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글] 웜비어사건이 유발한 미국의 흑백갈등 / [Translation English to Korean] North Korea Proves Your White Male Privilege Is Not Universal By La Sha
미국에서 웜비어 사망으로 인한 대북 적대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일부(특히 흑인들)에서는 웜비어에 대한 과도한 관심에 대해 비판론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북한의 행태야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이들이 북한에게 억류되어 있는 다른 한국계 미국인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을 보면 비판론이 존재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납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http://news1.kr/articles/?3027310
우리나라에서도 관련 내용에 대해 소개된 기사가 있습니다.
특히 논쟁에 불을 붙인 계기는 La Sha라는 흑인 여성이 허핑턴포스트에 게재한 칼럼인데요, 한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아 짧은 영어 실력으로나마 번역을 해 보았습니다.(이 글은 웜비어의 건강이상이 확인되기 전 시점에 게재되었습니다)
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www.huffingtonpost.com/la-sha/on-the-revocation-of-whit_b_9531122.html
제목 : 북한은 백인 남성이라는 특권이 보편적인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북한의 백인 특권 철회
"그게 그 녀석이 얻은 결과지. 걔를 위해서도 잘 된거야." 어느 날 아침 뉴스를 보던 어머니가 평범한 사실을 말하는 목소리로 이 말을 내뱉었다. "그"는 오하이오 출신의 18살 마이클 페이로, 싱가포르에서 차를 부순 사실을 자백하고 그 후에 등나무 회초리로 여섯 번을 맞는 형벌에 처해졌다. 나는 6학년이었고 내가 상상할 수 있던 것은 그 고통이 얼마나 끔찍할지에 대한 것 뿐이었다. 어머니는 냉정하게 말했다. "본인이 자초한 일이야"
나는 며칠 전 21세의 오토 웜비어의 영상을 보며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렸다. 그 역시 오하이오 출신의 남자로 지난 주 북한에서 정치선전물을 훔친 혐의로 국가전복죄를 선고받아 15년형의 노동교화형에 처해졌다. 페이의 케이스처럼 나는 처벌의 혹독함에 충격을 받았다. 나는 10년하고도 그 절반을 북한에서 고된 노역을 하는 것을 상상했다.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난 이제 11살이 아니고, 지금 어머니가 마이클 페이의 형벌에 냉담하게 반응했던 것은, 아시아 국가에 가서 법을 어긴 또 다른 젊은 백인에 대한 나의 반응과 동일하다. 그리고 이곳 미국에서 제공하는 그의 백인 남성 정체성이라는 방패가 외국에서는 무적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나는 웜비어에게 내려진 판결에 대해서 놀랐지만 더 놀란 것은 성인인 미국 시민이 자발적으로 북한에 들어갔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대학교에서나 치는 장난"으로 설명되는 짓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이런 무모할 정도의 뻔뻔함은 이 나라에서 먼저 백인 소년으로 사회화되고, 백인 남성이 되는 것의 불행한 부작용이다. 이 나라의 모든 경제적, 학술적, 법적, 사회적 시스템은 3세기 이상 백인 남성이 모든 특권의 최우선 혜택자가 되는 것을 보장하기 위한 은밀한 목적을 수행하여 왔다. 이런 상황이 낳은 오만은 병원균과 같은 것으로, 감염된 숙주에게 무의식적으로 규칙이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거나, 최소한 그 적용에 타협을 볼 수 있다는 불쾌한 인식을 무의식중에 심는다.
기사 헤드라인들은 오토 웜비어가 학생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의 링크드인(주:비지니스 인맥사이트) 프로필은 그가 경제학 전공에, 부전공은 전세계적 지속가능성이며, "대안 투자 펀드"의 이사라고 되어 있다. 이 나라에서 고등 교육 커리큘럼의 일환으로 세계에 대해 공부했다면, 최소한 미국과 북한 사이의 악명높은 긴장관계를 대충이라도 알았어야 했다. 물론 그는 제프리 포위와 매튜 밀러(주:북한에 5~6년간 억류된 사람들), 그리고 북한에서 "사소한 범죄"를 저질러 체포되어 노동교화형에 처해진 백인들의 이야기를 읽었을 것이다.
나는 그가 그 나라에서의 정치적 환경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데 마지막 1달러까지 걸 수 있다. 하지만 특권은 지옥으로 가는 마약이었다. 최고조에 달한 특권은 그에게 북한의 엄격한 법체계에 감히 도전한 미국인들이 만든 역사적 사례들이 어쨌건 상관없이 그의 석고상처럼 단단한 미국인 특권을 해치지 않울 거라고 말해주었다. 당신이 극장으로 들어가 12명을 죽이고 상처 하나 입지 않은 채 나오는 백인을 본다면(주:콜로라도 주 영화관 총격사건) 당신은 당신을 천하무적이라 여기기 시작할 것이다. 백인이 교회에 들어가 9명을 죽이고 방탄조끼를 입은 채 버거킹을 사는 백인을 본다면(주:흑인교회 총기난사범이 체포된 후에 경찰관이 범인에게 버거킹을 사준 사건) 세계가 당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국가가 승인한 폭력에 희생된 흑인들에게 우리가 법을 지켰으면 그런 결과를 마주하지 않았을텐데라고 매도하는 시민들이 가득찬 나라에서 왔다면, 웜비어는 이 말을 들었어야 했다. 만약 그가 북한의 법률을 준수했다면, 그는 지금 집에 있었을 거라고. 사실 그가 북한 여행에 대한 미국 당국의 강력한 주의를 무시하지만 않았어도 지금 그는 집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에릭 가너의 죽음에 불법 담배를 판 책임을 추궁받는다면, 산드라 블랜드가 차선변경 신호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는다면(주:둘 다 흑인으로 경범죄와 관련하여 백인 경찰에게 사망한 사건임), 오토 웜비어가 판단력이 나쁘고 미국을 증오하고 복수하려는 나라의 자주권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5년의 노동교화형을 받는 것도 명백히 문제없는 일이다.
나는 그의 부모가 국무부에 그의 석방에 대해 협상하라고 촉구하는 것을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아들이 북한 여행을 계획할 때 그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들은 아들에게 그를 기다릴 적대적 환경에 대해 강조하지 않았나? 그에게 법과 질서를 존중하라고 교육하지 않았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나?
단순히 DNA 코딩이 호의적인 표현형으로 나타났다는 이유로 세상에 의해 떠받들여져 21년을 살아왔는데, 그런 호의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것은 얼마나 어안이 벙벙한 순간인가. 국무부가 모든 영향력과 힘을 동원해도 당신의 용서를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을 실감한 것은 얼마나 실망스러운가. 당신의 눈물이 무관심과 마주했음을 실감하는 것은 얼마나 경종을 울리는 일인가.
이미 말했듯, 북한에서 15년간 노동교화형을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똑같이 내가 환영받지 못하고 그들의 법을 어기는 내가 아는 장소가 있다. 나는 흑인 여성이니까. 웜비어의 희망없는 공포는 내가 이 나라에 살면서 매일같이 마주하는 일상에서 겪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웜비어와 같은 백인들이 나의 비용을 바탕으로 그들의 패권을 보장하는 권력 구조를 유지하는데 공모함으로써 나의 고통을 의도적으로 자각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이제 그의 도움을 외치는 절규에 응답하지 않는 정부의 자비로부터 벗어났다. 그럴 줄 알았다.
글에 공감합니다. 윔비어와 함께 북한 여행을 했던, 그리고 윔비어가 체포되는 순간을 목격한 한 남성은 윔비어가 체포되는 순간까지도 웃으며 농담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 남성은 윔비어가 얼마나 착하고 평범한 인간인지를 말하기 위해 그 말을 한 듯 하지만, 체포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니 윔비어의 오만함이 잘 느껴지더군요. 이런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의 사람들이 나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못할 것이란 자신감이요. 위의 글대로 그런 오만함은 태어났을때부터 학습되어 온 과정의 산물이겠죠.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만함의 댓가를 죽음으로 치뤄야 했다는 점은 너무 가혹하게 느껴지네요. 글 감사합니다.
말씀대로입니다. 오만과 사려깊지 못한 것이 죄는 아니겠지만,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데 충분한 인과관계를 제공한 것만은 사실이니까요.
어떻게 저 나라에서 그럴 수가 있는지, 백인 특권을 톡톡히 누리며 살았나봅니다.
저 나라니까 더욱 그렇지 않을까요... ㅎㅎㅎ
저도 북한에 간 적이 있는데 입국절차 중 군인이 모자를 벗으라는데 악센트가 너무 강해서 못 알아들은 적이 있어요. 계속 소리를 지르는데 못 알아듣겠으니 엄청 무섭던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