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그들은 무엇인가

in #kr-pen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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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한 발 한 발 걷고 있다. 광장을 가로지르는 노인의 목적지는 흡연실. 노인은 한참을 걸어 흡연실에 도착한다. 재떨이를 마주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담뱃갑을 꺼낸다. 하지만 노인은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 물지 않는다. 담배를 입에 물지도, 손에 들고 있지도 않지만 노인의 손은 재떨이로 향한다. 재떨이에 도착한 손은 재떨이를 헤집는다. 노인의 손은 최대한 원통형을 유지하고 있는 꽁초들을 찾으면 그것을 담뱃갑으로 옮긴다. 보편적으로 원통형의 그것들은 담뱃갑에서 손으로, 손에서 입으로, 입에서 손으로, 손에서 재떨이로 향한다. 하지만 노인의 손에 닿은 것들은 반대로 재떨이에서 손으로, 손에서 담뱃갑으로 움직인다. 나머지 과정은 유예되었다. 그것들은 동료들과 다르게 짓이겨지지 않았기에 해체되고 노인은 잔해들을 모아 하나로 만들어 손으로, 입으로 가져갈 것이다.

원통형을 유지한 그것을 찾는 노력을 하는 대신, 완전한 상태의 그것을 구걸하는 노인도 있다. 하루에도 몇번을 마주치는 그 노인은 최대한 비굴한 표정으로 니코틴을 갈구한다. 내가 본 바로는 노인이 특별히 좋아하는 원통형의 그것도 있는 모양이다. 많은 거절에 익숙할 노인이지만, 가끔은 더욱 절박하게 원하기도 한다. 노인이 특별히 좋아하는 종류인지, 노인의 갈증이 참기 어려운 상태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담뱃값이 오른 이후로 노인의 성공률은 크게 내려간 것 같지만, 이따금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지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세상이 아직 그리 삭막하진 않은 것인가, 아니면 그 노인의 존재 자체가 세상의 삭막함을 보여주는 것인가?

제각각의 방법으로 니코틴을 갈구하는 그들에 비해 여유로운 이들도 있다. 시야가 탁 트이지 않아서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그만큼 길이 좁아서 보행자들에게는 크게 각인 되는 위치에 그들이 소주병을 사이에 두고 둘러 앉아있다. 그들이 보행자들에게 불편할 것을 감수하고도 좁은 길목에 있기에, 그들의 눈에 띄지 않고 그들을 관찰할 방법은 없다. 그들을 관찰하는건 예의도 아닐 것이다. 지금도 아슬아슬할까? 아무튼 그들에 대해서 아는 것은 별로 없다. 그들이 세상에 몇 남지 않은 풍류를 아는 이들이라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건 아니라는 것 뿐.

내 스타일은 무언가를 끌어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때로는 논리적이기도, 때로는 억지이기도 하겠지만, 글은 그 자체에 담긴 내용으로만 가치를 지니진 않는다. 그래서 내 글이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독자들이 그 글을 읽으며 새롭게 떠올릴 생각들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굳이 의미를 찾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게 아니라, 내 글은 그냥 그랬다. 하지만 역시 낮에는 머리가 돌지 않는다.

머리가 잘 돌지 않는 와중에 괜찮은 생각을 하나 해냈다. 내가 끌어낸 무언가가 억지라 하더라도 독자들이 글에서 새롭게 떠올리는게 있고 그로 인해 글에 가치가 생긴다면, 내가 아무 것도 끌어내지 않아도 독자들이 새롭게 떠올리는게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새벽에 쓰는 글과 낮에 쓰는 글은 많이 다른 느낌이다. 독자들의 느낌은 또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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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님 낮에 쓴 글은 소설을 읽는 것같이 묘사한 부분이 촘촘하고 세밀하게 다가옵니다. 예전에 직장이 부산역 근처라 늘 광장의 노숙자를 관찰했는데 그 때 기억이 나네요:)

맞아요. 끌어냅니다. 단지, 내 글의 조악함이 걸맞지 않은 까닭으로 제대로 된 글 하나 내기 어렵다는 것을 제외하면, 언제나 사색의 재료가 되고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사색의 재료로 활용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건조한 묘사가 오히려 노인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떠오르게 만드네요..

니코틴을 구걸하는 노인들이 넘쳐나는 사회가 한국이 아닐까 생각해 보네요
복지가 취약한 사회의 노인들은 불쌍하기까지 하지요

앞으로 가는 것을 반대로 돌려보시다니.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습니다.

젊은시절 열심히 일했지만... 자신의 노년을 제대로 준비못한 것이 지금의 노년층이 아닐까 싶네요! 복지라도 늘어나면 좋겠지만... 그또한 쉬운일이 아님을...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없이 삭막한 느낌의 노인 묘사가 인상적이에요.

노인의 풍류란
어쩌면 포기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오한 글이네요ㅎ 잘읽고 갑니다.

앗! 낮에 쓴 글이군요!!! ㅎㅎㅎㅎㅎ 글쎄요... 크게 차이를 못 느끼겠는데요. 다만 디테일 묘사가 강화된듯 합니다. 낮이라 밝아서 그런건가요? ㅎ