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막 초장 혹은 2막 종장

in #kr-pen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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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의 어느 날 ⓒkim the writer






   싸고 싸고 또 싸도 끝이 없다. 망할 놈의 이삿짐.
   이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으니 없지는 않겠지. 어쨌든 나는 아니다.

   프랑스에 오기 전 이사를 얼마나 했던가. 첫 신혼집에서 바로 윗집으로 한 번. 그다음엔 아예 다른 지역으로 또 한 번. 프랑스행을 결정한 뒤 본가로 다시 한 번. 프랑스에선 3년을 넘게 살며 단 한 번 이사를 안 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 중 처음 들어온 집에 줄곧 산 경우는 우리 외엔 단 한 명 없다.어제 마트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우리의 첫 불어 교수였던 카미는 아직 그 집에 사느냐며 놀라워했다.

   이사를 감안해 작년부터 짐을 늘리지 않고 있었다. 버릴 것과 버리기 아까운 것들까지 버렸는데도 나온 짐이 캐리어를 제하고 벌써 일곱 상자. 세 개는 더 싸야 할 것 같다. 일이 더딘 것은 짐을 쌀 때마다 이어지는 고통 때문이다. 물건마다 행복하고 즐거웠던 기억이 어려 있다. 그 하나 하나가 바늘이 되어 가슴을 찌르는 건 추억이 예정보다 너무 이른 곳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남은 짐 앞에서 막막을 넘어 암담을 느낀다. 예정된 곳으로의 이사가 아닌, 귀국이라 더욱 그럴지도. 한 달하고 보름 만에 본 파란 하늘 때문일지도. 단지 이 길이 우회로이길 바란다. 나는 다시 집을 잃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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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마다 행복하고 즐거웠던 기억이 어려 있다. 그 하나 하나가 바늘이 되어 가슴을 찌르는 건 추억이 예정보다 너무 이른 곳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머물다 갑니다.

3막 초장, 여유를 가지고 출발하시길~!

저와 같은 곳에서 머물다 가셨네요. 이별은 왜 늘 예정보다 너무 이른 지...

조금만 더 머물렀으면 springfield님을 뵐 수 있었을텐데.. 아쉽네요~ㅎ
우리의 이별(?)도 예정보다 빨랐네요.ㅋ

정해지지 않은 만남의 엇갈림도,
'못 만남'도 이별의 범주에 넣어야 하는지...
또 생각이 길어집니다.^^;

'못 만남'이 순간 '못남'으로 보였다는... 제 심리가 반영됐나 봅니다.

저 역시 그 글 어귀에서 눈과 맘이 멈추네요. 버리지 못한 혹은 버릴 수 없는 아픈 추억의 물건들...

3막 초장부터는 웃을 일만 가득하길 바랍니다, 작가님 :)

언제나 인생은 시작이죠. 그러니 3막 초장입니다~
힘내세요!!!^^

언제나 긍정적인 gghite님. 부군과 함께하는 생활에도 늘 빵 굽는 냄새가 나길 기원합니다.

우리 둘다 @kimthewriter님의 지원에 감사하고, 작가님 글을 좋아하고, 승승장구를 기원하는 거 아실라나 모르겠네요.^^
귀국이 확정되신 거 같은데, 굳건히 더 많은 좋은 글 쓰시길 바랍니다.~~

위임 받은 파워로 생색내는 것 같아 민망하네요. 그래서 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

3막 초장! 순탄하게 막이 열리길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kimthewriter 님, 살다보면 예정하지 않은 일들이 준비없이 닥쳐오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해외에서 귀국을 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는데요.. 많은 부분을 걱정하셨지만 특히 아이들의 걱정을 가장 많이 했었던 것 같습니다. 새로운 시작이 되실꺼라 믿습니다^^ 활기찬 한 주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그니까 정리하자면 한국에 들어오시려고 잠깐 귀국 그리고 다시 파리, 짐싸러

완전귀국 계획이신가 보군요.

ps. 과거에 메이면 마음이 성가시게 되죠. 김작가님은 고급진 탐닉수준, 그래도 성가시긴 하죠.

만사형통하기를 바랍니다.~^^

긴 시간을 머물렀던 곳을 떠나는 마음이 참 남다르시리라 생각됩니다.
저도 긴 시간을 했던 일을 떠나는 중인데, 몸은 떨어져 나가고 있지만 마음은 실감을 못하고 있거든요.
막과 막사이에 잠깐의 암전이 있는 것은 새로운 막이 열릴때 좀 더 눈부시게 환하라는 뜻도 되겠고, 지난막의 여운을 묻으라는 뜻도 되겠죠.
먼 귀국길 조심히 오세요.

이국적이네요- ^^

이 창문이 그리워지시겠네요.
이사라는게 짐을 싸는 것이 귀찮지만 정든 곳을 떠난다는 것에 더 마음이 쓰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