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를 정복한 이디오피아인

in #kr6 years ago

1960년 9월 10일 ‘피어나는 꽃’ 로마를 정복하다

1960년은 ‘아프리카의 해’라고 불린다. 소말리아 차드 니제르 말리 코트디브와르 나이지리아 토고 가봉 콩고 등이 무더기로 독립한 것이다, 그런데 1960년을 또 다른 의미로 아프리카의 해로 만든 사람이 있었다.

1960년은 로마 올림픽 마라톤 코스의 종착지는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이었다. 우승자는 마치 로마제국의 개선장군처럼 개선문을 통과하여 월계관을 쓸 터였다. 마침내 선두 주자의 윤곽이 드러났을 때 세계는 경악했다. 우선 흑인이었다. “흑인들은 장거리에 약하다.”는 속설이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두 번째 놀란 이유는 그의 맨발이었다. 그는 신발을 신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아디다스가 육상화 협찬을 해 주긴 했으나 시원치 않자 그냥 맨발로 내달린 것이다. 세 번째는 이디오피아 선수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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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와 이디오피아는 악연이 많았다. 20세기가 시작하기 전 이탈리아는 이디오피아를 식민지화 해 보려고 기웃거리다가 호된 패배를 당했는데 1935년 뭇솔리니의 이탈리아 군대는 기어코 이디오피아를 침공하여 점령한다. 수많은 이디오피아인들이 그에 대항해 싸웠고 맨발의 이디오피아인의 아버지도 그 전쟁의 참전용사였다 그 역사를 뒤로 하고 맨발의 이디오피아인 마라토너 비킬라 아베베는 로마의 개선문을 향해 달음박질쳐갔다.

비킬라 아베베는 이디오피아의 암하라 어로 “피어나는 꽃”이란 뜻이다. ‘아프리카의 해’에 한 아프리카인이 자신의 조국을 점령했던 열강의 수도 한복판을 선두로 질주해가는 모습은 기나긴 겨울을 지나고 피어나는 꽃망울처럼 세계 사람들의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이디오피아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이탈리아 군 전 병력이 필요했지만, 로마는 단 한 명의 에티오피아 군인(당시 하사관)에 정복당했다.” (당시 보도) 그리고 아베베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가난해서 현대의 수송수단에 익숙하지 못하다.” 웬 우승자답지 않은 자기비하인가 했더니 그 다음 말에 백인 기자들은 어안이 벙벙해지고 만다. “우리는 어디든지 뛰어간다. 40km 정도는 별것이 아니며 더 뛸 수 있다 한 20킬로미터쯤은” 아, 아프리카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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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후 동경 올림픽에도 아베베는 출전했지만 그의 우승을 기대한 사람은 없었다. 단 5주일 전에 아베베는 맹장수술을 받았던 것이다. 실밥 푼 지 얼마 안되는 선수가 마라톤에 출전한다는 자체가 무리라는 평이었다. 하지만 아베베는 또 하나의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한다. 문제는 우승한 뒤에 벌어졌다. 아베베의 우승을 상상도 하지 않은 조직위원회가 이디오피아 국가 연주를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준비성 많기로 소문난 일본인들도 아베베의 배신(?)에 어쩔 줄을 몰랐다. 결국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진다. 아베베가 올라간 시상대 위로 주최국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가 울려퍼진 것이다.

대륙을 달리한 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도 아베베는 나타났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아베베는 기운차게 달려나갔다. 초반 페이스는 오히려 이전 대회보다 빨랐다. 당연히 경쟁 선수들은 아베베를 의식하며 페이스를 조절할 수 밖에 없었는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경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이디오피아의 동료 선수 마모 윌데가 선두로 치고 나오자 아베베가 기권을 해 버린 것이다. 세계가 놀랐으나 본인과 코치는 담담했다. 그는 경기 시작 전에 이미 골절상을 입고 있었다. 그 다리로 동료의 페이스 메이커를 자임했고 초반의 놀라운 레이스로 마모 윌데의 경쟁자들의 기를 꺾어 버린 것이다. 마모 윌데가 경기장 몇 바퀴를 돌고 골인할 때까지 2위는 경기장 안에 들어오지도 못했다.

그 후 황제가 하사한 폴크스바겐을 운전하던 도중 그는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다. 이디오피아와 자신에게 영광을 갖다 준 그 다리가 마비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손기정 옹도 당뇨로 썩어가는 다리를 절단하자는 의사의 거부를 완강히 거부했다는데, 한창 젊은 나이의 그가 얼마나 좌절했을지는 넉넉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는 또 올림픽의 무대에 나왔다. 물론 마라토너로는 아니었다. “나에게 다리는 없지만 두 팔이 있지 않은가.” 그는 라켓과 활을 들고 있었다. 장애인 올림픽 탁구와 양궁 종목에서 그는 또 금메달을 따냈다. 더 재미있는 것은 한국전쟁 참전 기간 (그는 6.25 때 참전한 이디오피아군 대대장 경호병이었다.) 외에는 눈을 볼 일이 없었을 그가 눈썰매 크로스 컨트리에서도 금메달을 따냈다는 것이다.

신발이 발에 제대로 맞지 않자 집어던지고 맨발로 뛰었고, 맹장수술 끝낸 지 5주만에 42.195 킬로미터를 세계에서 가장 빨리 달렸으며, 부러진 다리로 동료를 위해 뛰었고, 하반신이 마비되자 이젠 두 다리 대신 두 팔로 세계를 놀라게 한 사나이. 그를 생각하면 좌절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책임하고 지친다는 동사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를 절감하게 된다. “나는 그저 달릴 뿐이다. 내 조국 이디오피아가 시련을 이겨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을 뿐이고.” 1960년 9월 10일 한 피어나는 검은 꽃이 로마를 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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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밟아버린 위대한 인간의 이야기. 숨도 쉬지 않고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와우 정말 좋은 글이네요
아베베 정말 멋진 인물입니다!

네 멋진 인물입니다...... 참 존경스럽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시련이라고 말하기 무색할 정도네요..
존경스러운 인물입니다!

어떤 호주의 수영 금메달리스트는 힘들 때마다 아베베 아베베! 를 부르짖으며 훈련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세계 스포츠맨들의 전범이었죠ㅕ.

강대국의 무력도
인간의 의지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인간의 의지란....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스포츠맨은 그걸 근거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도 하구요

성경과 호머의 일리드와 오디세이에도 나오는 나라의 백성이니 ...

그죠... 참 고색창연한 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