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포탈들] 숨겨진 인연들 열다섯에 둘.
"그러니까요. 유리구슬을 하나씩 깨뜨리고 대신 외다리 병정의 손을 잡으면 돼요. 그들이 대신 균형추 역할을 해줄 테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춤을 출 줄 모르잖아요. 손을 잡았다 넘어지면 어떡해요?"
"그럼 넘어져야죠. 그리고 다시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해야죠."
유리구슬을 깨지 않으면 누구도 발레인형의 손을 잡을 수 없다. 회전하는 구슬은 검보다 날카롭고, 내리치는 망치보다 강력하기 때문이다. 연약한 외다리 병정들이 잘못 다가섰다간 몸이 부서져 나갈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함부로 다가서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지켜만 보고 있다. 몇몇은 일어나 혼자 돌아보려다 자꾸 넘어진다. 발레인형은 언제까지라도 혼자 계속 춤을 출 수 있고 오르가슴 속에 희열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혼자 추는 춤은 황홀하겠지만 함께 추는 춤은 세상을 춤추게 할 겁니다."
마법사는 고민하는 발레인형에게 동전을 던져 주며 말했다.
"내기를 해 봐요. 계속 혼자 춤추며 살아갈지, 세상을 춤추게 할지. 물론 세상을 변화시키는 꿈 따위는 꾸지 않아도 좋아요. 하지만 외로운 외다리 병정들이 자꾸 늘어나면 당신의 회전반경도 점점 좁아질 거예요. 그러나 모두 함께 춤을 추게 되면 세상이 온통 춤판이 되겠죠. 오르가슴, 환희로 가득한 세상 말이에요."
말을 마치자마자 마법사는 갑자기 일어나 미친별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자 까만 밤하늘 가득 뿌려진 별들이 모두 제각기 미친 듯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법사의 미친별 춤에 휘말린 발레인형은 정신이 우주 끝까지 드높아져 온 우주에 가득한 별들의 춤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 외로움과 괴로움이 모두 춤으로 승화되고 있었다. 그 광경이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운지 발레인형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외다리 병정들의 영혼이 모두 달려 나와 발레인형의 손을 잡고 거대한 원을 이루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주는, 세계는, 끝없는 파노라마로 무한히 뻗어나가고 있었다. 하나의 점에서 폭발하여 무수한 개체로 뿜어져 나온 별들이 사람이 되고, 동물이 되고, 나무가 되고, 바위가 되어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춤추는 세계, 그것이 영원한 현재임을 발레인형은 목격했다. 그리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영혼들이 외다리 병정에 깃들어 발레인형의 내미는 손을 기다리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환상에서 깨어난 발레인형은 마법사가 던져준 동전을 다시 마법사게 던지며 이렇게 외쳤다.
"마법사님, 동전 따위는 필요 없어요. 혼자 추는 춤은 지겹다구요! 자, 제가 어떻게 하는지 보셔요."
발레인형은 휙! 하고 그대로 뒤돌아, 외다리 병정들을 향해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9개의 유리구슬이 창창창 청명한 소리를 내며 연쇄적으로 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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