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경일기
주말에 본가에 내려갔다가, 오늘 올라왔다.
어렸을 땐 '본가'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참 부러웠다. 어른의 특권처럼 느껴졌다. 5년 전 고향을 떠나 자취를 시작한 이후로, 나도 '본가'라는 말을 쓴다. 실은 '본가'라는 단어보다는 아직까진 우리집이라는 말이 더 익숙하긴 하다.
본가에 내려가면 어찌나 피곤한지. 예전엔 무리하게 시간을 내 동네 친구들을 만나곤 했지만, 몇 년 전부턴 각자 사는 게 바빠 굳이 내려왔다는 연락도 하지 않는다.
부모님은 항상 나와 함께하고 싶어 한다. 그간 연락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참았는지 쉴 새 없이 전화가 온다.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나도 오랜만에 온 내 동네인데. 여기저기 가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볼 때마다 부모님은 노쇠해지고, 힘을 잃어간다. 어쩐지 모든 힘을 세월에게 뺏겨, 나를 붙들 힘조차도 없는 것 같다. 예전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연락을 보면서 나는 마음 한켠이 괜히 시렸다.
가끔 이곳에 올 때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이곳에 오면 어떤 기분이 들지 생각해보곤 했다. 이번 방문에서는 얼풋 그 감정을 느끼게 됐고, 후련할 것이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허전했다.
이곳에 올 때마다 길면 하룻밤을, 짧으면 당일로 부모님을 보고 올라가곤 했다. 그렇게 바빴던 건 아닌데, 또 내려갈 때가 되면 늘 그렇게 바쁘곤 했다. 아마 우선순위가 부모님이 아니었기 때문이겠지.
오랜만에 나온 동네는 관광객도 많이 줄고, 곳곳에 임대, 매매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관광객이 사라지길 누구보다 바랐으면서도, 괜히 동네가 망한 것 같은 기분에 슬픔도 함께 느꼈다.
간만에 사람이 없는 '나의 동네'를 혼자 걷다 보니 자연스레 이곳에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린 일이 여럿 있었지만 '에라 모르겠다'라는 마음으로 오늘까지 있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일까? 늘 아름답다곤 생각했지만, 이렇게나 아름다운 곳인지는 미처 몰랐다. 내려올 때마다 답답해서 이곳에선 못산다고, 서울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내려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연고 하나 없는 이곳에서 뭐 하는 거지?
부모님과 나의 모든 유년 시절이 지방에 있는 나는 아등바등하지 않으면 서울에 있을 수 없다. 정지한 채로 있기에 서울은 너무 버거운 곳이다. 나는 글을 쓰고 있는 이곳에 머물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았다.
공연이 끝나 마음이 허하다. 그러면서도 서울에 오자마자 써야 하는 곡을 썼다.
감사하게도 항상 뭔가가 끝나면, 그래도 다른 무언가가 생기곤 했다. 그게 버틸 수 있는 힘이었다.
투덜대긴 했지만 돌아온 내 방이 못 견디게 편하고 아늑한 걸 보면 여기나 저기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같다. 멈추면서도 시작인 것도 같고, 잠깐 감성에 젖다가 금방 웃는 것도 같고. 그러니까 이건 그냥 하나의 선인 것도 같다.
내 기준에선 바깥에서 일하지 않으면 휴일이니까 오늘은 조휴일을(?).
얼마 전 피드에 검정치마의 음악이 많이 올라왔다. 늦었지만 나도 편승해야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검정치마의 곡이다.
< 검정치마 - I like watching you go >
'본가', '연고' 이 단어들이 이제는 아련하게 잊혀져버린 옛날 말들처럼 느껴지는군요.
이 댓글을 읽고 저희 부모님을 생각해보았어요. 제게도 그런 단어들이 아련하게 잊혀져버린 옛말처럼 느껴지는 때가 오겠네요. 그럴 때 돌아볼 수 있게, 더욱더 소중하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저도 주말에 부모님 댁에 다녀왔었어요. 주말 보내고 올라오는 길에 엄마와 통화하는데, 이야기도 많이 못한거 같다며 아쉬워 하시더라구요. 이틀의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눴어도 돌아가는 자식 모습에 안쓰러움과 아쉬움이 남는게 엄마 마음인가 싶었어요.
이야기도 많이 못 한 것 같다며 아쉬워하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너무 공감됐어요. 말씀하신 대로 부모님은 늘 아쉽고 미안한 것투성인 것 같아요.
제가 올라가는데도 전화로 어찌나 미안하다고 하시는지, 제 마음이 괜히 짠해지더라고요. 그 마음을 더듬어보면 코끝이 찡해집니다.
글을 읽다보니 저도 어머니 생각이나네요...옛일을 돌이켜보면 후회되는일이 어쩜이리 많은지...잘보고갑니다~자주소통해욧!
지금도 벌써 후회만 가득인데 앞으론 얼마나 후회가 쌓여갈까요.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본가보다는 고향집이란 말이 더 좋더라고요. (우리집도 좋은데요?) 모친보다는 엄마가 듣기 좋고요. 내 고향 내 엄마는 아니지만서도.^^
처마와 나뭇잎에 비친 불빛에서 관광지 느낌이 납니다. 유명한 산사인가요? 나루님 고향 관광객이 많이 줄은 것. 저는 좋습니다. ^ㅇ^/
음악과 함께 앞으로도 죽 죽 죽 죽 선을 넘어가시기를..
모친이나 어머님 같은 말은 저도 괜히 낯간지럽고 부끄러워져요. 언젠간 '저희 모친께서는'이라고 운을 뗄 날도 오겠네요.
유명한 산사는 아니고, 그냥 유적지(?) 정도입니다. 사람도 없고 참 운치 있고 좋더라고요.
죽 죽 죽 죽 선을 넘는 건 뭘까요? 기분이 무척 좋아지는데요. ㅋㅋ
저도 혼자 있다보니 말할 때 본가라는 말을 쓸 때마다 집이 그립더라고요. 지금은 자주 갈 수 있으면서도 자주 안가는데 내년이 되면 더 못 갈거면서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요. 내년되면 또 후회하려고... 갈 수 있을 때 많이 가고 담아두어야 하는데 시간내서 가야겠네요.
본가를 갈 때는 항상 어떤 의무감이 따르는 것 같아요. 제가 원해서 간다기보다는 부모님을 생각해서 가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금방 피로함을 느끼는 것도 같습니다. 그럼에도 부모님이 기쁘시다면, 자주 가서 얼굴 비추고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저도 좀 더 자주 내려가려고요:)
볼때마다 작아지는 어른들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큰 아픔이더이다...
이 댓글을 보고 마음이 먹먹해졌어요. 그렇게 크던 부모님이 작아지실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저는 본가라는 말을 쓰면 왠지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그냥 일산 집이라고 부릅니다ㅋㅋ 그런 장소가 있는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그곳에 있으면 안정되고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 곳. 저에게는 본가가 그런 곳인데, 나루님도 그런 것 같아 보이네요^^
ps. 조휴일은 사랑입니다...
일산에 본가가 있군요?! 일산을 많이 가보진 않았지만, 제가 가본 일산은 특유의 활기찬 기운이 넘치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토랙스님도 항상 밝아 보이는 걸까요?
투덜투덜대도, 본가에 가면 이상하게 잠이 잘 옵니다. ㅎㅎ
반면에 저는 고향이 서울인데 가끔 고향 동네 가보면 많은게 변해있어 되려 낯설게 느껴져요. 이제는 지금 사는 곳에 정이 들었어요. 서울 출신에게 고향은 큰 의미가 없는 거 같아요.
< 검정치마 - 내 고향 서울엔 >
의도치 않았는데, 또 조휴일 노래네요?! 저도 이 곡을 듣고 처음 고향이 서울인 사람들을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그러고 보면 일반적으로 고향은 지방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조휴일씨가 이렇게 인기가 많은 분이었다니...
앗! 이터널님도 검정치마 좋아하시나요?! 조휴일 인기 엄청엄청 많은데요!!
10년, 11년도에 발매한 앨범은 전곡 다 가지고 있어요ㅎㅎㅎ그 당시 우연히 듣게 듣게 됐는데 좋아서 다 받은 것 같네요!
그러니까요... ㅠㅠ
그 문장에 공감하실 분들이 더러 있을 것 같습니다. @relaxkim님도 그러시군요. 그래도 또 그 에너지가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일종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거든요. 버거울 때도 있지만, 같이 힘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