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통 아닌, '하나' 이야기 [Feel通-일상의 안단테]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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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저를 절에서 기도해서 낳았어요.
그때 기도는 "철 없는 남편, 애라도 낳으면 철 들겠지요. 예쁜아이 하나만 낳게 해주세요" 였어요.
엄마의 기도가 간절했는지 한달도 안돼서 제가 생겼고.
그때의 부처님에 대한 원망인지(?) 도리인지 적어도 초파일에는 시주하러 절에 가시는 불자이시죠.

아이 이름은 '하나'로 지었어요.

'세상에서 하나뿐인 예쁜아이' 라는 의미랬어요. 적어도 제가 고등학교 1학년때까지는요.
고등학교 1학년때 엄마는 "너도 다 컸으니 알건 알아야돼" 라면서 그 전까지 알지 못하던 삶의 어둠을 베란다에서 소주를 홀짝이며 알려주셨는데 아빠에 대한 한탄, 엄마의 고생사, 그리고 제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같은 것들이었어죠.

그땐 '어른스러운 내가 얼마나 믿음직스러우면 엄마가 이렇게 의지할까?'라고 으쓱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제게 좋은 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엄마의 짐을 조금은 덜 수는 있었겠지만요.


어쨌든, 그때 알게된 제 이름의 뒷 이야기는 이래요.
형편이 안 좋았던 엄마는 '그래, 하나다. 하나면 충분하다. 한명만 낳자.' 다짐 했대요.
근데 막상 낳으니 애기가 너무너무 예쁜거예요. 당연하죠. 제가 어렸을때 좀 예뻤게요.
그래서 처음의 다짐을 자꾸 까먹을 것만 같아서 '안돼, 이 형편에 둘은 절대 안돼' 저를 부를 때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이름을 '하나'로 지었다 해요.
엄마는 '하나'라는 이름을 짓기전에 국어교사인 이모부에게 먼저 작명을 부탁했는데 이모부가 거절 했어요. 아직도 엄마는 그 이야기를 안주삼아요.
"그거 좀 지어주면 어디가 어때서. 내가 한글도 잘 모르고, 한문도 몰라서 어렵게 부탁한건데 그걸 그렇게 야멸차게 거절하더라." 면서요. 엄마같은 뒷 끝 있는 사람한테 부탁 거절하면 저렇게 평생 술상 오징어가 되는구나 매번 깨닫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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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전 '하나'가 됐는데,
평생 가장 많이 들은 농담은 "두나는 어딨어?" 이고, 상대방의 반응따윈 상관없이 불굴의 뚝심을 가진 분들은 "세찌도 있나?" 라는 말까지 하시죠. 여기까지 하신 분들은 대부분 "재밌지?" 라는 말도 덧붙이시는데 그냥 "에헤헤" 하고 웃어드려요.
제 나름의 처세랄까요.
싫은거 좋다고 못하고, 좋은거 싫다고 못하는 성격인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예요.


작은삼촌은 저를 '한개'라고 불러요. 아 , 작은 삼촌은 아주 먼 친척인데. 아빠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렸을 때부터 의지하던 분이예요. 외내종형제는 너무 멀잖아요? 그래서 그냥 작은삼촌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왜 저를 '한개'라고 부르냐고요?
제가 언젠가 "삼촌 나는 하나라는 이름이 좀 그래. 뭔가 외로워 보여요. 난 가뜩이나 형제도 없는데" 라고 했대요. 기억도 안나요. 그래서 그때부터 한개라고 부르시는데, 삼촌 특유의 억양이 있어요. 되게 반가우면 딱밤까지 함께 때리며 불러요.
"야, 조한~!개!"
'한'에 악센트가 있어요. 삼촌이 부르면 그 악센트와 함께 힘이 나는 기분이 들어요. 이건 삼촌만 할 수 있는거라 설명불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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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 이름의 가장 큰 묘미는 안 친한 사람들이 부를때에 있는데요. 바로, 전지전능해진다는 것이죠.
친한사람들을 저를 "하나야" "하나찡" "하나쓰" 등등으로 부르지만 안친하면 여지없이 "하나님"이 돼요.
뭔가 제가 죄를 사해야 할것 같고, 부른 이를 두 팔 벌려 맞이해야 할 것 같고, 믿음안에 경건해져야 될 것 같은데.
저같은 우주먼지에게 정말 어울리지 않는 호칭이니 '하나님'말고 '하나씨' 정도로 해주면 좋으련만. 친해지기 전까지 절대 안되나봐요.
요 며칠 전엔 얼굴 한번 안본 사람들과 일 때문에 단톡방에서 인사하는 일이 생겼는데요, 모두가 입을 모아 "하나님"을 외칠 때면
그냥 시원하게 "할렐루야" 한번 해봐? 하는 이상한 충동이 생겨요. 언젠가 그렇게 외치고 단톡방을 나가버릴지도 모를일이예요.

이렇게 곡절이 많지만 저는 제 이름을 참 좋아해요.



누가 나즈막히 "하나야" 하고 불러주면 따뜻하고.
글씨 모양도 예쁘고, 영어로도 그대로 쓸 수 있고. 또 기억하기도 쉬우니까요. 일본어로 하나는 꽃이라는 뜻이기도 하대요.
예전에 '성애자'라는 말이 유행할때 저는 '이름성애자'라는 말을 했었는데, 영 빈말은 아녔어요. 이름을 불릴때마다 사랑받는 느낌이 들어요.

필통도, 하나쓰도, 라이조도, 그리고 아직도 엄마 립스틱을 훔쳐 바르고 어른 흉내를 내는 것만 같은 조쌤도.
모두 잘 지내냐 묻고 싶은 날이예요.

이름의 의미는 의미는 지어준 사람의 뜻이 아니라 그 이름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만드는거겠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세상에 <하나>뿐인 예쁜 아이'가 맞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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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하나님의 뜻깊은 글을 읽으니 죄를 용서받는 기분이고 깨달음을 얻는 기분이에요.

필통님의 본명은 하나님이셨군요!

이름은 지어주는 사람이 바랐던 대로 흘러가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만들어가는거라 생각하지요. 이름에 힘이 있다라고도 하잖아요?

그러니 하나님은 '세상에 하나 뿐인 예쁜 아이'가 맞을 거에요!
그 아이는 커서 세상에서 하나 뿐인 유일한 그 분(?)이 될지도 모르지요!! ><
할렐루야!!

뉴멤버님 요즘은 잘 지내고 계시는가.... 제가 다 보고 있습니다...... 음하하하 ㅋㅋㅋ
농담이고요 ㅋㅋ 보진 못해도 늘 궁금해 하고는 있습니당~
요즘도 힘들어요?! 하긴.. 한번에 진전되진 않을 일이니. 그래도 치킨이라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게 다이어트를 때려치!!!!킨!!!!!! 이제 다이어트 내기는 끝난거죠?

응원 고마워요. 긴 글도 읽어줘서 감사! 우리 같이 힘내요!!!!

ㅋㅋㅋㅋㅋㅋㅋ 요즘은 스트레스는 좀 덜 느껴져요! 아무래도 먹는걸 마구 먹고있어서... 그런거같아요...ㅎㅎ
일은 뭐.. 잘 안되구있구요!! 꺄하하

맞아요! 다이어트 내기!! 제가 이겨서 상대한테서 벌금을 받아냈답니다 ㅎㅎㅎㅎㅎ 그리고.. 열심히 뺀 살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네요..흑..

필통님의 글은 절 향하고 쓰시는 글이 아니지만 뭔가 항상 읽고나면 힐링되는 기분이에요.
잠시 현실을 잊고? 필통님의 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너무 글을 잘쓰셔서 몰입하게 되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ㅋㅋㅋ

힘내자요 힘!!! 빠샤!

저는 사촌동생도 하나가 있고 친구도 하나가 있어요.
사촌동생은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르자 의미가 포함인 것 같아요.
하나라는 이름의 친구에게는 동생은 둘이야? 이말 제일 많이 하는데 동생은 조인성 이랍니다^^

이름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만든다

좋네요. ^^

허걱!!!!!!!!!!! 조인성이요오오오?!
음.. 이 글을 쓰면서 성은 안 밝혔으니 제가 드러나지 않는것 같다 생각했지만.
이 댓글에 흥분해서 공개할 수밖에 없어요. 저도 '조'씨인데..
동생이 조인성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ㅋㅋㅋㅋㅋㅋ 헤헷.
그분은 연예인 조인성와 비슷한가요?!

외모는 넘사벽이라 비슷할 수가 없는 거 같아요 ㅎ
필통님 성도 이름도 제 친구랑 같으시네요
친근하게 소통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위에 조 한~~개 라고 하셔서 전 일찌감치 성이 '조'인 거 눈치챘습니다만...

하나님. 좋은 이름이에요.. 조안나 아이스크림을 먹곤했는데 다먹고 나면 빈통이 말을 걸어요. 좋았나? 이렇게요.
성장기를 돌이키면 씁쓸한 것들이 남아 있잖아요. 고생하신 어머니를 위해 세상에 하나뿐인 하나가 되어주세요. 세상에 하나뿐인 그 하나도 좀 찾아보시고....봄인데.ㅋㅋㅋㅋ

크크크크. 맞아요! 유피님!!
저 조안나라는 별명도 있었어요. 근데 그 아이스크림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스르륵~ 사라졌죠!

그쵸.. 요즘 봄인데요 .. .큭~~~ 봄인데 흐엉
봄인데....끄억............ 봄인데 으엉엉

예쁜 이름을 가지셨군요 :)

헤헷. 고맙습니다와요..^_^)b

이름의 의미는 의미는 지어준 사람의 뜻이 아니라 그 이름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만드는거겠죠.

정말 예쁜 이름이네요 ㅎㅎ
정말 좋은 말이네요. 저도 제 이름 잘 개척해나가야겠어요 ㅎ

knowkorea 라는 이름도 큰 의미를 지닌것 같은걸요!
감사해요. ^_^)

하나뿐인 예쁜 아이인 필통님 글 잘봤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으셨는데 이렇게 밝고 명량해보이시니 좋습니다.

헤헤~ 저 완전 명랑하죠 ㅋㅋㅋㅋㅋㅋ 그냥 애예요!
whatwelivefor 빨리 럽스팀 해요!^_^) 응원합니당당당

통통 튀는 느낌의 필통도 잘 어울리지만, 하나씨는 왠지 소녀같은 느낌이 들어 하나씨의 밝은 기운과 매치되는 거 같아요^^

소울메이트님. 저 자장가 불러줘야 할 애기도 없는데 바쁘고 정신없다고 징징거리고 싶어요!
징징거리는건 필통이라는 이름이 어울릴까요, 하나가 어울릴까요?
정해주시면 그 이름으로 아주그냥 징징....허허허. 죄송합니당 ㅋㅋ
종종종 그림자 잘 따라가기로 했는데 꾸준히가 진~짜 어려운거 있죠! 쏠메님 짱이예요!!

저도 스티밋에 들어온 이후로 최대 포스팅 공백기를 갖고 있네요. 오늘은 꼭 올린다고 맘 먹습니다. 애랑 같이 잠드는 게 왜케 달콤한지~ 봄이라서 그런가봐요ㅎ;;;

'하나'님의 이름에는 아주 소중한 추억이 담겨져 있었군요. 이름에 얽힌 사연이 참 남다르시군요.

정말 예쁜 이름을 가지셨군요. 이름의 탄생 비화는 있지만... 이름이 "하나"라고 지어져서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주변에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어서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름인 것 같아요. 저도 딸 낳으면 생각해보고 싶은 이름입니다. 하나님!

하늘님과 하나님 사이에는 어떤 교집합이 있을까요?
뭔가 통하는 느낌적인 느낌이죠? 헤헷. 이 포스팅을 계기로 제 이름을 더 좋아하게 됏어요.
예쁘다고 해주셔서요 끼야오~(+ㅂ+)//

예쁜 연필같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한다는 교집합을 비롯하여 찾아보면 교집합이 여러개 있지 않을까요? ㅎㅎㅎ 교집합이 없으면 서로 합집합하고 그것을 Share하여 이해한다면 서로 더 통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하나님 이름은 정말 예쁜 이름이니깐 앞으로도 많이 여기저기서 불리워졌으면 좋겠어요. 좋은 의미로요.

나중에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블랙카드에 이름이 새겨지면 더 좋겠어요. ㅎㅎㅎ

아직 발견하지 못한 교집합이 더 많을것 같아요!!!
그런데 하늘님, '교집합이 없으면 서로 합집합하고 그것을 Share하여 이해한다면 서로 더 통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 이말 엄청 멋진것 같아요.
교집합이라는것은 그렇게 만들어나가는 것일텐데요. 우오. 오늘도 또 하나 배웁니다. 감사!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블랙카드는.. 자기전에 늘 기도하고 잘게요. 제발~ ㅎㅎ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블랙카드는 아직은 꿈일 뿐이지만... 필통님과 교집합하는 분들은 여기저기 많이 존재한답니다. 모두 필통님을 응원하고 있고, 저 또한 필통님의 팬이고요. ^^ 저도 자기 전에 필통님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블랙카드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

할렐루야 ㅋㅋㅋㅋ 빵 터졌네요 :)

읽을수록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입니다.
각자의 이름에는 추억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소중한 사람들이 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