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포탈들] 숨겨진 인연들 열둘에 둘,
"하지만 마법사는 사라진 적이 없답니다. 언제나 사람들 속에 살고 있어요. 다만 마법사를 찾는 이들이 사라진 것이죠. 그래서 그들이 보이지 않는 것뿐이에요. 그래서 고생스러워졌죠. 그들이나 우리나 모두."
노 마스터는 마법사가 사라진 세상에서 스스로 마법사임을 드러내고, 21세기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인식시키느라 모진 고생을 감당한 마법사의 인생이 참으로 애처로웠다. 그는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수많은 전투를 감당했다. 그것은 몰염치와 그릇된 인식, 자기연민과 운명에 대한 배신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마법사는 소진되고 있었다.
"내일은 오려나. 시한이 거의 끝나가는데."
노 마법사는 기념품 샵을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바라보며 마법사의 출현을 기다렸다. 기념품 샵은 에스파냐의 옛수도 톨레도의 유명 관광지 주차장 인근에 차려졌다. 최근 포탈 여기저기 급증하는 순례자들의 수요를 맞추지 못해 검의 도시인 톨레도에서 직접 공수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생겨났던 탓이다. 그리고 마법사의 검은 기념품들 사이 수많은 모조품들 속에 숨겨져 있다. 그것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직관의 눈으로 주위를 기울이지 않으면 마법사의 검은 시덥지 않은 기념품 중 하나가 될 뿐이다.
"이것도 눈에 띄기 좋은 곳에 딱 배치하면 좀 좋아. 꼭 이렇게 숨겨 놓아야 되는 건가요?"
"왜? 실적이 신경쓰입니까? 마법사가 검을 찾아야 수습딱지도 떼고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어서요?"
"아, 기왕이면 그게 마법사도 좋고 우리도 좋죠. 꼭 뭐 인센티브 때문이 아니어도, 기왕 전달하려고 가져 온 건데 다시 들고 가면 기분이 좀 그렇지 않습니까?"
"아직 수습이시라 잘 모르시겠지만, 이 일 계속 하다보면 가져가거나 말거나 크게 관심이 없어집니다. 인생의 기회는 영원히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요."
마스터는 매번 검을 들고 다시 돌아가야 했던 옛시절을 생각했다. 그는 매번 오지 않거나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순례자들을 위해 정해진 그곳에 가야만 했다. 뚜벅뚜벅 걸어가 미션에 주어진 대로 그것을 펼쳐놓고 의식을 치룬다. 그리고 주인이 나타나든 말든, 시한이 이르면 모든 펼쳐 놓은 것을 거두고 다시 철수 하는 일을 반복하곤 했다. 매번 지루하고 매번 실망스러웠지만, 아주 가끔 제때에 나타난 순례자들을 만나면 마음이 뛸듯이 기뻤다. 자신의 검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인생을 지켜줄 검을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미션 수행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나는 마스터에게 그곳에 내가 언제 도착할지를 알았느냐고 물었다. 혹시 이미 한참 전부터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냐고. 그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자신은 전날 아침에 도착했다고, 또 내가 오든 말든 다음날 그곳을 떠날 예정이었다고.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물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_ <순례자>, 파울로 코엘료
브라질에서 온 한 순례자가 자신과의 만남을 이렇게 기록했다. 마스터는 자신의 소명을 잘 표현한 문장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이번에는 마법사에게 검을 전해주어야 한다.
"어! 마스터 저길 보세요. 저 사람, 마법사 아닙니까?"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기념품 샵에 쏟아져 들어왔다. 다른 상점보다 할인된 가격에 모두들 열광하며 기념품들을 챙기는 틈에, 마법사가 상점 입구를 지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냥 지나칠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마법사는 잠깐 두리번 거리다 발걸음을 돌리려는 듯 몸을 틀었다.
"앗, 그냥 가나? 아니 여긴데, 여기로 들어오면 되는데."
"쉿! 아무 말씀도 하시면 안되요. 눈짓도 하지 마셔요."
노 마스터가 수습 마스터에게 주의를 주었다. 검은 전적으로 마법사의 직관에 의해 발견되어야 한다. 그때 저만치 가던 마법사가 잠깐 멈추어서더니 팅~하고 동전을 던졌다. 그러더니 무엇이 나왔는지 뒤로 돌아 기념품 샵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마스터들은 반색을 하며 마법사 주위를 서성였다. 뭔가 힌트라도 주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그것은 마스터에게 금지되어 있으니까.
마법사의 검은 진열장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마법사의 검은 진열되어 있는 휘황찬란한 다른 검들과 달리 가죽으로 만든 검집에 꽂혀있는 단검이다. 탕자가 차고 있던 단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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