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언서란?

in Avle 종교 철학 인문학4 month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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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 헤세의 케리컬쳐라고 한다. 스스로가 그린 것인지 친구 화가가 그린 것인지 확실치 않다. 헤세의 글을 읽다보면 그 글을 쓸 당시의 나이와 상황을 고려하게 된다. 그의 연보가 아주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노년의 글이 좋다. 60대 이전의 글은 영성적으로 모가 난 인텔리 냄새가 남아 있지만 그 이후의 글은 솔직 담백하면서 익살스럽고 넉넉한 성품의 마법사로 변해간 것 같다.

69세에 일본의 한 젊은이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종교적 그루, 롤 모델의 모습을 매체를 통해 접하면서 마음속에 아름답게 우상화 되었다가 직접 경험하면서 그 사람의 괴리된 모습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증오하기도 한다. 그 전에 그 사람의 업적이 가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꼭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우상화된 콘텐츠는 나에게 딸린 숙제이고 소관일 뿐이다.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역사 속 성인들, 예수, 공자, 석가 등도 어쩌면 직접 대면했을 때 똑같은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당신이 깨달음이나 각성을 얻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작가는 결코 빛 자체이거나 횃불을 든 사람이 아닙니다. 작가는 기껏해야 독자에게 빛을 통과시켜 주는 창문일 뿐입니다. 그의 가치는 영웅 정신이나 고귀한 의도 혹은 이상적인 계획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의 가치는 단지 그가 창문이라는 점, 곧 빛을 방해하거나 차단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작가가 아주 고귀한 사람이 되거나 인류의 은인이 되려는 열망을 지니고 있다면 바로 이러한 열망 때문에 그가 타락하거나 빛이 통과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를 이끄는 힘은 거만함도, 겸손해지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도 아닙니다. 그 힘은 바로 오직 빛에 대한 사랑과 현실에 대해 열려 있는 자세와 참된 것이 자신을 투과하도록 만드는 능력입니다.
 
작가는 빛을 믿어야 하며 명백한 경험을 통해 빛에 대해 알아야 하고 빛을 향해 가능한 항상 그리고 활짝 열려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빛의 전달자나 혹은 빛 자체로 간주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조그만 창문은 곧 닫힐 것이며, 빛은 결코 우리에게 종속되어 있지 않기에 다른 곳으로 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패전국의 젊은 벗에게, 1947년

인플루언서의 좋은 영향력은 이제 내 몫일 뿐이다. 미덕은 가식이 없다. 다만 미덕과 사람을 동일시 하기때문에 오류가 생긴다. 다만 미덕과 사람을 동일시 하기때문에 오류가 생긴다.


헤세의 마음을 엿보다


시작하며 | 헤세의 연금술 | 뻐꾸기 소리는 배신하지 않는다. | 인내심 놀이 | 노인의 향기 | 50세 헤세의 유머 | 헤세가 죽기 전 날 밤 썼던 시 | 바람 결의 감촉 | 다시 시작하는 가을 몸맞이 | 내몸 아닌 내몸 같은 | 색채보다 감촉 | 닮은 꼴의 헤세와 융 | 방외 화가 두 사람의 풍경화 | 헤세가 사랑한 음악 1 | 헤세 정신의 곳간 | 요즈음 젊은 것들은...과 변화에 발맞추기 | 하리 할러의 꿈을 분석하며 (황야의 이리1) | 헤세의 아니마(황야의 이리2) | 왜 사냐면 웃어야지요(황야의 이리3) | 융의 분석심리학 적용 (황야의 이리4) | 융의 분석심리학 적용 (황야의 이리4) | 융의 분석심리학 적용 (황야의 이리4) | 괴로움과 번뇌속의 위안 | 기억의 가치 | 우주는 조바심에 가득차 있다 | 죽음에 관한 단상 | 가면 살이 | 백일홍 쇠퇴기 | 우주는 조바심에 가득차 있다2 | 인욕 바라밀과 쾌락의 줄다리기 | 죽음과 탄생 즐기기 | 부드러운 오기 | 아름다운 이기주의 | 잡생각의 미학과 예술 | 노인이 되어가는 | 노년의 덕목 | 유리알 유희(Das Glasperlenspiel) | 예배당이 있는 곳 | 인플루언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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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다 실망하고 반대로 돌아서지요. 사람 마음이 옹졸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