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흥분시키는 뉴스를 읽으며(그알싫 268c, 2018년 4월 14일 방송분)

in #kr7 years ago

미국 드라마 작가들이 창작 아이디어가 떨어지면 써먹는 뻔한 플롯이 있습니다.

나쁜 넘들의 지원을 받는 천재 과학자들이 등장하구요, 국가 기관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본가 혹은 음험한 전략을 구사하는데 천재적인 자본가가 나오죠. 주인공은 순진무구 천진난만한 사람 혹은 천재적이지만 뭔가 사회 굴러가는 것에 무심한 사람들이 맡지요.

이런 라인업이면 스토리는 뻔하잖아요? 순진무구한 주인공이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열심히 하고 있는 일이 세상의 멸망을 앞당기고 있는 것임을 알게 되고 악당들로부터 탈출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착한 주인공이 악당의 마수를 벗어나거나 악당들의 음모를 깨는 것이 반복되지요. 하도 써먹은 플롯이라, 요즘은 노골적으로 이 방법을 따르면 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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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7일 터졌던 케임브리지 아날리티카 스켄들은 이 망하는 미드의 이 전형적인 요소들을 몽땅 다 갖고 있습니다. 한국엔 페이스 북에 설치되었던 앱으로 약 5천만에서 최대 8천만명의 미국인들의 신상정보가 털렸던 사건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지요. 사건 개요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캠브리지 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알렉산드르 코건은 페이스 북 사용자들에게 성향테스트앱 This is your digital life를 배포합니다. 약 27만명이 다운로드 받아서 이걸 직접 해봅니다.

그런데 이 앱은 정치심리, 정치성향, 정치구호 선호도, 페이스북 사용자의 성별, 학력, 출신, 나이는 물론 페이스북 내에서 어떤 페이지들에 ‘좋아요’를 누르고 다녔는지를 모두 뽑아갔지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처음 앱을 다운로드 받은 27만명의 친구들의 정보들까지 뽑아가 약 5천만명의 성향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하게 됩니다.

알렉산드르 코건은 이 정보와 분석을 미국의 은행가이자 정치인으로 트럼프 선거운동 캠프의 CEO였던 스티브 베넌이 이사진으로 있었던 케임브리지 아날리티카에 넘깁니다. 그리고 이 정치연구소는 이렇게 수집된 정보들을 가지고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와 트럼프 선거운동에 써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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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선 대박 치고도 백악관에선 짐 싸야 했던 분.

그런데 나중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을 조율한 알렉산드르 코건은 러시아의 생 페테르스부르크 대학은 물론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석유회사인 Lukoil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뇌물과 성매매까지 동원했다죠.

그런데 3월 17일 빅데이터 분석자였던 캐나다 태생의 크리스토퍼 와일리가 영국 가디언에 내부자 고발을 하면서 전말이 드러나게 된 겁니다.

미드 플롯에 따라 짜맞추면 대략 배역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앱을 만들어 수천만명의 디테일한 선호 모델링이 끝난 데이터를 케임브리지 아날리티카에 판매한 사악한 과학자는 알렉산드르 코건이라고 할 수 있죠. 생 페테르스부트크 대학에서 강의를 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석유회사의 돈도 받았던 양반이니. 그리고 트럼프 선거운동 캠페인의 총책임자였던 스티브 베넌이나 공화당에 어마어마한 액수를 기부해온 로버트 머서는 정부를 맘대로 조종하는 사악한 자본가. 주인공인 순진무구한 청년은 크리스토퍼 와일리가 이 모든 비밀을 깨닫고 내부자 고발에 나선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 스켄들이 터지고 나서 미국, 영국, 그리고 EU는 난리도 아닙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우린 이 문제에 대해 좀 조용한 것 같습니다. 뭐 다른 것보다 우린 정보기관이 직접 대선에 개입했던 역사가 있어서 그런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해야 했는지도 잘 이해 못하시는 것 같기도 하구요. 미국 선거가 원래 좀 복잡한 탓도 있겠죠.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케임브리지 아날리티카의 선거운동 모델에 대해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이유는 최근에 선거경험들이 있어서 그러실 것 같습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를 찍으셨던 어르신들은 지난번 장미 대선에서도 지금의 야당을 찍으셨죠. 그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표 영업해보셨던 분들이라면 기계가 사람의 정치적 성향 파악을 했다고 해서 다른 후보를 찍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바꿀 수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 아주 회의적이실 겁니다. 그런데요... 남을 설득하는 기술은 상당히 체계화되어 있습니다. 특히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이미 체계화된 기술이 있습니다. 2015년 경에 뉴욕 타임즈에 실린 ‘정치적 설득의 열쇠’라는 기사에선 설득하려는 당사자의 세계관에 맞추면 설득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자면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동성 결혼에 대해 아주 부정적이죠. 그런데 이 분들을 상대로 “동성 커플들은 자랑스럽고 애국하는 미국인이며, 미국 경제와 사회에 기여합니다.” 라고 설득하니까 반응하는 보수주의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대체로 미국의 진보주의자들은 군비 지출에 대해 부정적이죠. 그런데 그들에게 ‘빈곤과 불우한 환경에 놓인 이들이 군대를 통해 확실한 월급을 받고 빈곤과 불평등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이야기하면 군비 지출의 필요성에 대해 덜 부정적이 되더라는거죠.

하지만 이런 식으로 상대의 사고체계를 이해하고 그 사람들이 반응할 수 있는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던 사람은 8~9%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선거정국에서 자식이 부모를 설득하지 못하는 이유는 부모님들이 반응하는 지점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부모님의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교육은 논리적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것에 상당히 특화되어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8~9%만 다른 사람의 세계관에 맞춰서 사안을 설명하는 능력을 갖는데 우린 어떻겠어요?

자식들이 부모의 투표 성향을 바꾸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이겁니다. 어르신들이 생각하는 방식과 어르신들이 말하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거에요. 하지만 기계는 이게 가능하지요.

무엇보다 선거라는 놀음은 한 표가 그냥 한 표가 아닙니다. 경쟁 후보에게 가려고 했던 표를 뺏아오면 +2에요. 경쟁 후보에게 가려고 했던 표가 경쟁력 떨어지는 소수파 후보에게 간다면 그건 -1에서 0이 된 겁니다. 상대 후보 열성 지지자가 투표하지 않게 만들었다면 그 역시 -1에서 0이 된 거에요. 캐임브리지 아날리티카가 5천만명의 미국 유권자들을 5천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했던 것은 이런 차이에 따라 공급해야 할 컨텐츠가 달랐기 때문이죠. 물론 이 상당수는 가짜뉴스였습니다만.

무엇보다 타겟별로 다른 선거운동을 해서 성공했던 사람은 직전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였습니다.

2012년 11월 12일 뉴욕타임즈엔 오바마 승리의 비밀, 특정 시청자를 노려라라는 기사가 실립니다. 당시 기사를 그냥 읽어드릴께요.

특히 TV 광고를 내보낼 때 언제, 어떤 프로그램을 선택할 지 결정하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바마 캠프는 오랜 기간 유권자들의 정보를 모아 왔습니다.

시민들이 등록한 이메일 주소나 페이스북 상의 정보, 유세 과정에서 수집한 정보를 선거 데이터베이스에 모은 뒤 모든 유권자들을 오바마에게 투표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순위를 매깁니다. 그런 다음 오바마에게 투표를 할 수도 있는 (Likely) 유권자와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은 부동층(Undecided) 유권자들이 볼 가능성이 가장 높은 TV 프로그램을 찾습니다.

심지어 오바마 캠프는 특정 연령의 부동층이 보는 TV프로그램도 파악해서 후보가 프로그램에 출연하도록 했습니다. 이때 특정 연령의 지지자들이 즐겨보는 프로그램의 종류가 다르다는게 또 나오죠...

자 이렇게 빅데이터를 이용해 그 사람들의 성향에 맞춘 컨텐츠로 하는 선거운동은 이미 두 번의 연이은 성공사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나라엔 전쟁에 대한 공포를 갖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에겐 남한이 북한인구의 두 배가 넘으며 GDP로는 48배가 넘는다는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사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노동자 숫자가 2배가 넘고 매출액이 50배 가까운 회사를 적대적 M&A 한다는 것은 사기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겪은 세대에겐 이게 중요한게 아니에요. 거기다 특정 지역은 이번 지자체 선거에서도 요지부동의 아성이 될 전망입니다.

이런 판에 국가가 이 그룹에 들어가는 분들을 특정해줬어요. 주민등록번호로 말이죠. 주민등록번호는 몇 년도에 태어났다는 것 뿐만 아니라 성별과 본적지 주소까지 표기가 되지요. 거기다 보안성 취약한 웹서버에서 이 정보를 저장하도록 만들었던 까닭에 대한민국 국민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는 전세계의 공공재입니다. 여기에 우리는 각종 이벤트에 참가하면서 우리의 전화번호까지 자진해서 제공해왔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죠. 이제 곧 선거죠. 그알싫 데이터 센트럴의 시즌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죽어나간다는 이야기만 들었던지라 저에게 연락이 없기만 기원하고 있습니다. 여튼 그런데 말입니다, 총선은 물론이고 지자체 선거에서도 여론조사는 전화 번호를 주로 활용합니다. 여론조사 기관은 특정 지역에 살고 있는 표본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죠. 뭐 물론 조사 과정에서 특정 지역 거주자와 연령대를 물어서 표본 내에 들어가는지 확인하기도 합니다만.

뭔 이야기냐면 우리는 알렉산드르 코건이 페이스북에 올렸던 앱처럼 복잡한 알고리즘으로 예측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는 지역과 연령대에 따라 특정 정당 지지세가 분명하게 나뉩니다. 그리고 공약 보면서 후보를 결정하는 스윙보터들은 10% 대에서 오락가락합니다. 이들을 설득하느니 지지층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인 전략이 됩니다.

지구상엔 제대로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나라들이 그닥 많지 않습니다. 유럽과 북미, 그리고 호주와 뉴질랜드 정도죠. 그런데 그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도 사실 빅브라더가 개입하고, 후보의 실력이나 공약보다 후보 캠프에서 지출하는 돈의 규모가 더 중요해진지 오래입니다. 캐임브리지 아날리티카 스캔들은 우리의 선택도 사실 우리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죠.

그런데요.. 케임브리지 아날리티카 스캔들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 분명하게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 어르신들의 단톡 방에 뿌려지는 메시지는 딱 하나만 빠지죠. “누가”.

안민주정부 9년간 국정원과 관련된 추문들은 꽤 많이 들려왔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조사가 진행된 것은 현 정부 들어서죠. 현 정부의 국정원 적폐청산 TF는 2017년에 구성된 다음에 총 15개 항목에 대해 조사했었습니다.

▶화교 간첩 증거조작 ▶세월호 참사 관련 의혹 ▶북방한계선(NLL) 관련 남북 정상 회의록 공개 ▶18대 대선 국정원 댓글조작 ▶‘좌익효수’ 필명 사건 ▶헌법재판소 사찰 ▶박원순 서울시장 사찰 ▶문화계 블랙리스트 ▶채동욱 전 검찰총장 뒷조사 ▶추명호 전 국장의 우병우 청와대 전 민정수석 비선 보고 ▶극우단체 지원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개입 및 ‘논두렁 시계’ 피의사실 공표 의혹 ▶이탈리아 해킹프로그램(RCS)을 이용한 민간인 사찰 및 선거 개입 ▶명진 스님 사찰 ▶야권 지자체장 견제활동

이 조사에서 단톡방의 가짜뉴스는 끼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럼 누가 저 가짜 뉴스들을 생산하고 퍼나르고 있는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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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요즘 좀 많이 바빠가... ㅋㅋ ㅠㅠ

현대 정치는 이미 정치공학이 되어버린 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이것을 피할 수 없는 걸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무언가 대안을 마련해야 할지가 중요하겠죠

예전엔 돈이 많으면 표를 매수했는데, 요즘은 돈이 많으면 그 사람을 자발적으로 자신이 찍었다고 믿는 선거를 만들 수 있게 되었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후아, 이런 무거운 내용이 후루룩 안 끊기고 술술 읽히네요. 탁월한 글 감사합니다.

;;;; 탁월이라니;;; 뭐 여튼 감사합니다

좋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홍보해

고맙습니다;;; 음;;; 사실 컨텐츠 재생인데;;; ㅎㅎ

@ravenclaw69님 안녕하세요. 깜지 입니다. @sjchoi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사무엘 성님의 콘텐츠는 항상 실제 현실에 가려진

뒷 담화 이야기인척?하는 통찰이라서 좋아요.

어제서야 해당 그알싫 들었는데 아 정말 부모님에게 카톡 보내는 사람들에게 찾아가고픈 심정이 드는 것은 저만이 아니였군요 ㅋㅋ

어쨋든 그알싫이 원래 그렇긴 했지만 그래도 사실 방송컨셉에

사무엘성님이 가장 잘 어울리신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감히 주관적인 선호도를 밝히자면.. 인조인간님과 쌍두마차..

UMC가 복받았다고 저는 평가합니다.

잘 모르겠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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