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포탈들] 숨겨진 인연들 열하나에 셋,
마법사는 수아에게 이 요새와 파괴된 공동체의 역사에 관해 말해주었다. 그리고 왜 자신이 떠나와야 했는지, 공동체를 파괴한 이에게 주어지는 형벌이 무엇인지에 대해. 수아는 늘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여지없이 파괴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해 고통스러워했다. 가족도, 조직도, 관계들도. 마법사에게 이 저주를 풀 방법을 물었을 때, 마법사는 감당할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그리고 오늘, 이 모든 스토리의 전말을 듣고 나자, 그 모든 일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저는 어떻게 이 저주에서 놓여날 수 있죠?"
"저주라니요. 역사의 상호작용이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작용이 있으니 반작용이 필요하겠죠. 그건 시리우스가 말해줄 겁니다. 자, 말해봐요. 시리우스."
마법사는 시리우스에게 수아가 감당해야 할 반작용에 대해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시리우스는 탐탁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부모를 화형대에서 불타 죽게 한 장본인이니까. 하지만 지난 생의 일이다. 이번 생에 그는 지난 생의 카르마를 이해하고 완성하기 위해 순례를 떠난 여행자들을 안내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럼에도 이 만남은 잔인하다.
"어쩔 수 없군요. 마음 같아서는..."
시리우스는 자신의 임무이니 어쩔 수 없다며 길게 한숨을 쉬고는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탁을 받은 무녀처럼 맡겨진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버려진 아이들은 거두는 어머니를 찾는 것입니다. 당신은 생명을 불태웠으니, 생명을 잉태해야 합니다.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아이들이 당신의 태에서 세상을 보게 될 겁니다.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당신도, 아이도, 아버지가 누군지 알려 해선 안 됩니다. 원죄 없는 잉태가 당신의 태에 축복을 내리시길. 그리고 억울하고 고귀한 죽음들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잉태의 과업을 완성하시길..."
시리우스의 입에서 신탁이 흘러나왔다. 수아에게 주어진 사명, 반작용은 잉태하는 일이었다. 불에 타 순교한 이들의 영혼이 자신의 양수를 통해 세상에 돌아오는 일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시리우스의 말이 점점 알아들을 수 없는 개소리로 바뀌어가자 수아 역시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수백 명의 버려진 아이들이 자신의 태로 몰려드는 환상을 보았다. 아이들은 울고 있었다. 그리고 수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수아는 시리우스의 눈에서 보았던 불타는 순교자들이 누구도 두려워하거나 원망스러워하지 않으며, 자신의 아이들을 수아에게 건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수아에게 죄책감을 갖지 말라고 말했다. 화형대로 걸어 들어간 것은 신념을 지키려는 자신들의 선택이며, 그리스도의 성배를 지키려는 위대한 과업의 완수이지, 명령을 따르는 장수의 책임이 아니라고 수아를 안심시켜 주었다. 수아는 눈물지으며 순교자의 아이들을 하나하나 받아 안았다. 수아는 그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나는 나의 카르마를 기꺼이 감당하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수아와 아이들은 거대한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파도와 같은 양수 속에서 수아와 아이들은 춤을 추듯 헤엄을 쳤다. 돌고래를 타고 배웅을 나온 순교자들은 이들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터널 끝에 다다르자 엄청난 빛이 쏟아지며 시야가 환해졌다. 눈을 뜬 수아는 마르세유의 한 낡은 게스트 하우스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의 배가 남산처럼 불러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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