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파라다이스 산책
한반도에 백년만에 처음 온 찜통 더위, 그러나 사실 산골은 파라다이스다.
물론 낮에는 해가 뜨면 덥다. 그러나 해가 지고나면 나와 남편 둘만의 파라다이스가 펼쳐진다.
아스팔트길과 건물이 많지 않고 온통 냇물과 산과 푸른 나무와 풀들 뿐이니 열기는 해가 떨어지면 금방 식는다. 그리고 금방 어둠이 내린다.
나는 장화를 신고 나무지팡이를 든다. 남편은 휴대폰과 작은 랜턴을 챙긴다. 마당에는 동네 냥이 네 아이의 엄마인 조로가 달려와서 머리를 부빈다.
우리는 걷기 시작한다. 조로는 조금 따라오다가 아기냥이들한테 되돌아 간다. 밤 8시만 되면 동네 어르신들은 일체 바깥으로 나오시지 않는다. 간혹 지나다니는 차 이외에는 우리 산책을 방해하는 것은 없다.
우리는 천천히 고요와 어둠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습관적으로 하늘을 쳐다보고 별을 본다. 별이 얼마나 많이 나왔는지를 살피며 은하수를 찾아보고 북두칠성을 찾아본다. 냇물을 따라 난 길을 걷는다.
남편은 웃옷을 벗는다. 그리고 걸으면서 떠 오르는 영감들을 간혹 멈춰서서 휴대폰 메모에 기록한다.
마을 반대 쪽으로 난 약 2키로의 길을 이렇게 걷는다.
그리고 목표로 한 다리에서 다시 집쪽으로 돌아온다. 집 가까이 오면 조로가 다시 달려나온다. 조로는 우리와 함께 걷는다.
달이 떠서 나와 남편 그리고 조로가 함께 걷는 그림자가 생긴다. 남편은 그림자를 찍어보려고 휴대폰 카메라를 누른다. 집을 지나쳐서 이번에는 마을 쪽으로 난 길을 간다. 조로는 몇 미터 따라 오다가 다시 새끼들에게 되돌아 간다.
조금 더 가다보면 어디선가 아주 이쁜 소리가 들린다. 양양~ 양양~
대체 녀석은 우리의 발소리만을 듣고 우리를 알아보는 걸까? 양양대며 곧 모습을 드러내는 녀석은 조로의 남편이자 우리 미미의 남편인 나비다. 녀석은 다가와서 바닥에 털썩 눕는다. 만져 달라는 것이다 . 머리와 귀뒤를 만져주면 흥분해서 콧방울이 맺히며 가르릉 거린다.
그리고 나와 남편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따라온다. 서너발걸음에 털썩 하고 누우면서 열정적으로 애정을 갈구한다 . 녀석과 같이 걷기에는 조금 불편하다. 이 녀석은 밥을 얻어먹는 집이 몇집 있다. 그래서 꽤 먼 거리까지 그렇게 따라 온다. 잘못하면 꼬리를 밟히기도 한다. 비명을 지르지만 우리가 실수 했다는 것을 이녀석은 잘 안다. 한번도 항의한저기 없다.
따라 오다가 어느 정도 지나면 숲속으로 조용히 사라진다. 우리는 조금 더 간다. 길바닥에 길고 검은 물체가 있는것 같다. 뱀인가?
남편은 언제나 시골에서 뱀을 경계하는데 난 늘 말했다.
"뱀은 밤에는 안 나와. 걱정하지마. "
남편은 내 지팡이를 가지고 길바닥에서 길게 누워있는 녀석을 살살 건드려 본다. 미동이 없다. 그냥 끈 같은 것인가? 하고 랜턴을 비춰본다. 빨간 줄무늬가 선명한 뱀이다. 아직 차에 치이거나 하지 않은 온전한 모습이다. 그런데 움직이지 않는다.
남편은 이녀석 로드킬 당하지 않게 풀숲에 옮겨줘야 겠다며 다시 내 지팡이 위에 녀석을 올려놓으려고 애를 쓴다. 풀숲으로 던지려고,
그런데 이때 녀석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잠이 든 것이었다. 이제 잠을 깬 것이다. 아! 뱀도 이렇게 깊이 잠을 자는구나! 처음 안다.
온기가 필요해서 저녁에 길로 나왔다가 따뜻하니까 그대로 길위에서 잠이 든거다. 이런 녀석들 아침에는 거의가 로드킬이다. 남편은 잠든 뱀을 깨워 살살 풀숲으로 들어가게 유도한다.
조금 더 가다보면 간혹 서 있는 가로등 불빛에 이끌려 나온 사슴벌레인지 장수하늘소 인지 하는 녀석들이 또 보인다. 남편은 녀석들을 손으로 잡아 또 풀숲으로 던져 준다.
반환점에서 되돌아 온다. 다시 나비가 나타난다. 나비는 서너걸음 같이 걷다가 우리 앞에 털썩 하고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서 따라오다가 나무를 보면 달려가서 긁다가 다시 다가온다. 너무 힘들것 같지만 녀석은 조금도 힘들어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풀숲에서 벌레를 발견하면 우리 따위는 금새 잊어 버리고 벌레를 잡으러 조용히 숲으로 사라진다.
나비가 가버리니 이제 걸을만하다. 하지만 난 체력이 다되었다. 끝없이 걷고 싶지만 다시 조로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마당으로 들어선다. 밤 산책은 매일 거의 이렇게 끝난다.
하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나에게는 또 아침 산책이 있다. 6시쯤 눈을 뜬다. 밤사이에 쌓인 냉기가 아직 서늘하고 시원하다. 해가 뜨기 전에 산책로를 돌아오는 것이 목표다.
장화를 신고 지팡이를 집고 여울길 산책로로 간다. 새벽에 나와 걸으시는 뒷동네 할머니를 만난다. 인사하고 그냥 지나치면 나혼자만의 새벽 산책이 흐르는 물소리를 따라 계속된다. 나는 머리와 마음을 텅비우고 오직 물소리만을들으며 걷는다. 대단히 충만하고 행복해지는 산책이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오늘은 나를 부르신다. 간이 의자에 앉으셔서는 "이리와 앉아봐요" 하신다. 몇번을 마주쳤지만 이렇게 부르시는건 처음이다. 옆에 가서 앉으니 이제서야 말씀하신다. 가스렌지가 안켜져서 밥을 못해 드시고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셨고 혼자 사신다고 하신다.
집에 들려서 전기로 국을 끓일수 있는 파티쿠커를 찾아서 같이 할머니 집으로 올라갔다. 남편은 곤히 자고 있으니까 우선 내가 가서 살펴 본다. 가스가 켜져있는지 보니 아직 가스통에 가스가 들어있고 밸브는 열려져 있다. 주방으로 들어가서 일단 파티쿠커로 급할때는 국이랑 끓여 드시라고 설명을 해드리고 나서 가스렌지를 살펴본다.
집에서는 나도 한번도 해보지 않는 거다. 집에는 남편이 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내가 아는 모든 상식과 지식을 동원해 본다. 가스렌지를 앞으로 끌어내보니까 뒤에 건전지가 들어가는 곳이 있다. 건전지를 뺐다. 가스레인지 언제 사셨어요? 하고 물으니 한 2년됐다고 하신다. 그동안 건전지 간적 있어요? 하니 없다고 하신다.
집으로 돌아와서 같은 건전지가 있는지 찾아보니 다행히 크기가 같은 건전지 새것이 두개나 있다. 가지고 올라가서 건전지를 갈았는데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아, 가스렌지가 고장인가 봐요. 그러면 새로 사거나 수리를 해야 할텐데요 몇마디를 주고 받으며 다시 가스렌지를 켜자 가스렌지도 이제 잠에서 깼는지 확~하고 불꽃을 일으킨다. 건전지 한개를 할머니 집에 놔둔다.
이 동네는 하루에 버스가 아침 7시반 그리고 저녁 7시 반 두번 들어온다. 자차가 없는 동네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작은 생필품을 사러 읍내에 나가는 것이 아주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돌아오려고 하니 커다란 박스에서 전기밥솥을 꺼내신다 . 전에 쓰시던 전기밥솥이 두개나 있는데 두개 다 고장이 난 상태고 , 그래서 딸들이 새 밥솥을 사서 보내드린것 같은데 쓰시는 법을 모르셔서 여태 그냥 두고 계셨던 거다.
그래서 취사버튼등 밥을 하는데 필요한 버튼을 익히시도록 해 드렸다.
냉장고에서 두유를 꺼내서 먹으라고내어 주신다.
생각지 않게 나이스!하게 잘 해결이 되어서 참 좋다.암것도 모르는 내가 들여다 본것 뿐인데 ..이건 천사가 도운게 틀림없다.
급한일 있으시면 전화 주세요. 하며 할머니 폰에 내 전화 번호를 저장해 드렸다. 단축 번호 13번이다.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서 말하니 연신 칭찬이시다. 잘했네. 잘했어! 자주 들여다 봐야겠다. 혼자 사시는 할머니시라니, 저번에 팔 부러져서 병원에 다녀오신 그 할머니 맞지?
하루밤 지나고 아침 명상중인데 할머니께서 전화하셨다. 내가 먹으려고 약 하나도 안치고 기른 오이가 몇개 있는데 지금 가지고 내려갈께요하신다. 냉장고에 두고 드세요. 시장도 자주 못 가시잖아요. 했더니 혼자 얼마나 먹는다고, 냉장고에는 나 먹을거 몇개 있어! 하신다.
약을 치지 않아서 못생기고 꼬부라진 몇개의 오이와 몇개의 고추 그리고 호박하나를 짊머지고 오셨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수박과 바나나를 잘라서 내 드렸더니 입맛이 없어서 밥 못 드시는데도 잘 드신다. 혼자 밥먹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잘 안다.
여기 이사 혼 후로 혼자 사시는 할머니들이 몇분 계셨다. 한해 한분씩 거의 떠나가시는 분위기다. 빈집이 늘어난다. 조금 상태가 좋은 집은 금새 팔리고 도시사람들의 쎄컨 하우스가 된다. 스레트 지붕에 시멘트 블럭으로 작게 지었던 집은 그냥 폐가가 되어 우두커니 세월을 홀로 산다.
오늘 점심은 아침에 할머니가 주신 오이다.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냥 씻어서 점심에 고추장 찍어 먹을 것이다. 벌써 기대가 된다. 나에겐 이것이 보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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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연히 유튜브에서 본 "미요리의 숲" 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예요. 풀로다 볼수 있네요. 보는 동안 더위를 완전 다 잊었습니다. 아름다운 영화더군요. 링크걸어 둡니다.
오늘도 충만한 하루 되세요.
뱀은 땅속에 들어가 자는줄 알았는데 땅위에서도 자는군요...
하지만 아무리 자는 뱀이라도 무서워요~
아니 징그러우니까 무섭다고 하는건가? 산에 가면 뱀 만나는게 젤 무서운듯해요
저도 뱀이 그렇게 잠꾸러긴지는 처음 알았어요^^
글로된 그림을 감상했네요.
저도 동네가 바닷가여서 밤에 집사람이랑 산책을 가끔 나가는데, 아직 바닷가에도 밤에는 덥네요.
산 속에는 나무와 개울이 있어서 밤에는 시원하겠습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아, 바닷가에 사시는 군요. 바닷가도 참 좋습니다 . 달이 뜬 밤 밤바다 산책 또한 환상적입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나비가 개냥이의 조짐이 보이는 군요.ㅎㅎ
13번 이시스님으로 기억해두겠습니다. :D
나비와 조로가 바깥 야생 동네양인데 우리집 방안 고양이 미미보다 더 애교가 많고 더 개냥입니다. ^^ 고생을 하는 애들이니 얻어먹는 밥의 고마움을 더 잘 아는것 같아요 ^^ 시원한 여름 보내세요
뱀도 숙면을 취하는군요 그것도 길에서 ㅎㅎ 술취한건 아닐까요ㅎㅎ
글게요 저도 그렇게 뱀이 깊이 잠자는 줄은 처음 알았어요
時같은 풍경속에서 隨筆처럼 사시네요^^; 미요리의 숲, 잘보겠습니다. ....
눈 사진 보니 순간 소름이 ~! ㅎㅎ
죄송....글도 잘보았지만 사진보니 살거 같네요...ㄷㄷ^
겨울에 저 사진 찍어 두길 잘했어요
재미나게 사시네요. 부럽습니다. 산골생활^^
산골생활 도시로 일다니기 힘들어서 그렇지 나름 괜찮슴니다.
평화로운 곳이란 생각이 듭니다.
저도 가끔은 치열하게 사는 목적이 무엇인지
고민해 봅니다, 엊그제 와이프가 우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란 말에.. 우리 다 팔고 시골가서 농사지면
살까?? 와이프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제 결정이 필요한 상황인데..
맘속에 누구를 위한 위한 욕심인지도 모를 욕심에
또 내일도 결정을 미룹니다,
참 평화롭다. 그리고 따뜻하다 이렇게 느껴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귀농은 힘듭니다. 오직 귀촌을 해야 합니다. 거주지만 시골로 하는것이고 일은 도시로 다니거나 생활비를 벌 대책을 가져야 합니다. 농사지어서는 생활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서울에서 적당히 떨어진 시골에 거주지를 정하고 시골생활과 도시 생활 같이 하는것이 가장 낫다는결론입니다. ^^ 이건 제 경험을 기우에서 나누는 것이고 또 다른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테니 두분의 아름다운 가정을위한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생각합니다.
그렇죠. 먹고 사는게 문제라서
둘이 먹고살 정도의 고정수입을 만들 생각입니다.
5년~7년정도 보고 있습니다. 그럼 와이프랑
경제적으로 풍족하진 않지만 풍족한 마음으로 살까 생각중입니다.
5~7년 금방 갈 시간인데 혼자 애들 키우는 와이프가 너무 힘들까 걱정이네요.
답글 감사합니다.
네. 어서 좋은 날들 맞이하게 되시길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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