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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왜 싫다고 하지 않았냐"와 가해자 감성에 젖은 이들에 대해
"아 미안. 네가 싫어하는지 몰랐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권력입니다. 사장은 직원에게 성희롱 인격모욕등을 하고 잊어버릴 수 있지만, 직원은 사장에게 성희롱을 하고 "아. 기억은 잘 안나는데 그때 제가 뭐라 했었죠? 그게 불쾌하셨다구요?"같은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모를 수 있는 것. 잊고 살 수 있는 것이 권력입니다. 아시아나 항공사에서 승무원들에게 회장님을 안아드려라. 사랑한다고 말하고 노래해라. 이 경우 명백히 갑질이며, 권력형 가해입니다. 피해자가 거부의사를 표하지 않았다는 사실 이면에 피해를 당하면서도 거부의사를 표할 수 없게 했던 권력구조에 주목하면서 이해해야합니다.
이 글은 피해자에게 동정하자는 말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동정하지 말자"는 글입니다. 피해사실을 침묵시켰던 가해 구조를 외면하는 것이 감정을 배제한 냉철한 이성은 아니죠. 오히려 가해자에게 감정이입이 들어간 것이죠. 인용하셨던 문구 "법은 감정이 배제된 이성이다"라고 말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The worst form of inequality is to try to make unequal things equal"(불평등의 가장 나쁜 형태는 불평등한 것을 평등한 것으로 보려는 것이다)고 말했던 것도 주목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 글의 무슨 부분이 무조건 피해를 주장하는 측의 감정에 공감강요로 느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위의 답변에서 충분히 설명드렸다고 생각합니다.
2/3. 원고에게 왜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았냐는 개개 사건의 정황파악상 아주 기본적으로 확인되어야 할 질문을 하는것이 가해자적 감수성이고 대신 원고에게 공감을 해야 한다는 것을 본문의 논지로 이해 했습니다. 양예원씨의 예처럼 거부의사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케이스도 있고, 터치가 이루어질 당시에는 좀 불편했지만 거부의사를 표현할 정도로 까지는 싫지 않았다가 모종의 이유로 후에 마음이 돌아서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미투운동이랍시고 적게는 몇년, 길게는 십수년이 지난 후에 그것은 성추행/성폭행 이었다고 주장을 하는데, 증거도 남아있지 않고 원고와 피고의 증언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왜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았냐는 질문을 하지 않는게 옳다고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