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100] OUTRO. 신곡(神曲) (Divina Commedia)
2호선 지하철, 앞에 앉은 여자의 무릎 위에 놓인 털실로 짠 핑크색 토트백 안에 식빵이 담겨 있었다. 꼭 일본 만화 속 오븐에서 갓 구워져 나온 식빵처럼 보였다. 정확하게 세 구간으로 나뉜 식빵의 윗부분은 컴퍼스로 그려낸 듯 일정한 곡률을 그리며 부풀어 있었고, 그 표면은 마치 밤껍질 같았다. 어찌나 매끈한지 몇 개의 선 혹은 면으로 이루어진 가상의 반사광이 맺힐 지경이었다. 분명 평범한 식빵인데 그 형태가 완전무결하달까. 그건 분명 식빵이 가질 수 있는 형태미의 극치였다. 그러나 지나치게 평면적이어서 어떠한 온기도, 어떠한 냄새도, 어떠한 맛도 기대할 수 없었다. 계속 보고 있으니 시각에 이상이 생긴 듯한 이질감이 들었다. 나의 시선은, 모형도 아닌 그림처럼 느껴지는 완전무결한 이차원의 식빵에서, 그걸 담은 귀여운 뜨개 가방으로 옮겨졌다. 요즘 뜨개질이 유행이라지. 저 가방 역시 여자가 손으로 짠 것일까. 쥐고 있던 털실과 뜨개바늘을 무릎 위에 내려놓고 바삭하게 구운 식빵 한 조각을 느릿한 손놀림으로 찢어내는 여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여자의 희미한 미소를 봤다. 이질감은 식빵을 넘어 뜨개 가방, 여자의 미소로 번져갔다. 이쯤 되자 당황스러웠다. 여자의 설렘, 기쁨, 만족감 같은 걸 상상하지 못하는 무심함까지는 그렇다 쳐도, 가만히나 있으면 반이라도 갈 것을 굳이 이질감까지 느끼는 괴팍함이라니, 이거 어딘가 잘못된 사람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마침내 그 이상한 감정이 나를 향하고 나서야 이질감 쓰리콤보부터 시선을 거둘 수 있었다.
백번 천번 생각해도, 귀여운 뜨개 가방 속 아름다운 식빵 같은 걸 좋아할 수 없다. 너덜너덜 찢어진 축구공처럼 생긴 식빵일지라도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식빵의 모양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뜨개질의 대유행은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로 느껴진다. 이건 취향이 아니라 식빵과 뜨개질이 표상하는 세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자 숨이 확 막혀 왔다. 오로지 '나'라는 렌즈와 창문을 통해서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렌즈 밖의 세상, 창문 밖의 세상은 경험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렌즈이자 눈가리개이고, 안식처이자 감옥이고, 축복이자 저주인, '나'의 실체를, 2호선 지하철 안에서 잠시 스쳐 간 기분으로서 경험한 일에 관하여 쓰고 있다. '그런 깨달음'은 없으니 쓸데없는 노력하지 말라는 어떤 인도 구루의 일갈이 계속 생각난다. 이런 의문, 어떨 때는 회의와 아쉬움에 사로잡혀 있다가도 나의 프리즘을 통과하여 비친 우주의 찬란한 빛을 한 가닥씩 쓰다듬으면 역시 기쁨뿐이다.
서촌에서의 전시 종료와 함께 흐름이 달라졌다. 달라진 흐름은 한 달 넘게 계속되고 있다. 막연히 정해두었던 어떤 시점에 준비된 일들이 차례로 일어났고, 그 일들이 내 마음에 변화를 일으켰고, 만나야 할 사람들이 나타났고, 해야 할 일들이 주어졌다. 나의 렌즈 안에서 관측된 현상들이다. 나의 창문을 통해 보인 세상이다.
지은이들과 나눈 이야기, 그 인연의 신비가 준비된 다음들을 계속 보여주었다. 지은이들이 렌즈 화각 밖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소실점 저 너머로부터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는 반가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조바심 갖지 않아도 된다. 준비가 되면 닿게 될 테니 여전히 망원 렌즈는 필요 없다. 대신 광각 렌즈가 필요해질 것이다. 왜곡은 싫으니까 고성능으로. 지은이들의 목소리는 연결되었고, 청년들은 시를 지어 읊기 시작했다. 물류센터에서 보낸 몇 번의 밤을 통해 렌즈는 광각 기능을 획득했다. 물류, 그 위태롭고도 정교한 흐름을 좋아하게 된 마음이 왜곡의 결과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나의 연예인은 날개를 펼치고 노련하게 활공했다. 하늘을 나는 용을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그럴 때마다 눈물이 대책 없이 흘렀다. 좋아하는 유튜버가 진정한 지혜의 힘과 기능을 스스로에게 증명하는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와, 너 진짜 똑똑하다.
그리고 마법사 멀린의 <숨겨진 포탈들> 텀블벅 펀딩 금액이 차곡차곡 쌓여 목표 금액을 달성했다. 마법사님이 내게 최종 원고를 전달한 것도, 내가 펀딩 계획을 세운 것도 분명 지난여름의 일인데, <숨겨진 포탈들>은 지난여름이 아니라 전시 이후 새롭게 시작된 흐름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역시 나의 렌즈 안에서 관측된 현상 중 하나다.
이 삶에서 불이의 경지 같은 걸 이루고 싶은 건 아냐. 춤이나 추자. 렌즈와 창문을 파괴할 필요는 없다. 다만 더 많은 렌즈와 창문을 얻고 또 짓게 될 것이다. 그러니 엄마 아무 걱정하지 마요. 난 문제가 아냐 문제의 답이에요.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