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별 본능

in #kr6 years ago (edited)

이벤트는 자연스레 이야기를 파생한다. 비교적 소집단에서의 이벤트, 그러니까 학교에서 치르는 체육대회에서만도 갖은 스토리가 탄생함을 우리는 안다. 하물며 국가 간 경계를 넘는 아시안게임에서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부상할까. 그중 유독 글쓴이 눈에 든 화젯거리는 이른바 병역특례에 관한 것이다. 한국 야구팀은 금메달을 득하고도 고개를 숙여야 했고 그 중심엔 오지환, 박해민 선수가 있었다. 이 두 선수는 병역을 유예하고 있었고 이번에 한국팀이 1위에 오른 결과 병역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국민이 이들을 고깝게 보는 까닭은 해당 선수들이 국가대표가 되기엔 실력이 한참 모자르다고 판단해서일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이들이 욕을 먹는 실상이 글쓴이로선 쉬이 납득되지 않는다. 이들이 욕을 먹어야 한다면 이러한 전제가 세워져야 한다. ①선동열 감독을 회유‧협박하여 국가대표에 선발되었거나 ②다른 선수에게 린치를 가하고 빈자리를 본인들이 차지했거나 ③국가대항전에서 최악의 플레이를 펼침으로써 대표팀에게 치명적 위기를 제공했거나. 기실, 이들에게 뿔난 국민이 정작 못마땅했던 대상은 병역특례 자체였고 그보다 만만한 대상을 뭇매질함으로써 자신의 성난 심정을 해소하진 않았을까. 요컨대 엉뚱한 곳에 줄포탄을 쏘아 댄 건 아닌가, 그 말이다.

여기까지 쓰면 글쓴이가 현 병역특례제도의 찬성론자로 비쳐지기 십상일 터이나 꼭 그렇진 않다. 권위 있는 클래식 콩쿠르 대회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특혜가 대중음악인에겐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하태경 의원의 지적은 귓등으로 흘릴 만큼 가볍지 않다. 터놓고 말해 국가가 가리키는 병역특례 대상의 범주는 매우 자의적이다. 그러나 자의적이면서도 아예 무분별하진 않으며 제 나름의 기준으로 체계가 서 있긴 하다. 운동에 한정하여 말하자면,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혹은 중요 국가대항전의 종목이라야 특례 대상 후보자의 자격이나마 부여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니까.

세상엔 여러 직업이 존재하고 저마다의 꼭대기엔 성취자가 앉아 있다. 중언하는바 모든 직업의 성취자가 병역특례의 대상이 되진 않는다. 그 대상에는 상시적으로 대중의 환호를 받는 동시에 혜택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도 있고, 혜택의 범주에 들어 있으므로 한시적 환호를 얻는 것도 있다. 덧붙여 대중의 환호와는 요원하나 어느 시기에 국가의 눈에 띈 덕분에 관습적으로 혜택의 대상이 되는 것도 있다. 국가의 간택이 자못 자의적임을 보여주는 문장을 나열했다. 글쓴이는 이 자의성의 내부에 직업에 대한 구별이 도사린다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윤색을 거쳤다. 인간은 직업의 귀천을 줄곧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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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예전부터 체육인이나 예능인들이 소위 ‘귀한’ 직업군으로 분류되지 않았었다는 점에서 군면제 문제에 직업에 대한 귀천 의식이 작용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옛날 어르신들은 운동한다고 하면 ‘무식한 것’이라 했고, 음악한다고 하면 ‘딴따라’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콩쿠르 우승자와 대중음악가 사이에 구별같은 것도 직업의 귀천보다는 ‘어떠한 가치에 보상할 것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상업적 성공은 개인의 재능 또는 실력 뿐 아니라, 컨셉, 대중의 시기적 기호, 기획사, 작곡가, 프로듀서, 홍보요소 등 다른 요소가 크게 작용해서 쉽사리 기준을 세우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한 상업적 가치와 기능적 가치가 항상 일치하는 것도 아니고요. 때때로 이러한 생각에 대해 ‘대중을 무시하는 것이냐. 상업적 가치가 있는 곳에 바로 가치가 있다’라고 비판하는 분들도 있지만, 실상 상업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무수한 비판을 받는 작품과, 흥행은 실패했지만 이후로 극찬을 얻어내는 작품들의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영화들만 보아도 그러한 경우가 많이 있고, 이러한 생각이 바탕되어 있기 때문에 복면가왕 같은 프로그램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죠. 이 같은 점을 고려해보면 대중음악가들에게 어떠한 보상을 부여할 기준을 마련한다는것이 결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다만, 병역 특례의 방식이 지나치게 자의적이라는 데에 문제의식을 공유합니다. 기준 마련이 어렵다고 특정한 직업군은 혜택의 기회가 없다는 것도 잘못되었지요. 그리고 현재의 제도가 지나치게 특정 이벤트에 기댄 기준이라는 데에도 문제 의식을 느낍니다. 대체 국위선양이라는 구시대적 기준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고요. 평소에 아무리 잘해도 일회성 대회에 우승하지 못하면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게 합당한지 모르겠습니다. ‘국위선양’이라는 말이 ‘국제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끈’이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면 일회성 대회만한 것이 없긴 하지만, 그렇다면 앞서 이야기한 대중음악가들에 대해서도 분명 ‘국위선양’했다고 말할 수 있고, 병역특례가 안될 것도 없어 보입니다. 결국 현재, ‘국위선양’이라는 표면적 명분과 ‘개인의 기능’이라는 내재된 가치 평가가 혼재되어 기준으로 작용하는 탓에 여러가지 모순점과 문제점을 낳는 듯합니다. 그냥 병역특례 같은건 전부 없어도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ㅎㅎ

한국에 병역특례제를 도입하면서 (우리 보기에) '절대적으로 귀한 것을 기준으로 하여서만' 특례 대상을 줄 세우진 않았을 겁니다. 짚으신 대로 체육인과 예능인을 대해온 과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저는 체육인을 하나의 직업으로 보지 않고 종목별로 각각의 직업으로 간주하긴 했습니다). 병역특례 대상인 비인기종목의 선수가 되기보다는 대기업의 사원이 되려는 사람이 더 많으리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만, 제가 말하고자 한 것은 혜택의 좌석은 한정적이고 혜택의 대상을 고를 때에는 구별 작업을 거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IOC로부터 올림픽 종목 리스트를 받아 안고, 해당 종목에서 우승한 사람에게만 혜택을 준다고 한다면 한국에서는 별 인기 없는 종목일망정 그것이 올림픽 종목에 끼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가치가 상승할 수 있습니다. 비올림픽 종목보다는 올림픽에서 우승 가능한 종목이 상대적으로 나아 보일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클래식 예술인은 되고 대중음악인은 안 됐던 데에는 말씀대로 기준을 정립하기가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이유가 있었겠지만, 클래식 음악을 대중음악보다 높게 치는 인식도 한몫 거들었다고 저는 보았습니다.

제목에서 나타나듯 본래 병역특례에만 천착한 글은 아니었습니다. 말씀대로 병역특례 대상 직업들이 한국에서 가장 귀한 직업의 집합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병역특례 대상의 선정 작업을 귀한 것을 가리는 일의 예로 들기에는 부족하다고 보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그 기저에는 절대적이진 않으나 귀한 것을 가리는 의식이 자리한다고 저는 봅니다). 저는 이번 병역특례 논란(?)을 지켜보며 일전에 최영미 시인이 어느 호텔에 프로포즈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그 에피소드를 첨가하려고 했지요). 어쨌거나 인간은 알게 모르게 직업의 귀천을 구별하지만 현상이 실재할지라도 국가만큼은 그것을 (모른 척하고) 인정해서는 아니된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었습니다(써놨던 글에 이어 쓰기가 귀찮더군요).

그러니 병역특례, 그거 없애야 하는 거 아닌가, 이것이 저의 주장입니다만 전성기가 짧디짧은 운동 선수들을 보면 마음이 약해지기도 하니 이게 참 어려운 일 같습니다. ㅎㅎ 견해 공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생각지 못했던 것까지 고려해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인간은 알게 모르게 직업의 귀천을 구별하지만 현상이 실재할지라도 국가만큼은 그것을 (모른척하고) 인정해서는 아니된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었습니다

@perspector 님의 글을 보고, 위 인용한 주제로 짤막한 오늘의 에세이를 하나 쓸까 했는데 먼저 말씀하셨으니 조금 변주를 주어야겠군요ㅋㅋㅋㅋ 동의하고 공감하는 바입니다.

스팀잇에 양질의 글을 쌓으시는 @sleeprince 님이 제 글을 읽고 글을 쓰신다니 기분 좋아지네요!

귀천을 구분한다는 발상자체를 재교육 받아야 합니다.

자신들의 성난 심장에 대한 표현임에 크게 공감합니다.

징병제가 가진 강제성에 대한 억울함이 이미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기준으로 변경되어도, 변형된 또다른 논란을 부를 겁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공정한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겠지요.

말씀대로 한국은 징병제 국가이므로 병역특례가 존재하는 한 논란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데 동의합니다.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