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포탈들] 숨겨진 인연들 열셋에 하나,
"뒤돌아서지 말아요. 그를 돌아가게 두지 말아요."
까똑하고 울린 건 마법사의 메시지였다. 리아는 너무 놀라서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녀는 지금 막 그에게서 뒤돌아서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는 제네바에서 만났다. 런던에서 출장을 온 그는 한눈에 리아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리아는 낭만적인 출장지에서 사랑에 빠져 버렸다. 짧은 대화였건만 운명이 자신을 찾아온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외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는 아내가 있는 남자였으니까.
여러 해가 지났으나 고백 한 번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이제까지 리아를 견고하고 세워 온 것은 세상의 관습, 전통과 질서였기 때문이다. 리아는 허튼 욕망의 심판자처럼, 망가진 세상 속 우월한 마음으로 자신의 생을 구성해 왔다. 물론 그녀에게는 건실한 남편이 있다. 아이도.
하지만 사랑은 국경을 넘을 뿐만 아니라 관습을 파괴한다. 누가 사랑을 이기랴. 논리적인 심판은 사랑의 열병 앞에 속수무책인 것을. 이전의 리아였다면 그건 감정에 불과하다고 회초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회초리의 강도만큼 억압이 자라나고 감정은 배가되는 것이다. 그리고 방아쇠를 놓쳐버린 사랑은 주체할 수가 없다. 미쳐버린 주유소 앞 풍선 인형처럼.
이 마음을 주체해 보려고 리아는 마법사를 찾았다. 사랑의 마법을 풀 수 있는 사람은 역시 마법사일 거라고 생각했다. 리아는 마법사에게 모든 걸 털어놓았다. 그러자 마법사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뭐가 문제죠?"
뭐가 문제냐구? 그래, 뭐가 문제지? 도대체 사랑이, 마음이, 뭐가 문제지?
"네? 저는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고. 그 사람도 역시..."
"그러니까 뭐가 문제냐구요?"
뭐가 문제냐니. 유부녀가 유부남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이게 문제가 아니라고?
"그게 뭐가 문젭니까? 사랑을 고백할 수 없는 당신의 마음이 문제지."
리아는 뒷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그렇다. 번민은 도덕과 윤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고민은 이 사실을 알게 될 남편과 가족들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고통은 말하지 못한 사랑. 고백할 수 없는 감정. 그것인 것이다.
"아직, 누구도 모르지 않습니까? 이 마법사 밖에는?"
"네, 그렇죠. 마법사님 외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니까 뭐가 문제냐구요. 정작 그에게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죠. 고백하지 못하겠는게 문제죠."
"그런데 고백을 하면.. 그리고 그 다음에는.. 남편은, 그의 아내는, 아이들은..."
"어허, 누가 받아준답니까? 하하하"
리아는 짝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랑이 외사랑인지, 불타는 합일을 이룰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고백을 하지 않았으니까.
리아는 용기를 내었다. 내일이면 그가 다시 제네바로 돌아갈 것이다. 그의 미팅 장소를 알아내어 먼발치에서 그가 사람들과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번민이 빗발쳤다. 그의 뒷모습 위로 남편과 가족들의 모습이 마구 겹쳐져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아. 나.. 나는 이거 감당 못해.'
리아는 돌아섰다. 포기했다. 물러섰다. 감정을 거슬러 역주행하려던 그때 까똑하고 메시지가 도착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