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 때문에 잃어버릴 수 없어

in #kr6 years ago (edited)



또 4월이다. '잊지 않겠습니다' 라는 말, 내게는 진심이 아니어서 속으로도 되뇌지 못한다. 나는 잘 잊는 사람이다. 저 문장에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가방에 달려 있던 노란 리본도 어느 순간 거추장스러워서 모두 떼어 버렸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그 해에 나는 팽목항과 안산 분향소에서 짧게 봉사활동을 했고, 광화문 광장에서 직접 그린 그림을 들고 며칠간 1인 시위를 했었다. 광장에 머무르지 않고 횡단보도를 빠르게 지나치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시간이 너무 흐른 것일까. 억울한 이들은 그대로인데 내 감각은 무뎌질대로 무뎌졌다. 내 개인사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죄책감? 별로 없다. 난 그렇게 산다. 그러다가도 가끔, 잊었던 감정이 순식간에 복받쳐 올라오는 순간이 있다. 오래된 마음이 생생하게 작동하는 순간이 있다.

2주기 때였나. 유가족이 섞인 합창단이 광장에서 불렀던 <인간의 노래>는 두고두고 생각이 난다. '살아서 / 살아서 / 끝끝내 살아내어 / 나는 부르리 / 희망의 노래를 / 함께 부르자 / 인간의 노래' 가사를 들으며 나는 무너졌다. 유가족은 끝끝내 살아내어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었다. 인간의 노래라니, 제목도 어쩜. 돌아와서도 동영상을 수백번 다시 돌려봤다. 이보다 감동적인 합창은 들어본 적 없었고, 앞으로도 가능할 것 같지 않다. 그 무대 덕분에 조금 더 기억할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한번 더 들었다. 좋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런걸 미학적 '숭고' 라고 하는 걸까.



친구 결혼식 때문에 가지 못했던 5주기 추모공연을 어제 유튜브로 봤다. 이승환이 나왔다. 세심한 선곡이었다. '사랑해요 고마워요 / 지금껏 날 지켜준 사랑 / 행복해야 해요 / 아픔없는 곳에 / 영원히 함께여야 해요' 평소 셀 수도 없이 들었던 노래 <가족>이 이런 뉘앙스를 전달할 거라고는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다. 노래는 이어졌다. '세월이 가면 / 가슴이 터질듯한 /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해도 / 한없이 소중했던 사람이 있었음을 / 잊지 말고 기억해줘요' <세월이 가면> 의 '세월' 역시, 이전에는 생각치도 못했던 의미로 다가왔다. 분명 이 무대를 보았을 사월의 엄마들을 생각했다. 갑자기 나는 뭐라도 하고 싶었다. 며칠전 혼자 조용히 서명했던 청와대 청원 링크를 SNS에 퍼다 나르기 시작했다.

오늘은 세종대로 사거리 횡단보도를 빠르게 걷는 사람도 일년에 한 번은 광장을 기웃거리는 그 날이다. 광장에 잠깐 들러 애도를 표하고, 피아노학원을 갈 참이었다. 버스 안에서 이어폰을 끼고 플레이리스트를 새로 만들었다. 이승환의 <가만히 있으라>, 유희열의 <엄마의 바다>, 김목인의 <부력>, 권나무의 <이천십사년사월>을 반복해서 들었다. '정말 사랑했고 / 잊혀졌던 것에 노래를' ... 마음이 한껏 고조된 채로 광장에 들렀고 눈시울이 빨갛게 달아오른 사람을 봤다. 하루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서둘러 지하철을 타고 양평역으로 향했다. 블로그 이웃이기도 한 솔방울정원(한현주)님의 <기억교실> 사진 전시회를 오늘 꼭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사진은 아름다웠다. 고등학교 교실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아이들의 책상 위에는 삼라만상이 놓였고, 아침부터 밤까지의 노랗거나 파란 빛들이 묵묵한 풍경을 비추고 있었다. 비극이 놓인 자리가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는 것일까. 작가는 그 죄책감을 가지고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늦은 밤, 창문에 비친 교실을 찍은 사진에서는 반사되는 빛 때문에 수많은 별이 떠 있는 것 같았다. 태양, 별, 우주가 사진에 담겨 있었다. 작가가 단원고에서 직접 가져온 책상 위에 "4월이라도 기억할게" 라고 포스트잇을 써서 붙였다. <기억교실> 사진 이미지는 아마 오래토록 내 머릿속에 각인될 것 같다. 작가와 짧은 대화를 나누고 다시 광화문으로 돌아와 서점으로 향했다. 유가족의 육성기록이 담긴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샀다. 출간될 때부터 마음에 걸리는 책이었는데 오늘에서야 충동구매를 할 용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아마 당분간 읽지는 못할 것이다. 펼칠 엄두가 나려면 또 몇 년을 기다려야 할 지도 모르겠다.

무딘 내 감각을 숨쉬게 하는 것은 새로운 기사와 뉴스가 아니다. 다른 이들의 예술작품이다. 그들의 작품이 아니었다면 나는 2014년의 모든 감정을 진즉에 잃어버렸을 것이다. 예술가들은 그것을 절대 잃어버리지 못하게 만든다. 잊을만 하면 어디선가 나타난다. 쓰레기통을 뒤져서 다시 내 몸 안으로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그리고 결국엔 나를 작업하게 만든다. 나의 세월호 관련 작업은, 모두 그들에게 진 빚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