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100] 진리의 희미한 모습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6 month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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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D. 우스펜스키, <구루지예프의 길> 중



종일 만나는 사람은 젠젠과 옆집에 사는 친구네 엄마뿐이고, 밥 먹을 때 빼고는 대화도 거의 하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싶었는데, 나는 워낙 혼자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고 또 잘하기 때문에 이제는 이렇게 몇 달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이런 상태에 몹시 목말라 있기도 했다. 적절한 때에 비현실적이다 싶을 정도로 완벽한 공간에서 고독을 완성할 기회를 얻었으니 엄청난 운이다. 복이다. 그리고 내게는 이런 복을 누릴 자격이 충분히 있다. 여기 돌핀 호텔은, 벼랑 끝에서 뛰어내려 겨우 착지한 곳이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망설였다면 이 기회는 사라졌을 것이다. 어째서 내게 오는 선택지는 언제나 All or nothing, Stay or forever go일까. 어째서 중간이 없을까. 왜긴 왜야. 온갖 지루한 것들이 중간에 다 모여있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런 건 내 성에 차지 않기 때문이지. 나를 살지 않으면 그 즉시 삶이 지루해진다.

여기 돌핀 호텔 역시 거쳐 가는 곳이 될까? 손님만 바글거리다 모두 떠나고 나면 혼자 남게 될까? 내가 지은 집에서 동지들과 함께 살고 싶다. 그 집이 당장 무너진다고 해도 도망가지 않을 친구들과 끝까지 그곳을 지키고 싶다. 무너지면 그 자리에 또 지으면 된다. 그러려면 자리를 지켜야지. 비켜주지 말아야지. 이상하고도 알려지지 않은 곳에 계속 깃발 꽂아야지. 그게 나의 목적과 희망이다. 이를 성취할 나의 의향과 수단은 당신이다. 여길 지키려면 당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