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in #poetry7 years ago (edited)

또렷이 선명한 그림자, 풍성해지고 짙어지는 녹음, 바람 한점없이 내리 쪼이는 12시 정오의 햇빛. 내 머리 위 직각으로 내리 쪼이는 강렬한 햇살이 땅을 뜨겁게 데우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반팔 반바지 차림에 아이스커피까지 들고 다니는데, 나는 아직 덥지가 않다. 얇은 긴소매 니트에 아직 바람이 있어 남방까지 걸치고 나왔는데 나에겐 딱 알맞다. 집안에서 좀 몸이 찼는지... 직각으로 내리 쪼이는 강한 햇살이 내 몸을 서서히 따뜻하게 데우는 느낌이 좋다. 마음같아선 맨발로 따뜻하게 데워진 길을 밟고 싶었지만, 마음만 가졌다.
왜 이런거에도 용기가 필요한 걸까..
왜 이런거에도 생각이 많아지는 걸까.

이번주 소화도 잘 안되고 컨디션이 좀 좋치가 않아서 오늘은 차로 몸을 달래며 쉬고 있다.
아침에 부드러운 대추차에 지금은 산책하고 와서 그윽하고 향긋한 생강차 한 잔.
역시 비우니 속이 편하다. 좋다.
속을 비우는 시간이 오랫만인 거 같다. 봄이 찾아오면서 입맛이 마구 마구 돌면서 계속 먹고, 넣고, 뭐 먹을까로 채워가고 있다가... 탈이 난 덕에 이렇게 비우는 시간을 가져본다.
오랫만에 좋다. 속을 비우는 것 뿐인데... 조용하고 고요한 시간이 찾아온 것처럼 마음이 풍요로워 진다. 명상과도 닮아 있는 시간있거 같다. 채우기 보단 비우고, 빠르게 서두르기 보단 천천히 하나씩, 머무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의 몸과 마음도 같이 비워지고 새 공기로 신선하게 채워지는 기분이다.

아직도 많이 나의 몸에 나의 마음의 소리와 컨디션에 둔하고 무감각했구나 싶다.
천천히, 차분히... 나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딱딱해진 가슴 가운데 부분과 보이지 않는 내 몸속 장기들의 컨디션, 나의 피부가 느끼는 보이지 않는 파장에 주의를 모아본다. 관심을 갖고.. .
너무나 빨리 지나가는 상황들
오랫동안 습관화 되어 빨리빨리 판단하고 건너띄고 대충 넘어가는 관계들
나 조차도 나의 마음이 어떤지, 나의 컨디션이나 상황도 모른채 무심하게 지나쳐온 시간들이
나를 눈멀게, 나를 아프게 만든 건 아닐까... 싶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잎파리들이 커지고 절기가 한 여름을 향해 달려가는 만큼 녹음도 짙어지고 푸르러 지는 가운데 오늘 산책하다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예쁜 빛깔의 잎파리들을 주워왔다.
속이 탈 난덕분에 이 시간의 소중함 속에, 지금의 자유로움 속으로, 지금 현재에 머무를 수 있는 축복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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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의 소리를 잘만 듣는다면 필요한 걸 잘 채울 수 있을텐데 말이죠. 비우라고 시간을 갖으라고 때마다 알려주는데 전 오만함으로 지나치곤 해요.
워시님처럼 다정하게 듣고 답해준다면 심신이 고루 무르익겠어요.

고맙습니다~ 잘 못하고 그르쳐서 저런 생각을 하는거 같아요^^ 그래도 비우고 쉬다가라고...탈이나거나 증상들을 보여주니 감사할 따름이에요.

잎사귀 사진 예술입니다. 가만히 들여다 보니 마음도 차분해 지네요, 님의 글처럼 말이죠. 그러게요 내몸과 마음이 들려주는 말을 너무 자주 급하게 지나쳐 버려요.
님의 글을 읽으니 차분하게 절 돌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원하는 일에 용기를 내야 겠다는 생각도 말이죠.

며칠 전에 햇살 좋은 날..용기내어 맨발로 산책을 했습니다. 이런거에 용기가 필요한게 아니라 그냥 하면 되지 하면서요^^ 저도 덕분에 제 사진을 다시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