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100] The Last Day
계획했던 일정이 흐트러져 급하게 하루 일찍 돌핀 호텔로 돌아오게 되었다. 울레에 함께 가기로 한 친구 오짤에게 지금 당장, 30분 뒤 출발하자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그에게도 사정이 있었으니 그를 탓할 수는 없었다. 오짤과 함께 가지 않으면 택시를 타고 가야 하고, 택시비는 5만 원이 넘는다. 어떻게든 빨리 채비하고 그를 따라가는 것이 맞았으나, 가기 전에 레에서 식료품 쇼핑도 해야 했고, 레 집 가족들에게 울레 다녀온다는 말도 해야 했고, 짐도 싸야 했고, 레 집에 있는 초모 짐들도 챙겨야 했고, 친구네 한식당 주방장에게 간장 치킨과 연근조림 레시피도 알려줘야 했고, 아무튼 할 일이 많았다. 그걸 다 해내기에 30분이라는 시간은 턱 없이 부족했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당장 떠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니 일단 먼저 가거라, 오짤에게 전했다. 좀 당황하긴 했지만, 고민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그리고 몇 분 뒤 다시 오짤에게 연락이 왔다. 택시비가 너무 아까우니 할 일들을 다 하고 같이 출발하자, 늦게 출발해도 상관없다, 기다리겠다, 테이크 유얼 타임. 레가 너무 시끄럽고 복잡해서 하루라도 빨리 돌핀 호텔로 돌아오고 싶었고, 기다리겠다는 오짤의 배려는 무척 고마운 것이었지만, 순간 짜증이 확 밀려왔다. 이미 결정을 내리고 바톤을 넘겼는데,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내 차례가 된 것이 싫었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서둘러 남은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 싫었다. 내린 결정을 또 번복해야 하는 것이 특히 싫었다. 상황 자체에 짜증이 나다가, 맞춰 놓은 퍼즐 판에 가볍게 핑거스냅을 날린 친구들을 원망하다가, 마지막에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나에게로 모든 나쁜 감정이 향했고, 그러자 눈물이 터졌다.
매사에 '마음의 준비' 따위가 필요한(게다가 결정의 내용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 융통성 부족한 나의 성향은 늘 날 힘들게 한다. 짜증이 생겨나는 건 내 의지가 아니고, 일단 생겨난 감정은 여느 때처럼 두고 보다가 처리하면 되는데, 요 며칠은 나의 감정에 남의 감정까지 더해져 격정의 파도에 휩쓸려 다니느라 피곤했기 때문인지 그게 잘 안됐다.
돌핀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각종 치트 키를 써가며 정성껏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닳은 마음을 채우고 있다. 이걸 해야 뜻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고, 몸을 움직여야 비로소 그 결과가 현실에 드러난다. 현실 창조라는 건 비기나 마법 같은 게 아니고, 지극히 논리적인 존재 방식이다. 너무 당연해서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다.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고, 또 그렇게 살고 있다. 알고 있었다는 걸 아는 것, 그렇게 살아왔다는 걸 아는 것, 마지막 날에 남은 숙제가 있다면 그게 다가 아닐지. 그럼 후회도 아쉬움도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