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독서중] 고전 읽기의 재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in #zzan5 day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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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재혼을 하는 이유는 첫남편을 지독히 싫어했기 때문이고,
남자가 재혼을 하는 건 첫마누라를 열렬히 사랑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운을 시험하고 남자들은 운을 내팽개친다.' (p204)

남자든 여자든 재혼은 제정신이 아니라는 뜻 아닌가.
이런 독설가를 봤나.

오스카 와일드,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장했던 유미주의자. 그의 책이 이십 년 넘게 책장 저쪽 구석에서 먼지를 쓰고 낡아가고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나는 그 책을 계속 외면하다가 도서관에서 꺼내 들었다. 사실 내 책은 세로 본에 그것도 중간이 나뉘어 눈 침침한 사람에겐 불편하다.

이제야 제대로 읽어보는 오스카 와일드. 처음엔 심드렁 했으나 갈수록 흡인력이 있다. 특히 작중 인물의 입으로 전달되는 냉소주의에 웃는다.

우선 줄거리는 이렇다.
도리언 그레이라는 이십살이 갓 넘은 청년이 영국의 사교계에 입성했다. 너무나 화사한 외모라 사람들은 천사가 아닌가, 그리스 조각상이 걸어 다닌다고 했다.
이 청년을 모델로 초상화를 그린 베질 홀워드는 이 사람 아니면 더 이상 작품을 그릴 수가 없을 정도가 되어 그를 숭배하기까지 이른다.

화가 옆에서 세상을 조롱하는 귀족이 있었으니 헨리 워튼 경이다. 그는 베질의 작업실에 놀러 왔다가 순수하고 잘 생긴 도리언의 모습을 보고 그를 자기 생각에 맞게 조정하려는 야심을 품는다.
헨리는 이상한 논리와 이상한 책으로 도리언의 영혼을 물들인다. 이때 도리언은 어린 여배우에게 반해 있었는데 그는 무작정 결혼하겠다고 설쳤다.
그러나 시빌 베인은 이제 연기는 필요없다, 진짜 사랑을 만났으니 라고 하면서 제대로 연기하지 않았고 도리언과 화가, 귀족의 실망을 사고 말았다. 환상이 깨진 도리언은 냉정히 돌아섰고 소녀는 자살하고 만다.
자책도 잠시 그는 귀족들과 교류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교 생활을 즐긴다.
그런데 베질이 준 자신의 자화상을 들여다 본 도리언 그레이는 너무나 놀라고 만다. 자신의 외모는 하나도 변한 게 없는데 그림 속의 자신이 점점 추해지는 것이다. 그가 아편 소굴이나 사창가를 들락거리고 올 때마다 그의 초상화는 점점 흉하고 잔인하게 변한다. 결정적으로 화가 베질이 자살한 여배우에 대해 말하며 감정을 건드리자 그 마져 죽이고 만다. 한 수 더 떠서 화가의 시체를 한 때 절친이었던 친구에게 모종의 압력을 행사해 처리하도록 떠넘긴다.
그러다 시빌 베인의 남동생이 자신에게 복수하고자 뒤쫓는 걸 알고 잠시 두려움에 떨기도 하지만 그의 악행과 이중성은 갈수록 교묘해졌고 외모는 완벽하게 젊음과 아름다움을 지키고 있었다.
도리언은 자신의 양심 측정 기구에 같은 저 초상화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초상화를 찢어 버리기로 한다.
깊은 밤, 칼로, 한 때는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모습이었으나 이제는 괴물이 들어 서 있는 초상화를 찢는 순간 비명이 들리고 사람들이 그 방문을 열었을 때 늙은 괴물같은 남자가 가슴에 칼이 박혀 아름다운 도리언의 초상화 밑에 쓰러져 숨져 있었다.

이상한 이야기긴 하지만 실지로 비슷한 사건이 당시에 있었다고 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1854년 더블린에서 의사이자 학자였던 아버지, 시인이자 신화 연구가였던 어머니 사이에 둘째로 태어났다.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 옥스퍼드 모들린 칼리지를 졸업했고 재학중에 시를 발표하여 명성을 얻었다.
그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존 러스킨과 월터 페이터라고 한다. 1884년 결혼하여 두 자녀를 낳고 <행복한 왕자>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그러나 1891년 앨프레드 더글러스 경과 동성애가 사건화 되어 고소당했고 2년간 중노동형에 처해졌다. 이때 더글러스에게 쓴 편지가 <옥중기>다.
빈털털이가 되어 미국으로 강연을 떠난 그를 세관이 제지하자 "나는 내 천부적 재능밖에는 신고할 게 없소!"라고 했다는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억누를 수 없는 쾌할함의 소유자'라는 명성답게 재기 발랄했던 그는 그러나 1900년 급성 늑막염으로 46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고 말았다.

'도리언 그레이는 내가 되고 싶었던 존재이고
헨리 워튼 경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며
바질 홀워드는 실제 나의 모습이다.'(p443)

저자가 밝힌 작자 후기다. 겉으로는 도덕적이고 신앙심으로 포장한 빅토리아 시대에 이 작품이 얼마나 풍파를 일으켰을지 짐작이 되기도 한다.

고전은............................ 아름답다.

오스카 와일드 / 한명남 역 / 동서문화사 / 2012(원 1891) /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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