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야기 4탄] 술집을 전전하는 북한 여성?


지난번 [남북문제] 북한의 패션으로 본 북한의 정책이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좋았다. 아마도 딱딱한 군사문제가 아니라 ‘패션’과 연관지어 글을 썼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인 “이제 만나러 갑니다”를 보면 탈북 미녀들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하나같이 곱고 이쁘다. 하지만 이들의 탈북과정을 들어보면 정말 끔찍하다.
어찌보면 오늘 다루려는 문제는 social-innovator와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탈북을 해 대한민국 국민이 된 ‘우리나라’ 여성 들이 겪는 문제에 대해 다룰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늘의 [남북문제]에서는 북한 여성들의 인권유린에 대해 써보려고한다.
참고로 @leemikyung님의 social-innovator는 사회문제에 대한 고민을 같이 나누고 그 문제의 해결 사례를 공유하고, 노력하려는 취지가 담겨있다.
이 짧은 문장으로 깊은 @leemikyung님의 뜻을 다 담지는 못하니 미경님의 포스팅을 하이퍼링크하며 본 글을 시작해보려한다.

social-innovator

그들에게 남한은 북한보다 더 나은 곳일까?


북한 여성들은 힘겹게 죽을 고비를 넘어가며 희망을 가득 품고 남한에 도달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남한은 북한보다 나은 곳일까? 남한의 낯선 문물은 이들에겐 매우 생소한 것이기에, 남한의 노련한 브로커들과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이들은 이 탈북여성들을 노리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북한출신 여성들은 이들에게 속아 넘어가는 수밖에 없던 것이다. 실제로 탈북 여성들의 30%는 남한에 정착 후 성매매를 권유받아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남한에 도달한 탈북 여성들은 탈북 당시 브로커에게 거액의 빚을 지기 때문에 당장 이를 갚기 위해 정착하자마자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이들 브로커들에게 건네줘야 하는 돈은 대부분 남한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정착 지원금, 혹은 그 이상의 금액이기 때문에 성매매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일부 탈북 여성들은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데리고 오기 위해 또다시 브로커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성매매에 뛰어들기도 한다. 실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남한에 도달한 이들은 그래도 사정을 봐줄만 하다. 남한에 도착하는 것을 실패하고 중국이나 베트남 등 각지에서 해외 브로커들과 현지인들에게 납치당하거나 인신매매를 당하는 일도 허다하다. 탈북자는 2017년 기준 2만3000여 명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중 80%는 여성이다. 탈북 루트가 대부분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많은 수의 탈북을 시도한, 그리고 시도하게 될 북한 여성들이 중국과 각지 국가들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1) 북한 여성의 인권 실태


탈북을 하게 된 북한 여성들에게 그 동기를 물어보면, 이들의 가장 큰 탈북 동기는 ‘배가 고파 먹고 살기 위해서(81.7%)’, ‘중국에서 일을 하면 돈을 잘 벌 수 있다고 해서(75.2%)’, ‘북조선에 있는 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해서(50.5%)’, ‘같이 탈북할 사람들이 있어서(37.1%)’, ‘중국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서(15.8%)’, ‘부모나 형제, 주변사람들의 권유에 의해(8.4%)’ 등의 순서로 나타났다.

위 순위 중 ‘배가 고파 먹고 살기 위해서(81.7%)’, ‘중국에서 일을 하면 돈을 잘 벌 수 있다고 해서(75.2%)’, ‘북조선에 있는 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해서(50.5%)’가 다른 항목들에 비해 압도적인 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배급제를 실시하고 있을 텐데 어째서 북한여성들은 먹고 살 방도를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나 먼 길을 떠나는 것일까. 이미 많이 알려졌다시피, 북한은 1990년대 중반 대홍수로 인하여 곡물 및 농작물생산이 악화되었고 1993년 곧 식량배급체계가 붕괴되었다.

배급체계의 붕괴와 함께 북한여성들은 기근, 영양실조, 질병, 더 나아가 배고픔에 굶어 죽는 경우가 발생했다. 이에 이들은 식량과 생존을 위해 스스로에 의존해야 했다. 기근의 영향은 출산율 감소와 사망률 증가에 나타났다. 1990년대 초반까지 여성 1000명당 20명의 출산율을 유지했으나 1998, 1999년부터 18,17로 감소했고 그 이후 20을 넘지 못한다.

이런 극심한 가난 속에서 힘없는 여성들은 생존권을 위협받아야만 했다. 이것은 배급체계에서 잘 드러나는데, 주부에 대한 배급 할당량은 하루에 300그램으로서 정규 노동자의 절반에 불과했고, 유치원 아동수준이었다고 한다. 고위직 정부 관료들이 전체 인구의 0.02%임에도 불구하고 700g의 배급을, 정규 노동자와 중노동자는 각각 600g, 800g을 받는 것을 봤을 때 매우 대조적이다. 이런 식으로 북한 당국은 법으로는 여성인권을 신장시키는 듯 보였으나, 실질적으로는 극심한 차별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북한에는 여성의 동등한 경제활동권이 <남녀평등권에 대한 법령>, <사회주의 노동법>에 법제화되어있다. 그러나 노동력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여성에게는 경공업, 사무직과 같은 남성 노동자에 비해 보다 쉬운 일이 분배되었다. 이는 남성과 여성간의 격차를 발생시켰고, 더욱이 경제위기가 심각해지고 생산 활동이 마비된 1990년대 이후로 단순노동자와 여성노동자들은 해고 1순위가 되었다. 때문에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성별분업 이데올로기에 따라 가정으로 돌려보내졌다.

하지만 북한 여성의 인권이 향상되지 못한 이유는 또 있다. 어찌 보면 더 근본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북한의 가부장적인 사회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여 진다. 북한의 가부장적인 질서는 근대국가의 탄생 이후 국가가 지니고 있는 가부장적 체제라는 한계와 북한이라는 유교식 사회주의 통제체제라는 특수한 상황이 함께 곁들여져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질서의 정치적인 환경과 식량난이라는 경제적인 상황은 사회소외계층으로 살아가는 북한 여성들의 삶을 더욱 고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은 사회소외계층일 뿐 아니라, 가족의 생계를 위한 역할의 부담도 짊어지게 되었다. 북한에서 남성들은 당에서 직업을 정해주기 때문에 이동에 제약이 있을 뿐 아니라 계속해서 감시를 받기 때문에 그나마 자유로운 것은 여성들이다. 따라서 이들이 생계를 위해 떠돌다가 브로커들에게 남한이나 중국의 소식을 들으면서 유혹을 받는 과정은 어찌 보면 당연해보이기까지 한다. 즉 미혼 여성이던지, 기혼 여성이던지 에 상관없이 이들은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의 가정을 돌보기 위해서 내몰리고 있는 판국이라고 할 수 있다.

(2) 탈북 과정에서 생기는 인권 유린


위 사진들을 보면 북한이탈주민들은 대부분 비슷한 루트를 통해서 남한으로 오게 된다. 그 루트는 대표적으로 브로커를 통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서 중국 선양, 연길에 도달하여 중국, 태국, 라오스를 거쳐 베트남이나 태국에서 한국 대사관을 통해 연락을 하고 한국으로 도달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이 시작되면서 탈북을 시도하는 루트 곳곳마다 전기 철조망을 설치하거나, 철조망에 독을 발라놓는 방식으로 탈북자들을 막는다고 한다.이런 과정을 통해서 가족들과 함께 탈북을 시도하는 이들은 가족을 잃고 뿔뿔이 흩어져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고 대부분 중독되거나 감전되어 죽거나 혹은 잡혀서 다시 북한 당국으로 끌려가게 된다.

이렇듯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중국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에도, 이들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중국에서의 강제송환과 북한에서의 처벌로 인하여 여러 가지 인권침해에 쉽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아무런 연고가 없이 국경을 넘은 북한여성들은 대부분 브로커에 의하여 중국남성에게 팔려가게 되는데, 처음에는 단순히 돈을 버는 줄 알았다가도 곧 자신이 팔려온 처지임을 알지만 강제 송환과 처벌의 두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개인을 따라가게 된다. 돈을 주고 산 여성이라는 생각에 상대 남성들은 자신이 얻게 된 북한 여성들이 달아날까봐 감금을 하기도 하고 폭행을 일삼기도 한다. 그녀들에 대한 일상적인 폭력과 위협은 중개인, 팔려간 상대남성, 심지어 같은 마을의 주변사람 등 다양한 대상들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심지어 북한 여성들은 마치 조선시대의 노예처럼 일일이 얼굴을 확인해 본 뒤, 브로커에게 얼마의 가격을 지불하고 사오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한 기사에서는 “나이나 얼굴 생김새에 따라서 다르지만 중국 현지에서 이야기 되는 것으로는 몇 백 원에서 몇 천원, 400원에서 한 2000~3000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우리나라 돈으로 몇 만원에서 몇 십만 원 수준인데 북한에서 나와 있는 탈북 여성들은 중국에서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 임자다 할 정도로 인신매매가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위와 같이 강제로 중국에 팔려온 여성들도 많지만 중국으로 가면 그나마 먹을 것이 있다는 생각으로 자진해서 중국 남성들에게 시집을 가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중국 남성들에겐 탈북 여성들을 조선 돼지라고 부르며,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 있고 자기 마음대로 인권 유린을 해도 무방하다고 보는, 그런 짐승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이들의 실태이다. 이렇게 시집온 여성들은 대부분 농촌지역으로 시집가게 되어 극심한 노동에 시달리거나 자녀 출산을 위한 성적 노리개로도 활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3) 끝나지 않은 고난, 남한 정착 과정에서 생기는 인권 유린


한국 사회는 북한 사람들에 대하여 적과 동포라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평소에는 가난한 나라에서 온 불쌍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한민족이라는 동정적인 태도를 취하다가도 북한과 연계하여 특정 사건, 예를 들면 천안함 사태나 연평도 포격사건 등 의 사건이 터지면 즉시 이들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다. 특히 탈북여성들은 탈북인과 여성이라는 이중적인 차별을 겪게 된다. 이들이 겪을 사회적 차별은 탈북인이라는 차별에 성적으로 더럽혀진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더해진 것이다.

이는 그동안 탈북여성들에 대한 중국이나 북한에서의 인권 침해 사실이 성적인 피해에 초점이 맞추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 북한여성에 대한 언론의 이미지는 이른바 ‘기쁨조’로 대변되는 고위급 권력자에게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이미지로, 그리고 식량난으로 탈북해서 중국의 이민족 남성들에게 성적으로 학대당하는 가련한 모습으로 고정되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선정적인 이미지는 북한이나 중국에 있는 여성들에게는 민족의 이름으로 동정의 대상이나, 한국 입국 이후에는 성적인 경험이 많은 타락한 여성으로 타자화 된다.

실제로 북한 출신 여성들에게 심층면담을 해보면

“팔려다닌게 무슨 자랑이라고... 다 어디서 마음에 안드는 남자들이라도 정착을 하지 제 부실해서 팔려다닌 거 가지고 그걸 뭐 떠들고 다니냐고... 무슨 동정 받는다고... 주변 사람들은 동정하는거 같아도 회사에서 사람들이 ‘너도 팔려다녔냐’고 말하면 난 솔직히 쪽팔린단 말이에요. 다 그런게 아닌데...”

이런 식으로 이들은 남한 국민들이 일종의 낙인을 찍으면서 원인 모를 차별을 받게 된다. 또한 이런 낙인 혹은 편견 때문에 남한 내에서 몇 가지 방식으로 인권을 유린당하게 되는데, 그 중 첫 번째가 바로 성적 유린이다.

서론에서 밝힌 바 있는 것처럼 탈북 여성의 30%는 남한 내에서 성매매를 권유 받아본 적이 있다고 대답한 만큼 이들은 성매매에 너무나도 쉽게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들은 성매매의 유혹에 못 이겨 유흥업계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정부는 북한이탈 주민에게 정착금으로 600만원, 그리고 주거지원금으로 1300만 원 등 한 사람당 약 2000만원을 준다. 하지만 북한에 남은 가족의 동반 탈북 비용이 계속 치솟는 데다, 이들이 탈북을 하는 과정에서 브로커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선 어떤 일이라도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변변한 일자리도 구하기 힘든 이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권 침해는 이런 성적 침해를 제외하고도, 이들이 한국에 정착하고 난 뒤에서도 나타난다. 바로 중국에서 인연을 맺은 중국남성과의 관계가 한국 정착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경우이다. 드물지만 일부 탈북여성들은 중국으로 팔려가게 되거나 납치 되서 만나게 된 중국남성과 진정한 사랑을 나누게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무능력하며 가부장적인 북한 남성들에 비해 중국의 한족들은 가부장적인 제도가 훨씬 덜하며, 무엇보다 이들은 적어도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중국 남성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이들 중 몇몇 중국 남성들은 자신의 탈북아내가 남한으로 갈 경우,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과 남한으로 가길 원한다고 희망하기 때문에 먼저 아내를 남한으로 보내고 자신도 살림을 정리하여 남한으로 가겠다고 기약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중국 남성과의 관계를 지속하려는 탈북여성들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처음 마주하게 되는 조사기관의 조사관이나 보호기관의 직원들에게서 중국남편을 데려오는 것에 대해 거부당하게 된다. 이는 탈북여성들 개개인의 삶을 깊이 이해하기 보다는 중국인을 한국에 들여놓기를 꺼려하는 민족주의 의식과 북한 여성을 일방적으로 한국인으로 적응하게 하려는 사고방식이 전제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결국 탈북여성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배우자를 선택할 권리를 배제당한 채 억지로 다른 한국남성을 만나거나 내면의 상처를 입고 짝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남성과 결혼한 북한여성들은 여러 가지 문화적 차이로 적응에 어려워하는 경우도 있지만, 북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시댁에서의 무시와 차별을 많이 경험한다고 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남한의 북한에 대한 상대적 우월감에 기초한 무시, 업신여김과 한국 사회에서의 북한 사람에 대한 오랜 적대감과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근본 없는 무시와 차별, 그리고 남한 내에서도 자리 잡고 있는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 가문 내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는 북한 여성들은 이중의 억압을 받게 된다.

매우 주관적인 @smartcome의 결론


그동안 탈북자 문제의 참상을 고발하는 용기 있는 피해자들의 증언과 다양한 경험담, 및 심층면담이 국내 언론에 알려지면서 국내 많은 사람들이 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많은 단체들이 탈북 여성들의 국내 적응과정을 돕기 위한 수많은 세미나와 연구, 자원봉사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남한 내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북한의 무력도발은 분명 우리가 언제나 신경을 쓰고, 경계를 해야 할 부분임에는 틀림없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의 주적은 북한 주민이 아닌 김씨 일가’임을 인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씨 일가와 그 소수 엘리트 집권층이 벌인 흉계로 얻은 분노가 탈북 주민에게 이어저서는 안된다. 이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하지 말고 조금 더 포용적인 자세를 취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결국 탈북여성 인권의 신장은 우리의 영토도 아닌 북한과 중국에 걸친 여러 다른 국가의 영토 내에서 신장되어야 한다는 지극히 어려운 한계점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탈북 여성의 인권유린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자세도 중요하지만, 해당 정부가 국가이익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명백한 한계를 인정하고 당사국들과 공동의 이익을 창출하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탈북여성은 가족들을 위해 용기를 내고 실천하는 여성들이며 자신들의 열악한 삶의 환경 속에서 자신과 타인을 동시에 배려하며 타협하고 희생적이며 설득하는 노력을 통해서 소통을 실천하는 주체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가족을 위해 탈북을 시도하고 새로운 가족을 만들면서도 자신의 안전과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삶의 공간을 옮겨 가면서 가족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이와 동시에 그녀들은 여러 가지 외부적 환경으로 인한 인권피해를 입을 상황에 있고 사적 공간에서 가부장적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적어도 이 포스팅을 읽는 사람은 탈북자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탈북여성 지원

social-innovator의 취지에 어울리게 탈북 여성을 지원하는 정책이나 기관, 방안에 대한 조금 더 심층적인 포스팅이 필요할 것 같다. 이는 조만간 조사를 통해 주가적으로 포스팅 하도록 하겠다.

Sort:  

I hope our country is strong. I feel sorry for the North Korean women.
It is sad that our country is still living as a superpower due to our fight against the enemy's defeat and lack of leadership. I want to pretend to be crazy and get nuclear.

앗! 한국분이셨구나 ㅎㅎ
우리나라가 강했으면 합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적패와의 싸움과 리더쉽 부족으로 강대국 눈치나 보면서 사는게 참으로 슬프네요. 미친척 하고 핵 개발을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나라는 왜 항상 우유부단 할까요? ㅜㅜ

적폐 덕분에 이나라가 이렇게 이리 저리 발에 채이는 동네북이 되었으니, 적폐를 다 치우고 나면 강한 나라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지금 핵개발을 미친척하고 하면, 아마...망할꺼에요. 상황이 그래요.
몰래해도 망하고, 대놓고 해도 망하고, 해놓고 발표해도 망하고.
지금은 핵이 최고 솔루션은 아닌거 같습니다 :(

한글로썼는데 한국인이죠ㅋㅋㅋㄲㄱㅋ

ㅋㅋㅋㅋㅋㅋㅋㅋ댓글이 더 재밋어요

예전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저보다 4살 위의 형이 있었는데
이분이 탈북을 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탈북의 과정에 대해서 참 상세히 들은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상상할수 있는 영화 속에서나 보고 듣던 얘기가
현실에서 제가 마주하는 사람의 경험을 통해서 들으면
전혀 남의 세상 얘기가 아닌 것으로 느껴집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동일한 루트였습니다.
중국을 거쳐, 태국을 거쳐서 ...
그렇게 한국에 와서 대학을 다니고 계시니
그분은 참 성공하신 것인데 ... 연락이 끊어졌네요 ㅠㅠ

인간이 약자를 괴롭히고 착취하는 것은
정말 없어질수 없는 것인지 안타깝습니다.
사실 초등학교의 왕따 역시 같은 맥락이겠지요.
인간의 본성 ...

탈북자에 대한 우리의 인식 변화 참 공감이 갑니다.
다른 내용들도 기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

아... ㅜㅜ
실제 탈출하신분을 아셨군요..
남북시리즈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예전 저희 회사에 일을 하신 탈북여성분이 있었는데, 잠깐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정말 상상이상이었습니다.
다행히 그분은 여기서 대학과정도 마치고 결혼해서 잘 정착 하셨구요. 생활력이 강하셔서, 지금도 잘 살고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글을 읽어보니, 그때 이야기 들었던게 생각이 나네요.

생각보다 탈북자분들과 만나신 스티미언들이 많으시네요..

2천만원이 어떻게보면 큰돈이고 작게 보일수도있는금액인데 과연 탈북해서 넘어오신분들이 진짜 잘지낼수있는 금액일까 생각해봅니다 . 보증금부터시작해서 월세 식비 생활비 들어가는데 충당할려면 일을구해야됩니다 근데 대부분사업자분들이 북한에서 넘어오신분들을 고용해줄지 의심되네요 중국인이 일당직으로 식당에서 일하는거는 많이봤는데 글쌔요 북한분들은 단한번도못본거같네요.. 아무튼 좋은글 잘보고갑니다.

정착이 쉽지않죠..
저도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보려구요

그래서 통일이 된다면 실제 완전히 합치는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것이라는 의견들이 많죠.... 후속글 기대합니다 조금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왔음 하네요

후속글 더 열심히 써야겠네요ㅋㅋㅋ

알면 알수록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같이 여겨집니다. 민족의 문제를 떠나서 인권의 문제를 우선해야 이 문제를 조금이라도 현실적으로 감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좀 더 실제적으로 북한여성의 현실을 알수 있게 된 것 같네요.

도우이 되셨다니 기쁩니다! 감사해요

좋은글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정말 힘들게 온 제2의 고향에서 더욱 힘들게 사는걸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인거 같습니다.

그렇죠..
오늘은 조금 무거운 주제였습니다..

슬픈 현실이네요.

넵..ㅜㅜ

어려운 이야기이네요
실질적 통일은 쉽지 않겠네요

우리세대에는 힘들것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