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독서중] 글이 성성하게 살아있는 최진영 작가의 '원도'

in #zzan4 day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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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과 '해가 지는 곳으로'를 읽었을 때도 참 흡인력 있고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라고 감탄했다.

이 책 역시 놀라운 문체와 주제를 지녔다.
오죽하면 2013년 발표했던 책이 5년 후에 절판되었는데 중고시장에서 서너 배가 넘는 가격으로 판매되면서 2024년에 다시 출판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라는 제목을 '원도'라고 바꾸어서.

절박했던 사람들은 제목에 이미 꽂혔을 것이다. 당시 저자도 무엇이 우리를 살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 심각한 고민 중이었던 거 같다.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는 '죽일 놈'은 갑자기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혹은 그녀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부모의 부재나 부모의 과도한 억압이 그를 주눅 들게 하다가 결국 반발심을 불러 일으킨다.

작중 주인공 '원도' 역시 그렇다.
아기 원도는 엄마의 사랑을 갈구했다. 그러나 엄마는 늘 아들을 밀어냈고, 그의 뇌에 각인되어 의문을 일으키는 장면은 아버지의 자살이었다. 그것도 물 한 컵을 마시고. 나중에 드러난 바에 의하면 원도에게는 의붓아버지였고, 그가 마신 물은 엄마가 자살하려고 타 놓은 독극물이었다.

새 아버지가 들어왔는데 경찰인 그는 '선택은 자유'라며 늘 규범과 책임을 강조하다가 끝에 가서는 '몇 대 맞을래'라며 초중고 시절의 원도 엉덩이를 두둘겨 팼다. 엄마는 멍한 표정으로 방관하거나 '네가 잘못했으니, 울지 마'라고 말하고 돌아선다.
그런 엄마가 보육원 시설에서 장민석이라는 원도 또래의 아이를 데려 왔다. 엄마는 원도에게 보여주지 않는 자상함과 웃음을 장민석에게 보여주었고, 원도는 질투와 선망으로 장민석을 괴롭히는데 열중한다. 이 와중에 새 아버지가 사실은 친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엉망으로 생활하다 대학에 입학하고 군대를 다녀왔다. 여자를 만났고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녀는 원도 함께 할 뜻이 없다. 그러다 장민석과 같이 있는 그녀를 봤다. 장민석과 자살한 아버지는 끝내 원도 영혼의 그늘이었다.

장민석과 술을 마신 다음 날, 장민석은 누군가에게 죽도록 맞아 중환자실에 있다가 사망했고 원도는 기억하지 못한다.
원도는 은행에 취직해서 돈을 벌었고, 결혼하여 아이도 낳았으며 대출 상담하러 온 이들에게 거만하게 굴었다. 그러다 은행의 자금에 손을 댔다가 들통나고 결국 파산한다. 당연히 가족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의 몸은 이미 간경변으로 죽음이 목전이다. 자신이 파산시킨 사람들을 피해 다니다가 허름한 여관에 들어가 자살하려 하나 창밖 길 건너의 중국집 유리창에 붙은 음식 사진이 너무 아름다워 죽지 못한다.

'너는 왜 죽지 않는가.'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고 모두에게 지목된 사람일지라도 '그것을 묻는 당신은 누구인가'(p240) 라는 문장이 이 책의 핵심으로 다가온다.
그 누구도 남의 목숨에 관여할 자격이 없다.

원도의 삶을 들여다 보다 하나의 사건은 수 많은 원인이 쌓인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 남에게, 특히 자녀에게 강요하지 맙시다, 그저 살아있는 것에 감사합시다, 라고 말하고 싶어질 지경이다.

이 책은............. 심한 좌절을 겪고 있는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최진영 / 한겨레출판 / 2024(원2013) / 15,000 / 장편소설

https://blog.naver.com/tldlschsss/223695129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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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 같은 사람들이 세상에 참 많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