에게 바라밀을 가르치는 데 뛰어난 위력을 갖추어 진리의 세계를 분별하는 질문에 막히는 일이 없습니다. 또 보시나 애어(愛語) 등에 의해 활동을 해도 어떤 경우라도 부처님의 지혜를 떠나지 않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온갖 중생의 우두머리가 되겠다. 가장 뛰어난 자, 가장 탁월한 자, 지도자가 되겠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신체에 대해서, 광명에 대해서, 신통력에 대해서, 음성이나 장식에 대해서, 가호나 확신 이나 활동에 대해서, 그 어떠한 것에 대해서도 무수한 겁이 지나도 다 헤아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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