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일기] 모든 권리가 거세당한 느낌...투표를 포기했다
#2018년 6월13일 마약일기
오늘은 지방선거일이다. 내 생애 처음으로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차악이라도 꼭 뽑아야 한다’며 SNS에서 지난 몇 년간 사람들 상대로 선거 때마다 글을 쓰곤 했던 나였는데. 뭐랄까. 모든 일에 의욕이 없다.
마약 중독자들의 삶이란게 이런 건가. 뭔가 시민적 권리라든지 그런 것 자체를 거세당한 느낌이다. 직장도 잘리고 곧 재판에 넘겨질 것 같은데. 내 인생의 가장 큰 축이 하나 무너져버렸는데 정치는 바꿔서 뭐하고 ‘차악의 정치인’이 누군지 구분하기 위해 관심 기울여서 뭐 할 것인가.
내가 ‘드루킹 사건’ 관련한 보도를 터뜨린 탓에 제법 내 이름이 SNS 상에 오르내리나보다. 내가 김경수를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그런 기사를 썼다는 둥,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성남 조폭들 활용해서 나를 마약에 빠지게 만들었다는 둥 이런저런 말도 안되는 음해성 글들이 돌아다닌다고 한다. 사람들의 상상하고는.
나는 기자다. 기자는 태생적으로 정치인과는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는 직업인이다. 정치인과 친하게 지낼 수는 있지만 ‘정치인의 측근’ 이라는 건 기자에게 허용될 수 없다. 기자는 늘 정치인을 감시해야 하는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씨가 나를 음모에 빠지게 할 이유도 없고, 내가 김경수씨를 공격할 이유도 없다. 이번 일은 그저 다 내가 부덕하고, 못나서 벌어진 일일 뿐.
김부선씨가 이재명 후보와의 과거 스캔들 탓에 또 이런저런 마음 고생을 하는가보다. 그 사건을 자세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해주고 싶은 말이 많지만 나설 수가 없다. 나는 사회의 발언권이라든지 시민적 권리를 한꺼번에 거세당한 느낌이다.
마약 범죄자는 SNS를 이용해서도 안되고, SNS를 봐서도 안된다. 그게 우리나라의 상태다. 어쩔 수 없다. 적응해야 한다. 일단은 내 스스로의 치유가 우선이다. 빨리 대중에게 잊혀졌으면 좋겠다. 일단 이번 선거는 건너 뛰자. 나는 투표를 할 자격도 없다.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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