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사+뒷얘기(얼굴주의)]국회의원 특권의식엔 좌우가 없더라
안녕하세요, shiho입니다. 오늘은 지난 금요일부터 오늘 아침에 걸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한 여당 의원에 관한 두 꼭지의 기사를 썼습니다. 그리고 방금 그 의원실 보좌관한테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난 금요일인 23일 국정자문기획위원회 위원들은 '거버넌스'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가이 피터스(요런 양반) 미국 피츠버그대 석좌교수를 불러 한 시간 여 특강을 들었다. 거버넌스는 요즘 '행정'이라고도 쓰이는데 좀 더 범위가 넓은 개념인 듯하다. 공공경영, 국가경영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여러 정책주체들의 이해 조정이나 의사소통 같은 걸 다루는 분야 같다. 피터스 교수는 나도 잘 몰랐는데 이 분야의 권위자라고 한다. 일정에서 이 사람 이름을 보고 찾아보니 촛불과 탄핵 이후에 세계일보에서 몇개 면을 발라서 이메일 인터뷰를 했더라.
어쨌든 이날 특강은 공개였다. 오후 4시 30분에 강의가 시작됐는데 나 같은 경우 그 시간이 기사 가판(요건 추후 신문 제작 시스템을 설명하는 글을 따로 작성할 예정) 마감이다. 그래서 우선 피터스 교수가 누군지, 평소 촛불 이후 한국정치에 관한 관심이 어떤지, 이날 강의 주제는 뭔지 등으로 기사를 먼저 엮어 놓고 강의에 들어가서 앞부분 내용 중 제일 중요한 한 두 포인트만 녹여서 기사를 보냈다. 그리고 오후 8시 2차 마감에 보낼 기사를 쓰기 위해 5시 30분까지 예정된 강의를 들었다. 강의 내용을 갖고 기사를 써야 하니까.
사건은 5시 30분쯤 이 특강을 주최한 국정기획자문위 정치·행정 분과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자신의 일정 때문에 자리를 뜨게 되면서부터다. 끝나기로 예정된 시간이 됐지만 질의 응답이 길어져서 강의는 계속되고 있었고 박 의원이 슬쩍 일어나는 걸 보고 '일정이 있구만' 하고 그러려니 했다. 피터스 교수는 한 전문위원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진행을 맡은 다른 전문위원이 마이크를 대고 "잠시만요" 그러면서 교수의 말을 끊어먹는 거다. 그러더니 "박 의원님이 일정 때문에 먼저 일어나셔야 하는데 그 전에 기념사진을 찍고 가려고 한다"는 거였다. 교수는 어리둥절했고 기자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특히 나는 앞서 박 의원이 뻘같은 질문을 할 때부터 슬슬 창피하고 화가 나려는 참이었다. 세계적인 석학을 불러 놓고 한창 설명하고 있는 걸 가로막고 사진을 찍겠다기에 열이 받아서 '시발'이라고 속삭였다. 근데 이걸 그 진행자가 봤다. 그는 "기자분들 죄송합니다. 피터스 교수도 정치가 전공이라 정치인들이 이러는 걸 이해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더 어처구니가 없어져서 입모양으로 갖은 욕을 다 했는데 봤을랑가 모르겠다.
사실 박 의원은 등장부터 좀 어이없었다. 피터스 교수가 먼저 와 있었고 그 뒤에 나타났는데 사실 이것도 생각해 보면 예의가 아니다. 학생이 먼저 와서 앉아있는 상태에서 선생이 들어오는 거 아닌가. 무튼 박 의원은 교수에게 다가가 헬로 나이스미츄 어쩌구 한 뒤에 교수 옆에 앉은 통역에게 "나는 국정기획위의 정치행정분과 위원장이고 집권여당의 재선 의원이라고 소개해 달라"고 했다. 내용이 틀린 게 없는데 사실대로 설명해달라는 게 머 문제냐고 할 수 있지만, 위원장 직함과 '재선'이라는 점을 스스로 강조한 게 그닥 좋아 보이지 않았다.
박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직전 질문은 또 어땠냐면, 강의 중에 호주의 행정 애드버킷 제도를 소개했는데 이건 복잡한 행정 절차를 변호사처럼 행정 대리인이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행정과 정책 접근성에 대한 일반 시민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정도로 소개됐다. 근데 본 강의가 끝나고 질의 응답 시간에 한 전문위원이 상당히 좋은 질문을 했고 교수는 "굿 퀘스천"이라며 답을 해줬다. 그리고 이후 아무도 질문을 안 하자 박 의원이 나섰는데, 질문 내용은 "아까 나온 호주의 제도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는 거였다. 이 또한 뭐 문제될 게 있냐고 생각될 수 있는데 솔직히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는 건 관심이 있으면 도서관 가면 되는 거다. 굳이 글로벌 석학한테 그런 질문을 할 필요는 없었다.
피터스 교수는 어리둥절하다가 통역이 머라머라 설명하니까 빙긋 웃었는데 내가 보기엔 좀 어이없는 웃음이었다. 박 의원은 작은 쇼핑백에 든 선물을 교수에게 전달하는 장면을 직원들에게 찍게 했고 그 뒤 거기에 있던 17명(세 봤다)의 국정기획위 관계자들이 전부 앞으로 나와 증명사진을 찍었다. 교수는 무표정했다.
바로 이장면.
사건의 개요는 여기까지다. 나는 강연 기사를 쓰러 들어갔지만 저런 꼴을 보고 그냥 "교수가 이러이러한 강의를 했다"고 쓸 수는 없었다. 바로 반장에게 전화를 했다. 상황을 설명하고 이 사건을 갖고 기자칼럼을 쓰겠다고 했다. 반장은 그냥 이 사건으로 기사를 쓰고 강의 내용은 뒤에 살짝 붙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지시대로 8시 마감용 기사를 썼다. 반장이 살짝 데스크를 봤는데 크게 고친 부분은 없었다.
그런데 최근 인사가 나서 새로 온 부장이 기사를 잡더니, 강의 내용 중심으로 써진 가판용 기사 끝에 이 사건 내용을 '한편'으로 붙인 모양으로 고쳐버렸다. 기사에 힘을 쫙 빼 버린 것이다.
짜증이 났지만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마사지 당한 게 한두 번도 아니었다. 부장이 제 권한을 행사한 거다. 불만을 제기할 수는 있었지만 아직 사원인사 전이라 내 거취가 어찌될지도 아직 안 정해졌는데 새로 부임한 지 일주일도 안 된 부장한테 벌써부터 들이받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현장에 다른 회사 기자들도 많았으니까 누군가 쓰겠지 생각했다. 평소 내가 아니라도 다른 누구든 문제를 제기하고 시민에게 알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주말에 기사를 검색해보니 아무도 안 썼더라. 욕지거리가 나왔다. 그나마 '한편'으로라도 사건을 붙인 건 내가 유일했다. 분노하고 있는데 아내가 "내일 발제해 그럼"이라고 했다. 그래서 어제(일요일)에 기자칼럼을 발제했다.
같이 분노하고 있던 반장은 흔쾌히 내 발제를 팀 발제에 넣었고, 뜻밖에 부장도 정치부 발제에 넣어줬다.
그래서 쓴 게 이 기자칼럼.
칼럼이 나간 뒤 의원실에서 전화가 올 줄은 알고 있었다. 빼도박도 못할 짓인데 무슨소릴 할까 궁금했다. 간략히 정리하면 내용은 아래 반장에게 보고한 내용과 같았다.
@박범계 의원실 전화
- 기자들 요청으로 공개가 돼서 그렇지 사실은 국정기획위 내부 공부모임이었고 대단하게 초청해서 특강하는 행사는 아니었다.
- 의원이 자리에서 먼저 일어난 건 원래 예정된 강의 종료 시간인 오후 5시 30분쯤이었는데 질의응답이 길어져 부득이 먼저 일어나는데 사람을 불러 놓고 인사도 없이 그냥 가면 안 되니까 준비한 선물도 전달하고 인사 겸 사진을 찍은 것. 오히려 예의를 갖추기 위해 그런 것.
- 이럴 줄 알았으면 비공개나 모두발언만 공개를 할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 가이 피터스라는 교수가 얼마나 세계적인 석학인지 잘 몰랐고 지금도 사실 잘 모르겠다.
이 예의바른듯하면서도 자신이 싸가지없음을 굳이 숨기지 않는 보좌관의 말을 해석하자면,
- 비공개 행사에서는 국회의원이 강연자 말을 중간에 끊고 사진을 찍어도 된다.
- 강연자가 세계적인 석학이 아니라면 말을 중간에 끊고 사진을 찍어도 된다.
- 꼭 기념사진을 찍어야 예의다.
- 이제 너희 기자놈들에게 아무것도 공개 안 할 거다.
나는 "조금 협박조로 들리는데 말씀하신 취지는 알겠다. 그러나 행사가 아무리 본래 비공개 소모임으로 계획됐더라도 언론에 전체공개됐으면 공식적인 행사다. 말씀하신 내용은 윗선에 말씀드리고 결정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위 내용 그대로 반장에게 보고하자 반장은 'ㅋㅋ'라는 짧은 답을 보냈다.
창피한 일이네요ㅠ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보팅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팔로우했습니다!
저도 맞팔합니다^^*
이런얘기 참 좋습니다.
ㅋㅋ 제 글 중에 이런 얘기를 제일 재밌어들 하시더라구요. 자주 써야겠습니다. 팔로우했습니다!
국가 망신입니다...왜 저러고 살까요..정말.
meep
meep
meep
저도 현장에서 낯이 뜨거워서 혼났네요 ㅜ
와우.... 박범계 의원... 작년에 열렬한 팬이었는데
문자 폭탄으로 국민의 사랑을 좀 체감하게 해야겠군요.
뭐, 애초에 삼례사건 때도 마지못해 사과하는 모양새가
좋지 않았는데... 역시 정치인 되면 다 똑같은 모양입니다.
저도 원래 구여당 출입하면서 민주당 의원들은 안 그러겠지 했는데 역시나 똑같... 특히 박뿜계님은 청문회 정국에서 좋은 인상이었는데 크게 실망했습니다.
박범계 박범계
그사람 그정도 밖에 안되는 물건이었군요
실망이 큽니다. 물론 진짜 훌륭한 의원들도 많죠. 제가 곧 인사가 날 텐데 정치부에 남게 되면 미담도 좀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ㅋㅋ
하...우리나라 지도부들의 수준이 저정도니...창피합니다.
진보진영이라고 크게 다른 것도 없더라구요 ㅜ
영화 한 장면이 생각나네요. 터널에서 사고당한 하정우 와이프랑 사진찍기 바쁜 분들의 모습요. ㅜㅜ
국당 의원들도 세월호 건져내자마자 달려가서 사진을 찍었더랬죠. 요즘은 영화보다 현실이 더 쎄다는... 감독들 죄다 실업자 되겠어요.
새로운세계에 관해 이야기들려주셔서
항상 흥미롭게 잘 듣고있어요!
고맙습니다! 이쪽 분야에서 글감을 많이 발굴해야 겠어요 ㅋㅋ
기자분이시군요. 권위의식과 특권의식은 여야를 가리지 않습니다. ㅋㅋㅋ
평소 이미지랑 달라 실망한 분들이 워낙 많아서 ㅠㅠ. 개인적으로 세계일보 XX위원으로 계신분과 자주 만남을 갖는데, 스팀잇에 대해 소개해볼 예정입니다. 관심 있어 하실지 모르겠네요. 기사 몇 꼭지만 잡아주셔도 참 좋겠는데 말이죠 ㅎㅎ
오옷 논설위원이시라면 스팀잇을 주제로 칼럼을 쓸 수 있을 테고 ㅋㅋ 어떤 위원이신지 모르겠지만 (저와 달리) IT 쪽에 배경지식이 좀 있는 취재 기자에게 소개하는 것도 좋겠네요.
후자인 IT분야 기자분께 소개시켜 달라 하려구요. ㅋㅋ
이런 개**같은 *를 봤나. 나라 챙피하게 끝나고 진행자 보고 몰래 선물은 전달해도 된다. 그걸 꼭 티를 내야하나??? *신 같은 *들 내가 다 창피하다. ㅠㅠ 이런건 막 까발려주세요. 기사는 링크타고 페북 링크도 걸어두겠음
아오 시원합니다. ㅋㅋ 고맙습니다. 저희 매체는 잘 안읽혀서 이렇게 걸어주시면 큰 힘이 됩니다.
제 페북에 링크했습니다 ㅎㅎㅎ
아.. 좋은글인데 한편으로는 알고싶지않앗던 모습을 알게되서 가슴이 좀 답답해지네요. 잘보고 가요.
저도 순간 '차라리 비공개로 하지 그랬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많이 알고 그게 투표에 반영이 되다 보면 좀 더 나아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