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증상 기록

in #kr-diary2 months ago

 전철에서 서있다가 현기증과 호흡곤란을 느끼며 주저앉았다. 호흡곤란의 정도는 아주 약했고 주저앉는 즉시 호흡은 회복되었다. 어지러움은 있었지만 두통은 없었다. 속이 답답했지만 구역질을 하지는 않았고 2분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손발의 저림, 눈꺼풀의 경련도 없었다.
 한 사람이 내가 쓰러졌다고 알리며 일단 자리에 앉으라며 자리를 양보했다.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현기증이 심해서 앞이 보이지 않았고 말을 뱉는 게 어려워서 대답할 수 없었다. 억지로 초점을 맞추려 하면 현기증이 더욱 심해질 뿐이라 눈을 감고 있었다. 한 2분쯤 그렇게 있었더니 신체기능이 어느정도 돌아왔고 "어디서 내리세요?"라는 말을 알아듣고 대답할 수 있었다. 상대의 얼굴은 아직 제대로 볼 수 없었고 아마도 그는 내리는 모양인지 "두 정거장 남았으니까 꼭 내리세요."라는 말을 끝으로 나에 대한 관심은 끝이 났다. 그를 제외한 어떤 누구도 나를 돕지 않았다. 원망하는 건 아니다. 사실을 기록할 뿐. 남은 두 정거장을 가는 사이에는 고개를 들고 앞을 볼 수 있었고 호흡도 진정되었다. 몸은 차가웠고 식은 땀이 엄청 흘러있었다. 그렇지만 오한을 느끼지는 않았다. 나는 조금만 더 일찍 정신을 차렸다면 나를 도와준 사람에게 적절한 감사를 표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럴 수 없었다는 게 아쉬웠다. 그의 선행이 다른 곳에서라도 보답 받기를.
 공황은 아닐 것이다. 걱정, 불안 따위는 없었다. 심지어 호흡이 곤란한 그 순간에도 불안함은 조금도 느끼지 않고 있었다. 차고 있던 스마트 워치는 내 심박을 측정하고 있었는데 2시30분에 79, 2시 40분에 79, 2시 50분의 기록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누락되었다. 그리고 3시 정각에 94, 3시 10분에 61. 시간을 더듬어 보면 문제가 발생한 시간은 2시 46분에서 3시3분 사이로 추정되는데 2시 40분에는 평범했고 50분의 기록은 누락되었다. 3시 10분에는 증상이 그친 후 내리기 직전이었다. 61이라는 낮은 수치는 내가 회복을 위해 명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사가 늦어졌을 뿐 증상과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수치는 아니다. 평소 안정상태 심박이 60대로 내려가는 것도 흔하게 관측되기 때문에 61이 지나치게 낮은 수치도 아니다. 그렇다면 2시 40분까지 79를 유지하던 안정상태에서 3시 94 사이에 사건이 있던 것이다. 94도 이상 수치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평범해서 누락된 50분의 비밀을 찾기 전까지는 심박에서 무언가를 찾아낼 수는 없다.

 사실 나는 유사한 증상을 이미 겪은 적 있다. 15년 전, 길에서 이번과 똑같이 극심한 현기증을 느끼며 주저앉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먹고 싶었고 가까스로 곁에서 나를 부축하는 친구에게 그 사실을 전할 수 있었다. 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편의점에 들어갔고 친구는 컵라면 2개를 끓여서 내 앞에 놓았다. 나는 그 2개를 다 먹고는 기운을 차린 적 있다. 재밌는 건 마침 오늘 만난 친구도 그 날의 그 친구라는 사실이다. 오늘은 부축은 필요 없었고 나는 혼자서 편의점에서 마구마구 먹어치우고 곧바로 회복해서 친구를 만나러 갈 수 있었다.
 15년에 한번 반복되는 증상이라면 병증이라 보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단지 오늘 정말 허기가 심했던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단, 올해 한번이라도 더 같은 증상을 겪는다면 즉각적으로 병원에 가겠다 맹세한다.

ps. 나는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내가 받은 선행을 다시 베풀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나의 행동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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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 & Love!

의사는 아니지만

혹시 당뇨검사같은건 해보셨나요
저혈당 쇼크 느낌이 나서요.

저도 저혈당 쇼크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관련 질환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에요. 꾸준히 검사도 받고 있구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디 아프기라도 하신 겁니까? 보이질 않으시네요.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마지막 글이 이런 거라서 걱정을 끼쳐버렸네요. 본문에서 겪은 증상은 이미 예상했던 것처럼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어요. 저는 건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