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번의 여름] 20. 부유 속의 다짐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last year

스물두 번의 여름

20. 부유 속의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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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을 살아라. 당신의 삶이 당신을 살게 놓아두지 말아라. 옳거나 혹은 그르거나, 고통이거나 혹은 행복이거나, 당신 자신으로 있으라. 그러나 이것은 오직 꿈속에서만 가능하다. 현실 인간들의 삶은 당신에게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타인들의 몫이다. 그러므로 삶을 꿈으로 대치하라. 오직 완벽한 꿈꾸기만을 염두에 두라.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모든 일은 당신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일들이 당신을 결정한다. 삶을 살고 있는 것은 당신이 아니다. 삶이 당신을 살고 있다.
-불안의 글, 페르난두 페소아, 43p




요새 나의 현재와 과거는 뒤엉켜 알아볼 수가 없다. 어떤 게 현재이고, 어떤 게 과거인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미래를 모른다는 것뿐이다.

9월 알레를 만나러 가기 전날 밤 타로를 보았다. 그 여행은 아무 고민 없이 가볍게 즐기다 오면 되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보낼 거라 말했다. 카드를 섞다가 무심결에 뒤집어진 카드는 불완전한 양자택일의 순간을 맞이할 것이고, 아무리 머리를 쓰고 생각을 해 봤자 결과를 알 수 없고 나는 그중 무엇이든 선택해야만 한다고 했다. 그리고 매일 밤 나는 울게 될 것이며 그 여행이 크나큰 비극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너무 깜짝 놀라 다시 한번 카드를 뽑았는데 그래도 카드는 인내심을 지니고 이번 여행은 무조건 가야 한다고, 결국엔 좋은 일이 될 거라고 말했다. 나는 그저 내 마음이 불안해서 그런 카드가 나온 거라고 나를 위로했었다.


운명을 기다리는 사람에겐 8년마다 갈림길이 주어지는 것만 같다. 한 번 선택하면 당분간은 쭉 그 길을 군말 없이 따라가야 하는 책임이 주어진다. 그는 내게 왜 선택해 놓고 자꾸 가보지 않은 길을 미련에 가득 차 돌아보는 건지 물었고,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호기심은 있어도 미련은 없었고, 딱히 뒤돌아본 적도 후회한 적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포털이 열리고 갈림길이 나타나자마자 알 수 있었다. 내가 가보지 않은 그 길을 한 번도 놓질 못했고, 영원히 놓지 못할 거란 사실을 말이다. 아니 어쩌면 그 길을 끝까지 가기 위해서 우회로를 택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것도 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세계를 구하는 일도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 그저 내 안의 틀을 깨고 자유나 꿈을 은밀히 쟁취하는 것뿐인데.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치고 걱정해도 꿋꿋이 내 갈 길을 가고 마는 그런 악당 같은 사건을 거창한 혁명이라 칭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혁명이지. 내게는 혁명이야. 그게 제일 두려운 거잖아. 이기적이고 개인주의 끝판왕 주제에 가장 중요한 순간엔 언제나 타인의 입장을 헤아렸다. 차마 저버릴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건 여전히 너무나 두려운 일이다.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미련하게.


결행할 의지가 부족하고 두려워 미적거리는 것과 당장 성급하게 행동하고 싶은데도 적절한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건 무엇일까? 운명의 결단과 과거에 얽매인 충동적인 실수 이걸 결정하는 건 누구일까? 굳건한 용기와 어리석은 치기, 무엇이 맞는지 누가 알려줄 수 있을까?

아무도, 아무도, 다른 이의 방책은 다른 이의 삶에 적용될 때 최적화된 방책일 뿐이야. 나는 결국 나만의 길을 가야 하고, 지난 8년간 그것을 제대로 구분하기 위해 힘써왔다. 그것을 믿어야만 한다. 이제 와 다시 자신을 의심한다면 나아갈 수 없다.




기다리는 건 독일까? 득일까? 무언가 결연하기로 맹세한 이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 흐려질까? 때때로 기다리고 싶지 않다. 하지만 봤어. 내 인생이 패턴대로 반복되고 있고 이 삶의 통속 드라마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게 프로그램에 맞추어 진행된다. 거기 몰입해서 감정적으로 휩쓸릴 때마다 나는 그저 내가 어리석게 느껴지고 두려움이 밀려오고 죄책감이 들어. 그럼, 배려를 명목으로 난 다시 굴복하고 싶어진다. 자신감에 가득 차서 무엇을 할지 말할 때마다 날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날 걱정하거나 비난하거나 동정할 것이다. 그건 어느 때보다 너무나 가슴 아프고 힘들 것이다.

타인의 결정이나 마음으로 선택을 내릴 수는 없다. 아무리 나와 가깝고 세계를 공유하는 사이라고 해도 결국 이건 나의 문제이다. 나만 생각해야 할 시간이 왔고, 다른 때 그건 방종이겠지만 지금의 나에겐 용기이다. 내가 고려할 유일한 건 마음과 몸과 영혼의 내밀하고 고요한 소리이다. 그게 내가 진짜 원하는 길, 내가 가야 할 길 위로 나를 안내해 줄 테니까. 그거 하려고 이번 생에 여기서 태어나기로 결정했다.

타인의 감정과 생각, 입장과 관계, 그건 감사하고 아름답지만, 그것에 의지하거나 선택의 근거로 삼을 수는 없어. 네가 제일 잘 알잖아. 더 많은 증거를 원한다고 보여줄 리 없다. 그의 말대로 차고 넘치게 증명되었다. 필요한 정보는 전부 지금 내게 주어졌고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이다.

물론 이번에는 차분하고 평화롭게 기다리겠지만, 내게 필요한 건 타인의 확신도 지지도 아니야. 깨지지 않을 만큼 의연하고 차분하며 강한 마음이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믿음과 드넓은 사랑이다. 아프고 힘겹고 예측 불가능한 어떤 사건이 눈앞에서 벌어지며 나를 뒤흔들고 주저앉히더라도 동요하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얼마든지 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초인적인 내면의 단단함이 필요하다. 그러니 서두르지 마.

절실하고 성실히 살아갈 때 우주와 운명이 한 번이라도 날 저버린 적 있었나? 약해 빠졌을 때 다 무너져서 깨져버리지만 결국에 지혜를 배우고 다음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번에 하지 못한다면, 다음번엔 몇 배로 힘들 거고,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그러니 강해지자. 몸도 마음도(2022.10.04)




​2023.12.12 by 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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