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미원조전쟁사 14-6 제3차 전역을 위한 팽덕회의 신중한 계획
모택동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제3차 전역을 정비없이 계속하게 되었으나 팽덕회는 매우 신중하게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모택동에게 밝혔다.
당시 예하부대는 신속한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다. 팽덕회는 이런 움직임을 눌러야 했다.
12월 19일 팽덕회는 신중한 작전의 필요성에 대한 전문을 모택동에게 보낸다
“내 관점에서 볼 때, 조선전쟁은 상당히 장기적이며 어려운 전쟁이 될 수 있다. 적군은 공격에서 방어로 전환하였고, 전선은 축소되고 짧아졌으며, 병력은 집중되어 있고, 방어전선은 협소하여, 자연히 종심이 강화되었고 합동작전에 유리하게 되었다.
미군과 남조선군의 사기는 비록 전보다 저하되었으나, 아직도 260,000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볼 때, 적군이 이 시점에서 조선을 포기하게 되면 제국주의에게는 매우 불리할 것이기에, 영국 프랑스도 미국이 조선을 포기하지 말것을 요구하고 있다.
적은 다시금 한 두번의 패배를 겪더라도 또 다시금 2-3개 사단이 섬멸당하더라도 아마 몇개의 교두보 진지(부산, 인천, 군산)까지 물러나면서 방어할 것이며 결코 조선에서 철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아군은 현재 신중한 공격을 취해야 한다”(81)
이런 판단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작전구상을 모택동에게 건의했다.
“의외의 실수를 피하기 위해서, 장차 4개군(50군, 66군은 양익에서 적군을 견제)을 집중하여 우선 남조선 제1사단을 섬멸하고 후에 계속해서 기회를 보아 남조선 제6사단을 공격한다. 만약 이러한 전역의 발전이 순조로울 경우에는 다시 춘천의 남조선 3군단을 공격하며, 만약 순조롭지 못하면 적당한 시기에 병력을 수습한다. 38선을 통제하는 여부는 반드시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을 보아 그때 다시 결정을 한다.”(81)
팽덕회의 건의에 대해 모택동은 12월 21일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냈다.
“적 정세에 대한 당신의 예측은 정확하다. 반드시 장기계획을 세워야 하고 신속하게 승리를 쟁취하려는 관점은 매우 해로운 것이다.”
“현재 미 영국군은 서울지역에 집중되어 있어서 공격하기 불리하며, 따라서 우리는 남조선 군대를 먼저 공격하여야 한다. 결론적으로 강조한다면 우리가 남조선 군대 대부분을 섬멸시킬 수 있다면 미군은 고립될 것이고, 조선에 장기간 주둔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럴 때 다시 미군 몇개 사단을 섬멸시키면, 조선문제는 매우 순조롭게 해결 될 것이다”
전쟁이 장기화 될 것이며 신중한 작전이 요구되며 작전의 주요 대상이 국군이라는 점에서 모택동과 팽덕회는 기본적으로 인식을 같이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택동은 전쟁을 신속하게 종결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택동의 작전에 대한 관여는 매우 구체적이다. 이런 구체적인 작전 개입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는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2단계 작전에서 휴식을 가져야 한다는 팽덕회의 주장을 물리치고 이어서 곧바로 제3차 전역을 수행하게 한 것은 분명 부정적이었다.
모택동이 작전에 세부적인 지침을 내렸지만 그것이 현지에서의 작전수행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모택동의 지침과 그 이후 팽덕회의 작전지침 그리고 그 이후의 작전경과를 하나씩 비교해나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