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단자함과의 승부

in #kr-diary8 months ago

 문제가 생겨서 통신단자함을 열었다. 정말 귀찮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부르는 건 더 귀찮다. 그게 내 특이한 점 중 하나다. 문제를 해결하는 게 귀찮지만, 그렇다고 남을 시키는 건 더 귀찮아서 직접 해야한다. 나는 유전이라 생각한다. 아니, 확신한다. 분명 유전이야. 아무튼 내가 하겠다고 마음 먹었으니 일단 엉망인 배선을 제거했다. 마킹도 해놓지 않고 엉망으로 작업을 해놓은 모습이 참 별로였다.
 110블럭은 보기에는 좀 막막해보이는 면이 있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직관적인 모듈이다. 작업에 필요한 도구를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집에 있는 도구들만 활용해도 쉽게 다룰 수 있다. UTP 케이블의 피복은 가위로도 쉽게 벗길 수 있고 110 블럭에 끼워넣는 건 안 쓰는 신용카드로도 할 수 있다. 연결은 쉽지만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았고 관리사무소에서도 통신단자 배선도는 갖고 있지 않다고 해서 하나하나 직접 연결해보며 확인해야 했던 게 조금 귀찮았다. 단자는 총 7개라서 7번의 시행착오 끝에 외부에서 연결된 선을 찾아냈고(하필 정반대에서 시작했다, 조금만 생각을 했으면 3회로 줄였을 텐데) 다음으로는 침실, 거실, 작업실을 왕복하며 어느 단자가 어디에 연결된 것인지 파악했다. 위치를 모두 파악한 후에는 외부에서 연결된 선을 거실로 이어주고 무사히 마무리했다.
 마치고 생각하니 한정적인 도구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소한 모듈에 대해 공부하고 사용하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지만 110블럭을 다룰 기회가 앞으로 다시는 없을 것 같아서 정말 불필요한 지식이라는 생각도 든다. 꼭 그런 게 아니라도 실용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