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불 과정에 발생한 불필요한 소요

in #kr-diary9 months ago

 나는 식당에서 주문하지 않은 메뉴를 받게 되더라도 언급은 하되,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내가 주문하지 않은 메뉴라고 내가 먹을 수 없거나, 정말 먹고 싶지 않은 메뉴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거기다가 교환이나 환불을 요청하는 건 자원의 낭비이고, 불필요한 감정적 소요까지 생긴다. 내가 겪는 불편은 아주 작거나 받아들이기에 따라 아주 없을 수도 있지만 상대에게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 상대는 한 명이 아니라 내가 잘못된 메뉴를 받기까지 거쳐간 모든 사람이며, 그 중 특별히 더 큰 고통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른 모든 소비에서도 비슷하다. 내가 감당할 수 있다면 감당하면 그만인데, 그 과정에 거친 모든 사람에게 감정적, 재정적 소요를 주고 싶지 않다. 공리주의자는 아니지만 사회의 고통의 총량을 늘리고 싶지 않고, 눈으로 볼 수 없는 그 선을 넘어설 때 생길 사건을 예방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공공의 이익 측면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도 좋다. 비록 때때로 그 때문에 부정적인 경험을 할 때도 있지만 그 또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의 문제다.

 원하지 않던 불필요한 소요가 이번에는 생겼다. 슥배송을 통해 받은 순두부 한 봉이 터져있었다. 각각 포장이 된 다른 식재들은 겉포장을 닦아내는 걸로 별 문제가 없었지만 일단 터져서 흘러내린 순두부는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환불을 요청했다. 그런데 환불 절차가 꽤 괴상했다. 터진 순두부 봉지를 최대한 보전한 상태로 문 밖에 내놓으면 그걸 회수한 후에 환불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문의 할 때 분명 순두부가 터져서 엉망이 된 사진 또한 보냈다. 그렇기 때문에 대략적인 형태는 이미 확인할 수 있는데도 실물로서 확인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제도를 악용하는 소비자가 많으니 환불에 검증을 위한 절차가 있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나는 슥배송을 2018년부터 이용해왔고 대부분의 식사를 집에서 해결하고 그 식자재를 전부 슥배송을 통해 받으며 지금까지 환불을 요청한 건 단 두 번(다른 한번은 제품누락) 뿐이니 신용할 수 있는 고객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환불을 요청할 때 이런 절차는 예상하지 못했다.

 엉망이 된 순두부 봉지를 회수를 기다리며 현관 앞에 두는 모양새도 희안하고 그걸 회수하고 주의 받을 배송기사 또한 좋은 마음은 아닐 게 분명하다. 정확하게 과실을 나누자면 포장하는 과정에 순두부를 가장 밑에 둔 직원의 과실이 가장 클 것인데(직원 교육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 담당자의 책임) 나와 배송기사에게 감정적 소요가 생겨서 차라리 수년간 사용하며 별 문제가 없던 슥배송에 대한 서비스 비용이라 생각하며 넘어가는 게 옳았던 건 아니냐는 마음까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